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하나님의 관점에서 참 사람이신 분

올더스조에 2025. 2. 3. 20:08

 

 

 

 

 

1. 들어가기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세상이 말하는 객관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참사람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신격적인 부분, 또는 기적을 행하신 부분에 초점을 두고 그러한 예수님을 추종하려고 한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신적인 예수님과 기적을 추구해서는 구원이 없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신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참사람, 곧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창조하셨지, 신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신은 천사로서 하나님이 원하는 충분한 수의 신들이 이미 존재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이 되길 원하지 신이 되길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창조물의 머리로서 사람으로 창조되었다. 신-천사는 사람의 종으로서 사람이 다스릴 존재이지 사람이 천사를 추종할 위치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主)라는 말은 우리의 조상이라는 의미다. 사람의 조상은 사람이어야지 신은 사람의 조상이 될 수 없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것은 맞지만 그분은 철저히 제한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신-천사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고 사람-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것이다.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 위에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히 2:16)

 

예수님은 오셔서 줄곧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보다는 ‘사람의 아들(人子)’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즉 ‘나는 사람이다’ 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 갈망은 사람에게 있다. 그런데 아담은 ‘사람이 죽지 않는 신이 된다’(창 3:4)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이 정해준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누룩없는 무교병으로 창조하였는데 누룩이 들어가 신도 아니면서 신인척 부풀려진 유교병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직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만 받으신다. 씨-하나님은 오직 흙-사람에게 씨를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무교병이 진실이고 유교병은 가짜이다.

 

그래서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이 보실 때 세상에는 참사람이 없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이후 사람은 위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가장 큰 비밀이 있다면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최초에 정해준 사람의 진실,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아담이 잃어버린 사람의 원형을 발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참사람에게만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2. 성경이 말하는 진리, 곧 ‘진실’이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 14:6)

 

예수님은 오셔서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는 세상의 객관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참사람이라는 의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정해준 위치 안에 있는 사람을 참사람, 곧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할 때 각자의 격(格), 곧 위치(位置)를 부여하였다. 사람은 인격, 천사는 천사격, 개는 개격으로 창조되었다. 만물은 각자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나무는 뿌리를 땅속에 박아야 살고,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살듯이이 사람은 인격을 지켜야만 산다. 이러한 창조물의 격은 하나님께서 정해준 것으로 변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창조물이 자신의 위치를 이탈한 상태를 죄, 또는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주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신의 위치를 지킬 때 우주질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천사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든지, 사람이 천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어떻게 되겠는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질서, 곧 화평의 창시자라면 사탄은 혼란의 창시자이다. (고전 14:33)

 

기계도 그렇지 않은가? 정밀한 기계일수록 부속품하나라도 그 위치를 이탈하면 오작동이 일어난다. 사람은 우주만물의 머리로서 핵심부품이다. 아담의 타락은 단순히 우주만물 가운데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질서 전체에 문제를 야기 시킨 것이다. 사람은 창조물의 머리로서 창조물의 총체이다. 사람이 소우주라는 말도 맞는 말이다. 사람이 잘못되면 우주전체가 잘못되고 사람이 잘되면 우주전체가 잘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단순히 사람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고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창조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0-11)

 

나라에서도 우두머리가 중요하다. 머리가 올바르면 자동적으로 아랫사람들의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아무리 백성들이 올바르게 살려해도 지도자가 타락하면 그 나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교회가 희망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도 태속에서 머리가 먼저 생기고 머리로부터 지체들이 갈라져 나온다고 한다. 첫 사람 아담은 우주 만물의 머리로서 아담의 타락이 우주질서에 문제를 야기했다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 곧 사람의 위치를 회복하신 것은 우주질서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렇듯 ‘창조물의 위치’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으로서 영원히 변개할 없는 것으로 이것을 ‘진리’, 곧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물이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정해준 위치를 이탈하면 죄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정 위치에 있으면 진리 안에 있는 것이고, 그 위치를 이탈하면 비 진리 안에 있는 것이다. 성경은 아담이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여 비 진리 안에 있는 상태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또는 ‘다 길에서 벗어났다’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롬 3:13)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자신을 가리켜 말할 때 ‘길과 진리와 생명’을 동격으로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준 사람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씨는 땅에만 씨를 뿌릴 수 있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해준 사람의 위치, 곧 진실 안에만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3.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준 사람의 위치, 곧 진실을 이탈함.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은 ‘사람이 죽지 않는 신이 된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였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창세기 3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속았는지 나와 있지 않지만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서 사탄에게 승리하는 장면을 통해 사탄이 어떤 말로 아담을 유혹하였는지 알 수가 있다.

