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세상의 기존질서(종교와 정치)로부터 버림받으신 분

올더스조에 2024. 3. 29. 22:52

세상의 기존질서(종교와 정치)로부터 버림받으신 분

 

 

1. 들어가는 말

 

앞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상식과 기대밖에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 세상의 상식과 기대라는 개념의 근원은 소위 도덕의 근간이 되는 율법이라는 질서에서 나온 것이다. 이 율법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들어 온 것이다.(갈 3:19) 그러므로 세상의 통념적 상식의 내용은 율법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율법을 운용하는 틀이 종교와 정치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 밖에 계신 분임으로 율법으로부터 배척을 받으셨고 이 율법을 운용하는 세상의 체제인 종교와 정치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의 질서에 속한 분이고 세상은 땅의 질서에 속한 곳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배척당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러한 땅의 질서에 얽매였던 우리를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해방시키고 하늘의 질서 안으로 전입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율법이라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롬 8:2)

 

 

2.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3중 직분을 왜곡시킴

 

아담은 본디 하나님으로부터 대언자, 제사장, 왕이라는 3중 직분을 위임받았다. 그러나 아담은 사람이 죽지 않는 신이 된다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대언자의 직분은 빵으로, 제사장의 직분은 종교로, 왕의 직분은 정치로 왜곡시켰다.  요한일서 2장 16절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정의하기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인생의 자랑’이라는 세 가지로 단순하게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부여한 3중 직분이 육신의 정욕-빵과 안목의 정욕-종교와 인생의 자랑-정치로 변질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이 세 가지 범주 안에 다 포함된다.(이 블로그 ‘빵과 종교와 정치’ 참조)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은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나느니라.’(요일 2:16)

 

타락한 세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필수 요소는 육신을 위한 빵과 기적을 추구하는 종교와 지혜를 추구하는 정치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종교를 대표하는 민족은 유대인이고 정치를 대표하는 민족은 그리스인이다. 그래서 성경은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고전 1:22) 라고 말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생들은 기본적으로 생명보다 표적과 지혜에 열광한다. 그래서 종교는 표적을 구하고 정치는 지혜를 추구한다. 신이 되고 싶어 위치를 이탈한 인간은 기본적으로 표적을 추구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행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였지만 십자가에서 그분의 능력은 다 없어지고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한 사람도 남김없이 예수님을 떠나 자기 길로 간 것이다.

 

세상에서 지혜라는 단어는 좋은 단어로 인식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세상 지혜와 하늘의 지혜가 있는데 세상 지혜에 대해서는 관능적이며 마귀에 속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며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요, 땅에 속한 것으로 관능적이며 마귀에게 속한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거기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느니라’(약 3:14-16)

 

즉 성경은 정치로 상징되는 세상 지혜는 시기와 다툼이며, 이것은 관능적이며 마귀에 속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성경은 세상의 구성요소는 빵과 종교와 정치이며, 이 중에 권력의 두 핵심 축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통합되면 소위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는 것이다. 과거 중세까지는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통합된 왕국으로 왕이 자신의 왕국의 국교의 수장의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으로 중세에는 카톨릭이 그랬고, 지금도 법리적으로 영국은 영국 왕이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다.

 

 

3. 세상의 기존 질서(종교와 정치)로부터 버림 받으신 분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세상에 들어온 권력의 두 축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다. 종교의 내용은 표적과 율법으로 구분된다. 그래서 인간들은 근원적으로 표적을 추구하고 율법적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인간들에게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능력인 표적을 추구하고, 자신들이 행하지 못할 율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 그리고 정치의 주 내용은 협상과 타협이다. 그래서 정치에는 정의가 없으며 권모술수만 난무한다.

 

예수님은 사역초기에 많은 표적을 행하셨다.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불치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기 까지 하셨다. 그러자 종교 안에서 표적을 추구하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추종하였다. 심지어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구약에 예언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이스라엘 왕으로 여겼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던 무리들이 외쳐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그분을 맞으러 나아가서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여, 하더라.’(요 12:13)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당시 유대 종교권력의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실질적으로 등극한다면 자신들이 누리던 종교권력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과 또 성전 안에서 아이들이 소리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며’(마 21:15)

 

‘이에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기적들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리요? 만일 우리가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러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터전과 민족을 다 빼앗아 가리라, 하매’(요 11:47-48)

 

이에 따라 유대 종교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려고 논의하였다.

