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으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이라.(요:17)
율법이 옛 언약이라면 은혜와 진리는 새 언약이다. 그런데 영원 안에서는 사실은 원래부터가 새 언약이었다. 옛 언약이라는 것은 영원 안에는 없었는데, 우리가 타락했기 때문에 옛 언약이 생긴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옛 언약이 먼저이고 새 언약이 다음이지만 영원 안에서는 새 언약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의 세계에서 은혜의 세계로 위치를 옮겼다. 율법이 계약이라면 은혜는 생명이다. 그래서 율법은 돌 판에 새긴 것이라면 은혜는 마음 판에 새긴 것이다.(고후3:3) 즉 율법은 외부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사람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은혜는 사람 내부에 생명을 주어서 사람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원숭이를 아무리 교육훈련 시킨다고 해서 사람이 되지 않는다. 원숭이를 사람으로 만들려면 창조적인 은혜가 필요하다. 원숭이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 다음 하나님께서 그 재료를 가지고 다시 재창조해야 사람이 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언약은 이런 개념이다. ‘내가 내법을 그들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히:10:16) 새로운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옛 언약 대신에 새 언약을 제시하게 되었는가? 옛 언약-율법의 한계 때문이다. 율법으로는 생명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갈3:21) 율법은 문자적이고 표면적이다. 그래서 인격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마저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으신 것이다. ‘만일 그 첫 언약이 흠이 없었더라면 둘째 것을 구할 여지가 없으려니와 그들에게서 흠을 발견하시고 그분께서 이르시되,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나들이 이르리니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으리라.’(히8:7~8)
성경에서 모세는 율법을 예표한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반석이 모세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 네가 강을 칠 때 쓰던 네 막대기를 네 손에 잡고 가라. 보라, 내가 거기서 호렙에 있는 반석 위에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 반석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하시매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 눈앞에서 그대로 행하니라.(출17:5~6)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고 인류의 생명이 되셨다. 반석의 물은 생명을 산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그리고 또 한 번의 반석이 나온다. 첫 번째 반석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한 후에 신 광야의 호렙에 있는 반석으로 모세는 그곳을 맛사(시험)와 므리바(다툼)이라고 하였다.(출17:8) 두 번째는 가데스 반석이다. 두 번째 반석의 물도 하나님께서 므리바의 물이라고 하셨다.(민17:13)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두 반석이 있는 곳이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엄연히 다른 곳이다. 하나님은 첫 번째 호렙에 있는 반석에서는 모세에게 ‘너는 그 반석을 치라’(출17:6) 하셨고 가데스에 있는 두 번째 반석에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그들의 눈 앞에서 반석에게 말하라.’(민20:8) 라고 하셨다. 첫 번째 반석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행하였지만 두 번째 반석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두 번 반석을 쳤다. 혹자는 모세가 한번 쳐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두 번 쳤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냥 반석에게 말하라고 하셨을 뿐이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두 반석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형제들아, 나는 이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모두 바다를 지나가며 모두가 구름과 바다 속에서 모세에게로 침례를 받고 모두가 같은 영적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느니라. 그들이 자기들을 따라가던 영적 반석으로부터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였느니라.(고전10:1~4)
그러므로 두 개의 반석 모두 예수 그리스도다. 첫 번째 반석은 육체로 오셔서 율법에 의해 심판받으신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율법의 예표인 모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반석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영적음료를 마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이 복음의 의미를 모르고 막대기로 두 번 친 것이다. 이는 심판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또 한 번 십자가에 못 박은 거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 한 것이다. 모세는 율법의 예표이고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왕국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인간적으로 보면 구약에서 모세만한 인물은 없다. 그럼에도 모세는 율법의 예표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을 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간 성인 남자는 단 두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들어간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 두 명의 정탐군의 일원으로 가나안을 정탐하고 온 후에 담대히 그 땅을 차지하자고 하였고 나머지 열 명은 백성을 낙담시키는 말을 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성인 남자 중에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모세가 훌륭하지 못해서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롬3:20) 오직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롬3:28)
그러므로 구원은 믿음을 통해 위치를 옮기는 것이다. 죄와 사망이라는 율법의 위치에서 성령의 생명의 법이 지배하는 세계로 위치를 옮기는 것이 구원이다.(롬8:2) 이것은 전적으로 행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문제이고 출생의 문제이다.
'성경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 (0) | 2016.02.22 |
---|---|
출애굽기를 통해 본 사람의 희생물과 헌물 (0) | 2016.02.20 |
복음이란 무엇인가? (0) | 2016.01.04 |
인간의 위대한 질문-빌라도의 4가지 질문 (0) | 2016.01.04 |
두려워 하는 자들(계21:8) (0) | 2015.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