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올더스조에 2023. 11. 28. 18:17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1.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사람의 운명

 

하나님의 창조목적

 

영이신 하나님은 몸이 없기에 하나님 자신을 표현할 몸을 필요로 하신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형상화할 목적으로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이들에게 하나님 자신의 생명-씨를 이식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려면 하나님과 마음(생명)이 같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고 이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씨를 이식하려고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창조될 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었고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몸의 영원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아담은 처음부터 영원한 생명이 없었고 영원한 생명을 받을 자였다.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창 3:22)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창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요 1:12-13, 요일 5:1)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는 개념은 하나님과는 별도로 영생을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된다는 의미다.  전등에 불이 들어오려면 전기의 근원인 발전소와 연결되어야 불이 들어오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관계적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영원한 생명을 현재의 하나님과는 별도로 창조될 수 있는 존재라면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이 두 분이 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처음에 아담이 영생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의 부족에서 오는 오류이다.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사람의 운명은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본성에 속한 몸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영에 속한 몸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4)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그러므로 흙으로 창조된 사람은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반드시 한 번 죽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은 육체의 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을 말하는 것이다. 전선이 연결되어 전기 들어오면 살았다 하고 전기가 끊어져 전기가 안 들어오면 죽었다고 하듯이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하나님과의 연결과 단절을 말하는 것이다.

 

 

2. 십자가의 출현 배경

 

그리스도인들 중에 십자가의 출현 배경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른 많은 수단도 있을 것인데 왜 하필 십자가를 통해 사람의 죄를 제거하고 생명을 주시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직 십자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며 이는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며 소멸하는 불이라고 말한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consuming fire)이심이라’(히 12:29)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자신의 생명을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흙으로 창조된 사람이 불 하나님과 연합되어 재창조되어야 한다. 영이신 하나님은 불이시기 때문에 만물은 불에 태워져 재창조된다. 이와 같이 어떤 철이든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여져서 새로운 철로 재창조된다. 나무의자와 사람도 저절로 연합이 되지 않지만 불에 태워지면 둘 다 재가 되어 연합될 수 있다. 그래서 불 하나님은 만물을 재창조하는 용광로 하나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흙은 불에 구워져 돌이 되고 돌은 더 강한 불에 태워져 보석이 되듯이 성경은 현재 흙으로 지음받아 구원받은 우리를 살아 있는 돌(벧전 1:5)이라고 하고, 향후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몸이 되는 것을 보석(계 21:19-21)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이 불이라는 개념에서 화염검 - 번제단 - 십자가라는 개념이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성경은 번제단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제물이 불에 태워지는 것을 불 하나님이 제물을 먹는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흙 사람이 불 하나님께 먹혀진다는 의미인데 신약에서 와서 바울은 이 과정을 ‘죽을 운명(mortality)으로 창조된 사람이 생명이신 하나님께 삼켜진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mortality)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죽을 운명(mortality)으로 창조된 사람은 아무런 물리적 작용없이 저절로 영원한 몸을 입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 즉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께 삼켜짐으로 죽지 않을 운명(immortality)의 새로운 몸을 입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mortal)이 죽지 아니함(immortality)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고전 15:54)

 

 

 

3.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다.

 

만물은 불에 들어가면 재가 되듯이 불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모두 죽는다.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을 터이므로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출 33:20)

 

또한 앞서 언급한대로 불 하나님은 만물을 재창조하는 용광로 하나님이라 할 있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히 심판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재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위 말씀에서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이 나온 것이다. 단순히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혜택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할 수 없다. 십자가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이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인 것이다.

 

 

4.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통상 십자가를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속할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창세 전에 정해져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사람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본디 아담은 영생을 가진 자로 창조되지 않았고 영생을 얻을 자였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담의 범죄 유무와 상관없이 창세 전에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위 말씀에서 ‘지혜’는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로서 십자가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비로서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에게 계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 지혜를 알 수 없었는가? 하나님께 자신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일부러 이 지혜를 신비 속에 감추어 놓았다고 말한다. 이는 예수님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창조목적은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부러 그들이 이 지혜를 깨닫지 못하도록 잠들게 하는 영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들게 하는 영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11:8)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눈을 멀게 한 이유는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희생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를 믿지 아니하는 데 가두어 두신 것은 친히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심이라.’(롬 11:32) 

 

그래서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십자가의 권능과 지혜에 대해 바울을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들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았느냐?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되었느냐?  누가 그분께 먼저 드려서 다시 보답을 받겠느냐?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롬 11:33-36)

 

 

5. 십자가의 위치가 인간의 근원적 위치다.

 

우리는 십자가를 단지 고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속'한 지점이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간 지점도 아니고,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한 지점도 아니고, 죽은 자를 살린 지점도 아닌 오직 ‘십자가’라고 말한다.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 1:7)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 1:14)

 

죄란 하나님이 정해준 피조물이 자신의 '위치를 이탈했다' 라는 의미며, 구속이란 하나님께서 정해준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정해준 원래 위치로 돌아오면 죄가 없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었는데 속이는 자에게 속아서 다른 이의 아들이 되겠다고 가출했다가 속은 것을 깨달은 후에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다시 아들의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에서 구속했다는 의미는 사람의 원래 위치가 십자가라는 의미다. 이게 무슨 말인가? 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라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영-하나님, 곧 십자가-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십자가가 원래 우리의 근원적 위치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깨닫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길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고 또 너희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 모든 성도들과 함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능히 깨닫고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엡 3:17-19)

 

 

6. 오직 십자가에서만 그리스도와 우리는 연합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경륜을 달성하는 핵심개념은 하나님과의 ‘연합’에 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창 2:24)

 

위 말씀은 하나님을 예표하는 아담과 사람을 예표하는 이브를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과 사람의 결혼에 있다.

 

전기제품은 정격전압이 아닌 것을 연결하면 고장이 난다. 100볼트 정격전압 제품에 220볼트를 연결하면 타버린다. 이렇듯이 하나님은 정 위치에 있는 사람만을 만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으로 진실만을 만나 주신다. 위치를 이탈한 피조물은 거짓아래 있고 정위치에 있는 자는 진실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이기 때문에 십자가만이 진실이다. 십자가를 벗어난 다른 모든 것들은 거짓이다.

 

그래서 번제단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듯이 십자가란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되는 유일한 지점이다. 인간의 운명은 영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다음 다시 태어나야 할 운명이다. 다시 태어나는 지점이 십자가인 것이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재창조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것이다.(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7. 결론 :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요 1:1)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다.(요 6:63)  영 -하나님은 불 -하나님이고 불-하나님은 십자가 하나님이다.  결론적으로 십자가는 하나님 자신으로 우주의 중심이며 만물의 근원이다. 우리 또한 십자가가 우리의 원래 위치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유일한 장소이며, 영원한 생명이 태어나는 자궁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삼켜져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고후 5:4)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거듭남, 곧 구원이 없다. 우리의 구원은 태어나는 것이지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 14:6)

 

예수님을 믿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물위로 걸어가신 예수,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한 예수, 죽은 자를 살린 예수를 믿어서는 구원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그것은 다른 예수이며 다른 복음이다. 우리는 소위 그리스도인들과 가끔 이야기 하다가 십자가를 말하면 애써 외면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모르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인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과 세상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걸려 넘어지는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추구하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고전 1:22-24)

 

그러나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안다면 십자가는 걸려 넘어지거나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능이요, 지혜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