 

전쟁의 기본은 나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천사와 동류인 사탄은 사람에게 비해 두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고, 둘째는 몸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강점을 가지고 아담을 공격한 것이다.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서 사탄은 예수님에게 ‘네가 신이거든 이 돌들로 빵을 되게 하라’ ‘네가 신이거든 이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려봐라,’ ‘나한테 경배하면 세상영광을 주겠다’ 라고 유혹하였다. 아담은 사탄의 이러한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사탄의 돌로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 능력과, 세상영광을 부러워하여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즉 하나님 대신 사탄을 택한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므로 그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그가 먹으니라.’(창 3:6)

 

아담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대언자 직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 세상을 다스릴 왕의 직분이라는 3중 직분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이탈함으로서 대언자의 직분을 빵을 위한 육신의 정욕(먹기에 좋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을 종교라는 안목의 정욕(보기에 아름다우며)으로, 세상 만물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분배해야 할 왕의 직분을 정치라는 인생의 자랑(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으로 타락시킨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요일 2:16)

 

아담의 패배는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주신 ‘능력없음’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위치를 이탈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본래 무교병임에도 불구하고 유교병처럼 부풀려 진 것이다. 신도 아니면서 신인척 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고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창 1:31)고 하면서 자신의 창조에 만족하시고 안식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은 창조물로서 하나님의 창조에 불만을 품고 사람의 위치를 이탈함으로서 하나님의 안식을 깨고,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4. 예수님은 사람의 진실을 가지고 거짓의 아비 사탄에게 승리하심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이러한 유혹에 대해 ‘사람은 돌로 빵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죽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사람은 세상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다 사람이다.’ 라고 하면서 ‘사람의 위치’를 가지 대응하였다.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할 때 항상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하였는데 이는 ‘네가 신이 거든’ 이라는 말이다. 이때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은’ 하시면서 사람의 위치를 가지고 대응하였다. 곧 ‘나는 사람이다’라는 진실을 가지고 대응하신 것이다. 그러자 마귀가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겼다.

 

‘이에 마귀가 그분을 떠나고, 보라,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기니라.’(마 4:11)

 

사람들은 마귀를 이기려면 큰소리로 기도를 해야 한다거나 마귀보다 더 큰 능력을 가져야만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적전쟁은 위치전쟁이다. 마귀는 소리를 지른다고 물러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위치를 지키면 물러가는 것이다. 그러자 마귀가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겼다고 한다. 아담은 천사를 다스릴 위치였는데 천사-사탄에게 위치전쟁에서 패배함으로서 천사의 수하가 되었다. 아들이 종의 위치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대리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아담이 잃어버린 사람의 위치를 회복하자 천사들이 와서 사람 예수님을 섬기게 된 것이다. 드디어 우주질서가 바로잡혀 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우주질서가 바로 잡힌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와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해주신 ‘능력없음’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사람의 위치 중 첫 번째 위치인 ‘능력없음’이라는 위치를 회복하신 것이다. 전쟁으로 치면 이것은 차후 공격발판을 위한 최초 교두보 확보 전투다. 교두보가 확보되어야 만 차후 공격을 위한 전투물자가 공급되어 계속 공격을 할 수 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서 마귀와 최초 교두보 확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처음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예수님은 오셔서 뜬금없이 아무렇게나 복음을 선포한 것이 아니다. 적에게 빼앗긴기 교두보를 확보 한 후에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의 교두보가 최초로 확보되었기에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적에게 빼앗긴 사람의 위치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셨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준 ‘죽음’이라는 위치를 회복해야만 이 전쟁은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고 ‘한동안 예수님을 떠났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마치고 한동안 그분을 떠나니라.’(눅 4:13)

 

이제 드디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죽음’이라는 인생의 위치를 회복하기 위해 마귀와 최후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 몰은 다음 세상 대중들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조롱하며 죽음을 회피하라고 유혹하였다.

