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예수님은 죽을 운명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이 말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진리를 지지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진리는 이미 창세 전에 정해져 있었다.(고전2:7-8)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도 죽어야 하지만 죄가 없어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창조 목적인 인류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죽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은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는데 아담이 죄를 지어서 육체의 죽음이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육체의 죽음과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 자신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생명이고 단절되어 있으면 사망이라고 말한다. 전선에 전기가 연결되면 살았다 하고 끊어지면 죽었다고 하는 거와 같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영원한 생명 자체임으로 영원한 생명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연결되어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라고 표현하고 있다.(요1:13, 벧전1:23) 만일 아담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면 아담도 하나님이 되므로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죄가 있으면 육체가 죽고 죄가 없으면 육체가 죽지 않고 산다는 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 말이 맞으려면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일반 사람과 다름없이 죽으셨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육체를 가진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성경에 대한 무지의 결과이다.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우리 인류는 죄 가운데 그대로 있어야 하고, 영생을 얻을 수도 없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 복음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육체로 오셔서 죽어야만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은 창세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고전 2:7-8)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는 진리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지혜’(고전 2:7)로서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해야 했다. 그래야만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십자가의 지혜를 사람들이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게 일부러 감추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왜냐하면 인류가 당시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다면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죽을 운명(mortality)’으로 오셨다.
2.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사람의 운명
하나님께 사람을 창조한 목적은 자신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사람들에게 주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천사처럼 영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흙으로 만들어졌고 반드시 하나님의 씨를 이식받아 육체가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즉 하나님과 사람은 씨와 땅의 관계이다. 사람 농사를 짓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최종 열매는 사람이 육체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은 다음 부활의 몸이 열매이다.(고전 15:20) 흙 사람은 예수님을 믿건 믿지 않건 모두 부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로운 자의 부활로, 믿지 않으면 불의한 자의 부활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행 24:15)
하나님은 사람의 운명을 본성에 속한 몸에서 영에 속한 몸으로 바뀌어지도록 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이단 사이비 교주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자신들의 육체는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은 사람이신 예수님도 예외일 수가 없다. 만일 예수님만 특별히 예외적이라면 우리는 절망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을 가지는 것은 예수님에게 적용되었던 것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라는 말은 조상이라는 의미다. 사람의 조상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님은 사람으로 와야 하는 것이다.
3. 영생의 씨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의 방해로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이다. 죄는 사탄이 설치해 놓은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지 죄의 제거가 최종목적이 아니다. 사람은 영생을 얻기 전에 죄의 용서를 받고 그 후에 영원한 생명을 이식받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희생물도 되지만 하나님의 최종목적인 인류에게 영생의 주기 위한 씨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인류에게 씨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씨는 처음에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씨’로 약속하셨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위 말씀에서 ‘그녀의 씨’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씨로 결국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확증한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 3:16)
4. 예수 그리스도는 씨가 되기 위해 반드시 죽어야 함.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하신 ‘여자의 씨’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확증한다. 여자에게는 씨가 없다. 그러므로 이 씨는 지상이 아닌 하늘로부터 와야 한다. 씨라는 말은 결국 생명이라는 의미고 조상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육체로 오신 예수님이 어떻게 씨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농부이신 하나님에게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새로운 인류를 산출하기 위한 종자 씨다. 이 종자 씨는 땅속에 들어가 죽지 아니하면 홀로 그대로 있고 죽어서 싹이 나서 열매를 맺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남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나님의 목표는 종자 씨가 아니라 이 종자 씨를 통해 수많은 하나님이 아들들을 산출하여 이들이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도 죽어야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죽어야만 한다. 종자 씨 하나를 심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심으로 하나님의 사람 농사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the firstfruits)가 되셨도다.’(고전 15:20)
영어 성경에서는 첫 열매가 복수명사 firstfruits로 되어 있다. 열매 안에는 많은 씨가 들어 있다. 또 종자 씨 하나를 심으면 그 줄기에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 한 명이기 때문에 단수 ‘첫 열매(firstfruit)’라고 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보존하신 킹제임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들(the firstfruits)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흠정역에서는 ‘the firstfruits’를 단수 ‘첫 열매’로 번역함)
농부의 목표는 열매이듯이 사람 농사를 짓는 하나님의 최종 목표는 사람의 부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씨와 열매는 하나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 안에는 성령, 곧 씨가 있었지만 우리에게 적용되기 위한 씨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고 다시 사심으로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호칭을 부활 이후에야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로 생명, 곧 ‘씨 뿌리는 자’라는 의미다. 만일 예수님이 육체로 그대로 계시면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 자신이 씨 뿌리는 자이고 우리는 밭이라고 하셨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의 아들이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손들이로되 가라지는 그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니라.’(마 13:37-38)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되 육체로 계셨을 때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 등에 중점을 두고 추종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육체로만 계신다면 ‘그리스도’가 될 수가 없어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십자가 이전의 육체로 계신 예수님만을 믿는다면 구원이 없다.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이 나고 오이씨를 심으면 오이가 나듯이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죽고 다시 사신 첫 열매 안에 있는 씨를 심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성령-씨로 잉태되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지만 육체로 계실 때의 그 씨는 우리에게 적용될 수 없는 씨다. 예수님이 육체로 계실 때의 성령-씨는 일종의 요리되지 않은 날것의 씨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통해 요리되어야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간격은 하늘들이 땅보다 높은 것보다 간격이 크기 때문에 바로 연합될 수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중재자(하나님-사람)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 씨가 개량되어야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반드시 육체로 오셔서 죽고 다시 사신 과정을 거친 ‘그리스도’를 믿어야 우리도 그분과 동일한 부활-첫 열매 종류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창조물 중의 첫 열매 종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 1:18)
그러므로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씨’는 육체로 계신 예수님이 아니고 죽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 3:16)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씨는 육체로 계신 ‘예수’가 아니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가 되어야 씨가 되는 것이다. 즉 육체로 계신 예수는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씨가 아니고 부활 이후에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씨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근원적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창세 전에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5. 결 론
예수님이 인간에게 씨-생명을 주기 위해 그리스도가 되려면 반드시 죽으심을 통해 부활의 열매가 되어야 한다.(고전 15:20)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최종 목적인 부활의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육체가 죽고 다시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인간의 운명은 ‘죽을 운명(mortality)’에서 ‘죽지 않을 운명(immortality)’으로 바뀌어 지도록 정해 놓은 것이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mortality)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immortality)을 입으리로다.’(고전15:52-53)
그래서 사람은 한 번 죽은 다음 모두 부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로운 자의 부활로, 믿지 않으면 사탄의 자식, 곧 불의 한 자의 부활로 부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인간의 운명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아담과 예수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인간의 운명을 거부하고 육체가 죽기 싫어 신이 되고자 선악과를 먹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인간의 운명, 곧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생명 농사의 과정을 거쳐 첫 열매가 되어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오르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왜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치를 견디시었는가? 이는 씨는 땅속에 뿌려져 죽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인간의 운명, 곧 농부이신 하나님의 사람 농사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합당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을 운명(mortality)’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을 거쳐야만 같은 열매 종류를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 귀중한 것이다.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그분의 눈앞에서 귀중하도다.’(시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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