 

'그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함께 모여 예수님을 교묘히 붙잡아 죽이려고 협의하였으나 말하기를, 백성 가운데 소동이 있을까 염려되니 명절날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마 26:3-5)

 

그러나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아무 명분없이 죽이면 소요가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예수님을 죽일 합당한 명분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에게 꼬투리로 잡은 것이 안식일을 어긴 죄와 신성모독 죄였다.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을 어긴 죄와 신성모독 죄는 둘 다 공통적으로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율법은 인격적 융통성이 없기에 어떤 육체도 피해갈 수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자 안식일을 어겼다는 이유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자 사람이 되어 참람하게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 라며 안식일을 어긴 죄와 신성모독 죄로 유대 종교법정에 세우신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런 이유로 더욱더 그분을 죽이려 하니라. 이는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말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더라.’(요5:18)

 

'유대인들이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 하는 것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요 신성모독 때문이니 곧 사람인 네가 네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니라,' (요 10:33)

 

'유대인들이 그에게 응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거니와 우리 법에 따라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하리니 이는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니이다, 하니라.'(요 19:7)

 

예수님은 유대 종교법정에서 신성모독 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마26:63-66, 막14:61-64, 요19:7) 사실 안식일을 어긴 죄와 신성모독 죄는 첫 사람 아담이 범한 죄였다.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에 불만을 품고 사람의 위치를 이탈한 것은 하나님의 안식을 깬 것이고 동시에 신성모독 죄가 된다. 그래서 안식일을 어긴 죄와 신성모독 죄는 항상 같이 따라 다니며 둘 다 공통적으로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안식일을 어긴 죄가 신성모독 죄며 신성모독 죄가 안식일을 어긴 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법리적 죄명은 안식일을 어긴 죄와 신성모독 죄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담의 죄를 대속했다는 의미는 법리적으로 아담이 범한 안식일을 어긴 죄와 신성모독 죄를 대속했다는 의미다.

 

종교는 위선의 상징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도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정죄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유대 종교인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위선자들이라고 줄곧 말씀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마치 회칠한 돌무덤 같도다. 그것은 겉으로는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나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부정한 것으로 가득하도다.’(마 23:27)

 

유대 종교 기득권 세력들은 예수님을 죽이되, 일반 백성들의 소요가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당시 정치권력인 로마의 법정에 넘겨 죽이기로 모의 하였다. 예수님을 자기들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로마 정치권력의 손을 빌어 죽이기 위해 술수를 쓴 것이다. 이게 바로 종교가 주는 위선의 극치다. 그러나 이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빌라도마저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당시에 많은 유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과 동시에 예수님을 수많은 백성들이 추종하는 것을 ‘시기’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한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시기로 인해 그분을 넘겨준 줄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더라.’(마 27:18)

 

그래서 빌라도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노력하였다. 심지어 그의 아내조차 꿈자리가 사나우니 예수님을 상관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마 27:19)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그들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그를 재판하라’(요 18:31) 고 까지 하면서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 정치에는 정의와 공의가 없고 오직 타협과 협상만이 있을 뿐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었으나 수제사장과 장로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소리를 지르고 군중심리를 이용해 폭동을 일으키려고 하자 빌라도는 불의와 타협하게 되었다. 이에 빌라도가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그것과 상관하라’(마 27:24) 하니 거기에 모인 온 백성이 ‘그의 피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임하리이다,’ 하였다. 이에 빌라도가 마지못해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었다.(마 27:26)

 

당시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 정치법정에 넘겨주면서 인계한 예수님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요 18:33),  ‘네가 왕이냐?’(요 18: 37) 두번에 걸쳐 물었고 이에 대해 예수님은 두 번의 질문에 대해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하셨다. 당시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유대인의 왕은 로마의 카이사르 황제였다. 그래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반역죄로 사형인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 의미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인지 알았기에 예수님을 처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당시 유대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당신이 만일 이 사람을 놓아주면 카이사르의 친구가 아니니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으로 만드는 자는 카이사르를 대적하여 말하나이다’(요 19:12) 하면서 빌라도를 겁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마음에 걸려 유대인들에게 ‘너희 왕을 보라’(요 19:14) 하면서 계속 이 사건에서 자신은 상관하지 않고 유대인들 내부의 문제로 처리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를 없애버리소서, 그를 없애버리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요 19:15) 하면서 소리를 지르자 빌라도가 다시 유대인들에게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요 19:15) 하면서 또 다시 유대인들의 종교문제로 처리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자 다시 수제사장들이 ‘카이사르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15) 하면서 빌라도를 압박하였다. 만일 계속해서 빌라도가 이 문제를 회피한다면 빌라도마저도 로마법을 이행하지 않는 죄로 처형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빌라도는 마지못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게 된 것이다.(요 19:16)

 

우리는 여기서 타락한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교묘한 야합을 보게 된다. 정치에는 정의가 없다. 단지 무지 몽매한 군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유대 종교권력은 자신들이 피를 보지 않기 위해 정치권력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고, 정치권력은 자신들은 책임이 없고 종교권력에 책임을 떠넘기며 서로 책임을 회피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유대 종교권력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면서도 우리는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다고 할 것이고 로마 정치권력은 우리는 예수가 죄가 없는 줄 알았지만 유대 종교법정에서 사형을 선고했기에 단지 유대인들의 요청에 의해 실행만 했을 뿐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변명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종교를 대표하는 유대 종교 법정에서 버림받았고, 세상 정치를 대표하는 로마 법정으부터도 버림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상의 기존 질서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당하시고 버림받으신 분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땅에 속한 분이 아니고 하늘에 속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가 땅에 속한 사람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우리가 만약 하늘에 속한 생명을 가졌다면 우리 또한 고난받는 것이 마땅하며 그에 따른 영광은 우리가 족히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니라.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롬 8: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