 

지나가던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고 그분을 욕하며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여, 네 자신이나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수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그분을 조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니 그분께서 그를 원하시면 이제 그를 건져 내실 것이라. 그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같은 말로 그분을 욕하더라.’(마 27:39-44)

 

지나가던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고 그분께 욕하며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여, 네 자신이나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수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조롱하며 자기들끼리 이르되,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을 욕하더라.‘(막 15:29-32)

 

백성은 서서 지켜보는데 치리자들도 그들과 함께 그분을 비웃으며 이르되, 그가 남들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그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곧 그리스도이면 자기도 구원할 것이라, 하더라. 또 군사들도 그분을 조롱하면서 그분께 나아와 식초를 바치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들의 왕이거든 네 자신을 구원하라, 하더라. 그분 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이라 쓴 글도 있더라. 매달린 범죄자 중의 하나는 그분을 욕하며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이거든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눅 23:35-39)

 

위 말씀을 보면 지나가던 행인들, 수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과 같은 종교인들, 백성들과 치리자들, 로마 군사들, 심지어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들 마저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고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온 인류가 마귀의 자식으로서 예수님을 조롱한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그 수치와 조롱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칭, 타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웠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하는 능력을 행하였고, 유대인의 왕이라 불리는 분으로서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졸지에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리는 수치를 당하였다. 그 누가 이런 모욕을 당하고 싶었겠는가? 제자들은 아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이 넘어가기 전까지도 그동안의 예수님의 능력 정도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 악한 세력을 심판할 것이라는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유대인들의 개념속에는  메시아의  두번 오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는 정치적 왕으로서의 메시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회피할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잡혀가시던 날 밤에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함께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드로가 칼로 베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꾸짖으시면서 다음같이 말씀하였다.

 

‘너는 내가 지금 내 아버지께 기도하여 당장이라도 그분께서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게 주시도록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그리되면, 반드시 이렇게 되리라, 한 성경 기록들이 어떻게 성취되겠느냐? 하시더라.(마 26:53-54)

 

예수님은 충분히 십자가를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흙-사람에게만 생명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수치와 조롱을 견디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드린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이탈함으로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면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람의 위치를 지킴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이다.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응하신 것이다.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 2;7-8)

 

사실 사람은 아담의 타락 이래로 모두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나지만(요 8:44) 육체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탄도 죽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사탄은 죽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의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와 최종전쟁에서 죽음을 통해 마귀에게 승리하시고 '죽음'이라는 사람의 위치를 회복하신 것이다. 아담이 잃어버린 사람의 위치를 원래의 위치로 회복한 것, 이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구속이라고 하고 사람의 입장에서 그 위치-십자가로 돌이키는 것을 회개라고 하는 것이다. 위치를 이탈했던 사람이 원위치, 곧 구속이 되면 죄가 없고 의로운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救贖)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3:24)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救贖)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 1:14)

 

사람 예수가 신 마귀를 십자가라는 최후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인간승리다.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사람의 진실을 가지고 사람이 죽지 않는 신이 된다고 속인 거짓의 아비 마귀를 이긴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참사람이자 진실하신 분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자 하나님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하셨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아담이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죄를 지어 죽음이 왔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아담은 무엇을 해도 흙이지 죽지 않는 신이 될 수 없다고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흙이라는 운명은 변개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아담아 너는 속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 이래로 거짓 아래 있는 사람들은 혹시나 죽지 않는 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라는 말씀을 완전히 확증되었다. 왜냐하면 인류 유사이래 가장 신과 같은 사람인 예수님 마저도 십자가라는 죽음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모든 인류가 다 죽는다는 것을 확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1등이 불합격함으로서 2등 이하는 모든 인류는 시험을 볼 필요도 없이 모두 불합격인 것이다.

