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

올더스조에 2016. 2. 22. 01:21

그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1:15)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창조자일 뿐 창조물은 아니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창조물이라고 하면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이단 취급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을 창조물이라고 한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그분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보유하신 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도 되시고 사람도 되시기 때문에 창조자인 동시에 창조물이다.

하나님은 영으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자신이 영으로서 몸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표현할 형상으로서의 아들이 필요한 것이다. 보이지 아니하는 분을 표현할 형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조자는 창조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표현할 존재로 지음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이 목적에서 이탈하였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표현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표현되신 하나님이라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아담이래 이런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드디어 하나님이 사람으로서 표현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떠함은 형상인 사람을 통해 표현되고 규정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씨는 보이지 않고 열매를 통해 표현되는 거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도 이런 개념이 불명확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어떤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놓고 어떤 때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였던 것이다.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그리하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14:8)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하느냐? (14:9) 하신 것이다.

만물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일종의 형상으로서 창조물이다. 사람을 제외한 다른 창조물은 하나님을 표현하기에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창조물에 비해 하나님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사람이 다른 창조물에 비해 탁월한 기능이 있다면 표현력이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분명히 사람- 육신으로 태어나 죽으셨고, 그리고 부활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셨다. 우주 안에는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그분이 창조한 창조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님은 육체로 오셨기 때문에 분명히 창조물이다. 동시에 그분은 창조자다.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분이 창조물이 아니고 오직 창조자로서 신적인 요소만을 말하는 것을 배척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그분의 신적인 요소에 있지 않고 육적인 요소에 있기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라는 말은 그분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조상은 사람이어야 하지 신은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사람이지 신-천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이 되길 원하지 신이 되길 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이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4:3) 한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창조물이 아니라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를 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성보다는 신성을 높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본의 아니게 적 그리스도의 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6:15)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 그리고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16:18)라는 복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에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꾸짖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16:22) 라고 하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16:23) 하셨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한다고 하였지만 사탄의 일에 동참한 것이다.

교회 내에서 예수님은 사람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신적인 예수님만을 말하지 그분이 사람이라는 것은 단지 교리적으로 밖에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구원은 그분의 신 되심에 있지 않고 사람 되심에 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조건은 그분의 영되심에 있지 않고 살과 피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6:54) 우리가 알고 추구해야 할 것은 그분의 인격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등한시 하고 신성만을 강조할까?

이 모든 근원, 인간 문제의 근원은 단 한 가지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이다. 사탄이 아담에게 이것을 먹는 날에 죽지 않는 신들과 같이 될 것이다’(3:5)라는 말속에 답이 있다. 그래서 타락한 아담 안에는 신이 되고 싶은 깊은 마음과 신을 숭배하고자는 깊은 소망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오셔서 기적과 이사를 통해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자 수많은 군중이 쫓아 다녔지만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십자가로 내 몰리자 모든 사람, 심지어 제자들 마저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예수님 곁을 떠나가 버렸던 것이다.

특히 예수님은 오셔서 자신을 지칭할 때 총 87회중 83회를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정작 본인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말은 믿지 못하고 신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경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신이 되고 싶어 타락한 아담의 깊은 속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과의 연합, 곧 죽음 안에서 하나 되는데 있다.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될 수 있지 사람과 신은 직접적으로 연합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모른 상태에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다보니 도로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예수님은 죄가 없어서 죽을 수 없는 분인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죽게 하셨다는 황당한 말까지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본래 죄가 있든 없든 한번은 죽도록 창조되었다.  예수님도 죽을 수 있으니까 죽으신 것이지 죽을 없는  분인데 죽었다는 황당한 말이 어디 있는가?  이것이 다 죽지 않는 신이 되고 싶은 아담의 깊은 속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높이고자 했던 행동이 본의 아니게 적 그리스도의 영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에 대해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10:2) 하였다.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1:15) 라고 하였다. 물론 영 안에서 보면 그분은 모든 창조물의 머리로서 첫 열매라고 할 수 있지만 역사 안에서 보면 그분은 2천년 전에 육체로 오셨기에 모든 창조물의 첫 열매-처음 난 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예수님을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1:15) 라고 하였을까?

성경은 생명의 세계를 목표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의 관점에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는 옛 창조의 세계고 하나님이 목표로 하는 세계는 새 창조에 있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가 단지 첫 창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물로 전환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망은 열매-아들이다. 즉 흙으로 지어진 육체-일시적인 장막에서 영원히 쇠하지 않는 부활의 몸-성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 번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 번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라.(고전15:45)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첫 번째 창조에 있지 않고 두 번째 창조, 즉 새 창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즉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즉 하나님의 최종목표는 육에 속한 세계가 아니고 영에 속한 세계에 있다는 것이다. 영에 속한 세계가 곧 새로운 세계이며 이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만 들어오는 세계다. 이 세계의 완성이 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이다. 지금 교회는 새로운 세계 안에 들어와 있고 하나님의 최종 목표인 새 예루살렘으로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과 연관지어 창조물이라 칭할 때는 새로운 세계, 곧 하나님께서 최종 목표로 하는 생명의 세계의 창조물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효력도 없고 새로운 창조물만 있느니라.(6:15)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3:10)

