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0. 하늘에 속하신 분

올더스조에 2025. 2. 15. 23:56

 

 

 

1. 들어가는 말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고전 15:47)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는 다른 생명을 가진 분이라고 말한다. 첫째 사람 아담은 땅에 속한 생명을 가진 자이고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생명을 가진 분이다. 우리는 통상 아담은 영원한 생명, 곧 하늘에 속한 생명을 가졌는데 아담이 죄를 범해서 땅에 속한 생명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아담은 본래 창조 시부터 땅에 속한 생명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으로 들어온 자가 아니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담은 창조 시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였다.(창 3:22)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창 3:22)

 

 

2.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사람의 운명

 

하나님의 창조목표는 땅에 속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 하늘에 속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고 이 흙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씨를 이식하여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창조목표는 사람이 땅에 속한 생명에서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람의 운명을 본성에 속한 몸에서 영에 속한 몸으로 전환되도록 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따라서 흙 사람은 어떤 씨가 자신에게 이식되느냐에 따라 부활의 몸이 결정된다. 그 씨가 그 열매를 결정하듯이 하나님의 씨를 이식받으면 의로운 자의 부활로, 사탄의 씨를 이식받으면 불의한 자의 부활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행 24:15)

 

 

3. 아담은 창조 시부터 영원한 생명이 없었음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living soul)이 되니라.’(창 2:7)

 

사람은 처음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단지 ‘살아있는 혼(living soul)’ 의 기능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혼이란 생각하는 기능을 가진 창조된 존재이지 영원한 생명이 아니다. 사람만이 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창조된 모든 생물은 혼을 가지고 있다.

 

‘모든 생물의 혼(the soul of every living thing)과 모든 인간의 숨이 그분의 손에 있느니라.’(욥 12:10)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모두 몸, 혼, 영이라는 구조로 창조되었다. 사람이 다른 창조물에 비해 특별한 것은 사람은 창조물의 머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려 혼적인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특권이 있다. 즉 사람은 땅에 속한 생명에서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바뀌도록 운명지어 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고전 15:49)

 

기본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우리의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이 의미하는 생명은 하나님과의 연결을 의미하고, 사망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과 별도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발전기에 전선이 연결되어 전등에 불이 들어오면 ‘살았다’ 하고 단절되어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죽었다’고 하는 개념과 같은 것이다. 만일 창조 시에 아담에게 영생이 있었다면 하나님이 두 분 존재한다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이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아담은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육체가 한번 죽고 부활하도록 정해져 있었으며 특히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로마서 5장 14절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라는 말씀을 통해 알아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롬 5:14)

 

로마서에서 바울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이 죄로 인해 세상에 사망이 들어왔다고 일반론적으로 말한다.(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롬 5:12)

 

그러면 어떻게 아담의 행위가 범죄인가를 논증해야 하는데 바울은 당시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5:13) 라는 소위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한 로마법의거 그 당시 로마법에 익숙한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을 가지고 ‘모든 사람은 율법 아래에서 죄인이다’ 라고 논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율법은 모세에게 주어졌기에 때문에 율법이 없었던 시대인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의 사람들과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해 바울은 죄형법정주의에 따르면 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지만은 율법이 없었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설령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담은 ‘실재’가 아니라 ‘모형’이기 때문에 사망이 군림하였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롬 5:14)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 아담이 설령 범죄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오셔야 할 자의 모형이기 때문에’ 즉 영원한 생명이 없었기에 아담 스스로는 하나님의 의(義)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아담은 하나님의 최종목적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닌 단지 장차 오시기로 예정된 실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형은 실재를 예표하는 그림자일 뿐 생명이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식당에 가면 모형으로 만든 음식이 있다. 이 모형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람이 먹을 수 없듯이 모형은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제품을 상품화기 위해서는 모형을 먼저 만들고 이 모형을 토대로 상품을 만들듯이 창조주 하나님은 아담이라는 모형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상품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목표는 모형에 있지 않고 실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에 아담 위에는 사망이 군림했다는 것이다.

 

건설업자가 아파트를 건설을 할 경우 분양을 하기 전에 모델하우스를 짓는다. 그리고  실재 아파트를 다 건축하고 분양이 끝나면 모델하우스는 철거한다. 모델하우스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실재 아파트 분양이 끝나면 해체한다. 모델하우스의 역할은 실재아파트 분양이 끝날 때까지이다. ‘아담이 오셔할 분의 모형’이라는 의미는 모델하우스와 같은 의미다. 아담은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깨끗하고 훌륭하더라도 그 임무는 실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면 해체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우리 인생은 첫 사람에서 둘째 사람으로 바뀌도록 운명이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4. 예수 그리스도는 둘째 사람으로서 하늘에 속하신 분임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고전 15:47)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의 운명을 첫째 사람에서 둘째 사람으로 전환되도록 정하셨다. 그런데 첫째 사람이 하늘에 속한 둘째 사람으로 바뀌려면 스스로는 할 수가 없고 하늘에 속한 생명을 가진 누군가가 와서 둘째 사람의 조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 사람에게는 하늘에 속한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가능한 것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오는 절대적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다시 태어나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3:3) 그리고 요한복음 3장 7절에서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요 3:7)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이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시 예수님이 오셔서 이 말씀을 할 때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는 개념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놀라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 당시 유대 종교인들은 지금의 일반적 종교인들이 그렇듯이 착하게 살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는 종교적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유대 종교인이자 치리자인 니고데모 마저도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그가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요 3:4) 라고 예수님께 되물었던 것이다.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아담이 죄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스스로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그 생명이 그 왕국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을 가지면 사람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고, 동물의 생명을 가지면 동물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듯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아무리 죄가 없고 의로운 행동을 해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즉 살과 피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따라서 아담은 설령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사망이 군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롬 5:14)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조자의 절대적인 은혜가 필요하고 창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그 은혜를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은혜를 주기 위해 오신 분이다.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하심에서 받았으매 은혜 위에 은혜니(grace for grace)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으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이라’(요 1:16-17)

 

위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 위에 은혜(grace for grace)’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시대에도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은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듭남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최종목적에 이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의 최종목적이 완성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한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흙 사람이 하나님의 최종목적에 이르려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람이 거듭나려면 스스로는 안 되고 제3자, 외부로부터 씨-생명을 이식 받아야 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씨로 오신 것이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 3:16)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씨, 곧 흙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조상이 되신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한 완전한 은혜가 완성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상의 은혜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 위에 은혜’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하늘로부터 오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땅에 속한 우리에게 자신과 똑 같은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히기 위해 오신 것이다.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고전 15:49)

 

첫 사람 아담이 무정란이었다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유정란으로 오신 것이다. 즉 아담은 단지 땅으로 왔다면 예수님은 씨와 땅으로 오신 것이다. 이 씨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과는 생명이 다른 분으로 하늘에 속하신 분이다.

 

‘위로부터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하여 땅의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느니라.’(요 3:31)

 

5. 결  언

 

사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모습을 가졌지만 우리와는 생명이 다른 분이다. 우리는 땅에 속한 생명을 가진 자라면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생명을 가졌기에 땅에 속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생명을 가졌기에 그분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의 가치기준으로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전한 복음을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듣지 못하였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분을 아는 특권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살피시느니라.’(고전 2:10)

 

사람의 영을 가지면 사람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영을 가지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성령을 소유함으로서 하나님의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할례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