 

예수님은 인생은 흙이라는 진실을 가지고 거짓을 폭로함으로 승리하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승리는 능력의 승리가 아니라 ‘인격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소위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 모두가 힘 안들이고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다 주셨다. 예수님의 승리가 예수님 한 분에게만 적용된다면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 인류 보편에 적용될 수 있어야만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어떤 능력을 발휘한다거나, 기도를 한다거나, 어떤 노력을 통해 승리하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하는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정한 ‘죽음이라는 운명의 진실’을 가지고 힘쓰지 않고 승리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는 곧 내 승리가 되고 인류 보편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지 ‘나는 사람이다. 나는 흙이다’. 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손 쉬운 승리인가. 그런데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마귀를 이기겠다고 힘쓰고 있는지?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로 연합되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될 수 있는 지점은 오직 십자가다.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간 지점, 죽은 자를 살린 지점,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한 지점에서는 우리는 그분과 연합될 수 없고 거리가 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되는 지점은 죽음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한 지점이 ‘십자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십자가는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이 소멸시키는 불(히 12:29)이라는 개념에서 화염검, 번제단, 십자가라는 개념이 발전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용광로 하나님이자 십자가 하나님이다. 만물은 용광로 안에 들어가 녹여져 재생산 되듯이 사람은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고전 1:24)

 

용광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재탄생하려면 우리는 흙이라는 위치를 지켜야 한다. 흙을 불로 구우면 돌이 되고 돌을 더 강한 불로 구우면 보석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현재 구원받은 우리를 향해 ‘살아 있는 돌’(벧전 2:5)이라고 영원히 변치 않는 부활의 몸을 가진 상태가 되면 ‘보석’(계 21:11)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흙이라는 하나님께서 정해준 진실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아담은 이 진실의 위치를 이탈한 자라면 예수님은 죽기까지 이 진실의 위치를 지킴으로 하나님 왕좌 오른편에 오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밝히 드러나신 것이다.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롬 1;3-4)

 

 

5. 결  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신도 아니면서 신인척 하는 부풀려진 유교병의 모양을 가지고 마귀를 이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 실제는 천사를 숭배하고 있다.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천사를 흉내 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 오지만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고 책망하신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 7:22-23)

 

아담 안에서 사람들은 사람 이상의 어떤 능력, 천사와 같은 모습의 옷을 입기를 원하고 자랑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허세고 거짓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진실을 가지고  아담안에서 천사도 아니면서 천사인척 하는 사람들의 거짓의 옷을 벗기시고 구경거리로 삼으셨다고 말한다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공공연히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 2:15)

 

예수님은 승리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셨다. 단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죽음이라는 운명을 가지고, 무교병의 진실을  가지고 거짓의 아비 마귀를 이긴 것이다.  사람의 진실을 가지고 거짓을 이긴 것이다. 진실 앞에서 거짓은 폭로되고 물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참사람, 진실하신 분이고 최후 승리자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사 우리가 진실하신 분을 알게 하셨음을 우리가 알며 또 우리가 진실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아노니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니라.’(요일 5:2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아담안에서 죽지 않는 천사를 늘 부러워하며 상대적으로 흙이라는 인간의 운명에 늘 불만을 품고 살아왔다. 사람의 진실은 무교병임에도 불구하고 부풀려진 유교병이 되려고 하였다. 진짜가 가짜를 부러워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진실은 감추어지고 거짓과 허세가 판을 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흙이라는 인간의 위치가 우주 가운데 얼마나 고귀하고 복된 자리인지 깨닫게 되었다.  흙으로 빚어진 토기는 토기장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값어치가 달라진다. 우주 가운데 최고의 작가이신 하나님에 의해 빚어진 토기는 그 가치를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람의 위치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진실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다시 빚어진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인 것이다.(고전 1:24)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곧 사람의 진실을 깊이 더 누리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