새 창조물, 곧 새 사람이란 옛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성경은 바로 새로운 창조세계의 첫 번째 사람,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첫 번째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라는 말씀이 있듯이 그리스도는 부활의 세계-새 창조의 조상으로 처음 난 자라는 의미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를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처음 난 자(firstborn)’ 란 말 그대로 만들어진 자가 아니고 태어난 자이다. 옛 창조 안에서 아담은 태어난 자가 아니고 만들어진 자이다. 새 창조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해 창조된 아담의 자손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태어난 자들이다.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태어난(born) 자들이니라.(1:13) 사람은 원래 흙으로 만들어진 다음 하나님께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정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1차적 창조에 머물지 않고 2차적 창조, 즉 새 창조의 세계에 있다. 새 창조는 부활의 세계로 만들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태어나는 세계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라는 말은 예수님이 새 창조의 첫 열매, 곧 맏 아들이 되셨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사람 농사를 짓는 분이시다.(고전3:9) 하나님은 사람 농사를 지어서 첫 열매로 예수님을 거두셨고, 이어서 수확기에 우리를 많은 열매들로 수확할 것이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인 새 창조의 세계에서 첫 번째 열매라는 의미다. 아담이 옛 인류의 조상이라면 그리스도는 새 인류의 조상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에게는 오직 두 창조가 있다. 첫 번째 창조는 물질적인 창조이며, 두 번째 창조는 영적인 창조이다. 물론 골로새서 115절의 그리스도가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라는 구절은 그리스도가 새 창조만이 아니라 옛 창조 안에서도 처음 나신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두 가지 다른 방면에서 처음 나신 자라는 것을 가리킨다. 즉 그분은 옛 창조 안에서 먼저 나신 분이며, 또 부활 안의 새 창조 안에서 먼저 나신 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두 창조 모두에서 먼저 나신 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두 가지 위대한 단계성육신과 부활를 취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성육신의 단계를 통해서 그리스도는 피조된 사람의 본성에 참여하셨다.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하여 참 사람이 되셨다.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창조되셨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성면에서 창조되셨다는 것을 우리가 부인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참 사람이시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은 무엇인가? 그분은 유령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는 살과 피를 가진 참 사람이시다. 이 점에 있어서, 그분은 창조되셨다. 육신 안의 그분은 하나님의 옛 창조의 먼저 나신 자이다. 부활 안의 그분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 즉 하나님의 새 창조에서 먼저 나신 자가 되셨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하나님, 즉 창조주이시며, 사람, 즉 피조물이시다. 이것은 만유를 포함하신 주님에 대한 가르침이다.

성경의 온전한 계시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피조물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 처음이 없는 스스로 계신 분이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이시기 때문에 처음이 있는 먼저 나신 자로 창조되셨다. 우리는 그분의 이 두 방면을 보아야 하고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이시고 또한 사람이시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또 창조물이시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 분이며, 또 먼저 나신 자이다. 그분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며, 또 시작이 있으신 분이다. 한면으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창조주라고 말하고, 다른 한면으로 성경은 그분을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하고 분명한 계시이다.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실 뿐 창조되지는 않으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시나 피조물은 아니시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셨는가, 사람이 되지 않으셨는가?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피를 흘리셨는가? 만일 그리스도가 피조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흘릴 피를 가질 수 있었는가? 유령은 십자가에 못 박힐 수도 없고 피를 흘릴 수도 없다.

하나님의 보좌에 계시는 오늘날의 그 그리스도는 여전히 사람이시다. 디모데전서 25절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시라고 말한다. 이 중보자는 유령이 아니다. 그분은 참 사람이시다. 유령은 결코 우리를 위하여 중재자가 될 수 없다. 참 중재자는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신성과 인성을 다 가져야 한다.

번역하는 것을 예로 들어보겠다. 번역자는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위하여 적어도 두 언어를 알아야만 한다. 한국어만을 알고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수 있겠는가? 영어 지식이 없으면 번역할 수 없다. 같은 원칙으로, 그리스도는 두 본성신성과 인성을 가지셔야 한다. 그분은 사람을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하나님을 사람으로 번역하기 위하여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이 되셔야 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무지하고 눈이 어두운지! 그들은 무지하고 눈멀었기 때문에 선포된 진리를 정죄한다. 사실상 원칙적인 측면에서, 그런 교사들은 사도 요한의 말씀에 따라 적 그리스도들이다. 만일 요한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면에서 그분이 창조되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을 거짓 선지자나 거짓 교사로 간주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창조되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사실상 그분이 육신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를 포함하신 분이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다. 즉 그분은 창조주이자 창조물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