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의미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의 의미를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제거하시는 분 정도로만 알고 있다.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 1:29)
그러나 하나님의 최종적인 창조목적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죄 문제를 해결하고 두 번째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다. 죄 문제는 법리적인 문제이고 생명을 주는 것은 유기적인 문제이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창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 1: 12-13)
그러므로 흙으로 창조된 아담은 처음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창조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운명이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죄와 관계없이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어야 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다만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함이거니와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또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 10:10)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죄와 관계없이 창세전에 정해져 있었다.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우리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금 나와라 뚝딱하는 식으로 뭐든지 다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과는 별도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도 영생을 가진 분이고 아담도 영생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 분이 계신다는 의미임으로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 라는 의미는 영생이신 하나님께 연결이 된다는 의미이지 하나님과는 별도로 영생을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발전소가 생명의 근원이라면 우리는 전등으로서 전기가 연결되어 불이 들어와 전기의 형상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거와 같은 개념이 우리가 영생을 얻는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정한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씨를 받아 육체가 반드시 죽고 부활의 몸으로 전환되도록 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순히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영생을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최종목적을 달성하는데 하나의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지 죄 문제 해결이 최종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17절에 이런 말이 있다.
이러므로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내 생명을 다시 취하려고 그것을 내놓기 때문이라.(요 10:17)
위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단순히 우리의 죄 문제에만 고착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이라면 뭔가 이상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기서 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을 우리 죄인들을 위해 버린다고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버린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육체로 지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영적인 부활의 몸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 15:50)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육체로는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다. 공중의 새는 새의 몸을 입어야 공중에 살수 있고, 물고기는 물속에 살려면 그에 합당한 몸을 입어야 하듯이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그에 합당한 영적인 몸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는 것은 영생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지 무죄 자체가 영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진리다. 예수님도 죄가 없어도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사람은 반드시 한번 죽고 부활해야 한다는 하나님께서 정한 인간의 운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레위기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예표하는 제물의 종류는 크게 희생물과 헌물이 있다. 희생물은 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헌물은 죄와 관계없이 드려지는 제물인데 공통점은 둘 다 죽음으로 드려진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하나님께 헌물의 위치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헌물은 번제단에서 불로 태워지는데 이것을 성경은 불이신 하나님께서 음식으로 드신다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사람은 죄와 관계없이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음식헌물(소제)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풀이 소가 되려면 풀이 소에 먹혀야 되고, 소가 사람이 되려면 소가 사람에게 먹혀야 되듯이 사람도 영생을 얻으려면 영생이신 하나님께 먹혀야 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삼켜져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mortality)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위 말씀에서 죽을 것으로 번역된 mortality는 죽을 운명이라는 의미다. 즉, 죽을 운명으로 창조된 우리는 생명이신 하나님께 삼켜짐으로 부활의 몸인 죽지 않을 운명(immortality)을 바뀌는것이다. 아을러 이 과정을 고린전서 15장 54절에서는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mortal)이 죽지 아니함(immortality) 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고전 15:54)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부활에 대해서 죽을 운명(mortal)으로 창조된 사람이 죽지 아니할 운명(immortality)의 몸을 입게 된다고 표현하면서 이것을 다시 이사야서 25:8을 인용하여 ‘사망이 승리가운데 삼켜졌도다’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사망’은 우리의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를 가리키고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망이 승리 가운데 삼켜졌도다’(고전 15:54)라는 말씀과 ‘죽을 것(mortality)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말씀은 같은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을 단순히 죄 문제에만 고착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없었다는 낮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창조자체가 의미가 없다. 성경의 모든 주제는 예수그리스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선악과를 통해 병을 주고 그리스도를 통해 약을 주는 분이 아니다. 우리 인생은 설령 죄가 없더라도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한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순히 우리의 죄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크고 원대한 하나님의 왕국 건설이라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새인류의 씨로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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