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사복음서를 보는 관점

올더스조에 2015. 5. 25. 13:59

아담은 사람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서 왕이 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아담은 사탄에게 속아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여 신이 되려고 하였다. (3;5) 사탄은 본래 신-천사로 하나님의 종의 위치로 창조되었다. 아담이 아들의 위치에서 종의 위치로 위치를 이탈한 것을 성경은 죄라고 한다. 그러므로 아담은 아들의 위치에서 종의 위치로 이탈하여 왕이 되고자 한 것이이므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불의한 왕인 동시에 불의한 종이 된 것이다.

아담은 본래 율법이 작용하지 않는 세계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자신은 아들이 되는 생명의 세계로부터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은 심판자가 되고 자신은 종으로서 심판받는 율법의 세계로 위치를 이탈하였다. 그래서 아담은 율법의 세계에서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불의한 왕과 불의한 종인 아담의 죄를 대속하려면 의로운 왕과 의로운 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마태복음은 의로운 왕으로서의 예수를, 마가복음은 의로운 종으로서의 예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법리적 심판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대속물'이란 단어는 마태와 마가복음에만 기록하고 있다.(20:28, 10:45) 또  예수님은 왕과 종이 되어야만 모든 인류가 예수님 안에 포함 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의 가장 높은 자리는 왕이고 가장 낮는 자리는 종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왕되심과 종되심 안에 모두 포함된다.

마태와 마가는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예수를 보았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시기 전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십자가에서는 아버지 대신 하나님이라 불렀다. 이것은 피조물의 입장에서 창조주 앞에 서신 것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 크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심판자와 죄인의 관계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율법이 작용하지 않는 생명의 사랑의 관계다. 마태와 마가는 십자가에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하에 있는 예수를 본 것이다. 즉 법리적 대속물로서의 예수를 본 것이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대속했다고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아담의 죄로 인한 법리적  대속물이 필요하다면 하나님과 유기적인 생명의 연합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복-생명을 주실 수 있는 사람의 위치가 필요하다. 즉 씨-하나님은 흙-사람이 필요하다.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흙이라는 근원적으로 위치를 이탈했기에 하나님께서 씨-생명을 주실 수가 없다. 흙-사람이 씨-신이 되려고 한 것이다. 씨-하나님은 씨를 뿌릴 밭을 잃어 버린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밭이 되어야 하는데 사탄의 밭이 된 것이다. 아담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위치를 이탈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다.(3:23) 그러므로 아담안에 있는 자를 구속-원위치 시킬 참사람이 필요하다. 누가는 거짓 아래 있는 인생을 원래의 위치로 구속할 참사람인 예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구속'이란 단어는 사복음서에서 누가복음에만 기록하고 있다.(1:68, 2:28,21:28, 24:21) 그러니까 대속은 법리적 위치고, 구속은 유기적 위치다. 내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 교통법규를 어겨 사고나서 다쳤다고 하자. 교통법규를 어긴것은 법리적 문제고 다친것은 유기적 문제다.  아담은 바로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법리적 문제이고,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것은 유기적 문제이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원래의 위치를 회복하면 하나님은 생명을 주실 수가 있다. 그 위치가 구속의 자리다. 구속의 위치는 십자가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23:46) 하였다. 내 영을 맡긴다는 의미는 재가 된다는 의미로 번제헌물이 된다는 의미다. 마태와  마가는 법리적 대속물로서의 예수를 보았다면 누가는 생명의 연합을 위한 유기적인 헌물로서의 예수를 본 것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의 관계로 전환된 예수를 본 것이다.

또 요한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1:4)로 시작해서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니라.(20:31) 로 끝난다.

사람들은 대속과 구속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경륜의 순서는 창조-타락-대속-구속-부활생명 순이다. 이것을 사복음서는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 전체도 이러한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창세기는 창조와 타락,  신구약은 대속, 천년왕국은 구속, 새예루살렘은 부활생명을 기록하고 있다. 

오 성경의 부요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