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올더스조에 2021. 8. 1. 22:19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죄를 짓지 않았다면 첫째로 우리 육신이 죽지 않고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둘째로 예수님은 필요없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우리 육신이 죽지 않고 살고 있을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217절에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라는 말씀을 육신의 죽음으로 해석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성경적 의미의 사망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의미다. 특히 아담은 처음부터 영생을 가진 자로 창조되지 않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였다.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3:22)

 

영원한 생명이란 영이신 하나님 자신이다. 그래서 영생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1:12-13, 벧전1:23, 요일5;1) 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는 사람이 부활생명을 가지는데 있다. 이것은 창세기 2장에서 아담과 이브를 통해서 계시해 주고 있는데 에베소서 5장에서 바울은 창세기 2장의 아담과 이브를 그리스도와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이것은 큰 신비니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1-32)

 

즉 아담은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이브는 교회의 예표이다. 아담의 잠자는 죽음을 통해서 이브가 산출되었듯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산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유기체다.

창세기 2장의 아담과 이브의 계시는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의 계시이므로 이는 사람은 죄가 없어도 근원적으로 거듭나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죄가 없어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산출되기 때문에 교회는 이미 창세 전에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1:4-6)

 

당연히 그리스도의 죽음도 우리의 죄와 관계없이 창세전에 정해져 있었다. 부활생명이란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산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하나님의 창조목표는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에 있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출된 부활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그래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유기체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으로 동일체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목표는 그리스도, 곧 교회인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이다. (엡5:31-32) 그러므로 만일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가 필요없다는 논리는 말도 안되는 논리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창조목표인데 그리스도가 필요없다면 하나님의 창조 자체가 필요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는 부활생명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구성체인데 이는 세상에 죄가 들어 오기전인 창세 전에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이식받아 다시 태어난 사람들의 구성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위해서도 필요한 분인 것이다. 동물의 왕국은 동물의 생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왕국이듯이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생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왕국이다. 즉 그리스도가 아닌 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이것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이 깊이 잠들다라는 원 의미는 죽었다라는 의미다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분께서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 살로 채우시며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2:21-24)

 

위 말씀에서 아담은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운명을 예표하고 있다. 즉 아담은 죽음을 통해 부활생명을 산출했듯이 우리 또한 반드시 잠자는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생명을 산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의 죽음은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를 죽지 않고 잔다’(마 9:24, 막 5:39, 눅 8:52)라고 하신 것이다.

창세기 2장의 아담과 이브에 대한 계시는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 밝혔듯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계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이며, 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이식받아 다시 태어나야할 운명이라는 것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3:3) 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은 본성에 속한 것이 첫 번째고 그 뒤에 영에 속한 몸으로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졌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 (고전 15:44)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그렇기 때문에 흙으로 지어진 사람은 반드시 한번은 죽도록 운명지어 졌으며, 하나님의 생명을 이식받은 사람은 의로운 자의 부활로, 사탄의 생명을 이식 받은 사람은 불의한 자의 부활로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졌다.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24:15)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왕국인 하나님의 왕국은 죄가 없더라도 혈과 육에 속한 사람은 들어 갈수 없으며 반드시 영에 속한 몸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결론적으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육신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념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사람이 죄가 없더라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간단하게 증명된다. 왜냐하면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죄가 없었지만 십자가에서 명백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탄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는 신들과 같이 된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다.(3:4) 사탄은 죽지 않는 자신의 강점을 가지고 육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약점을 공격한 것이다. 여기에 아담은 속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지니라.’(3:19) 라고 하셨는데 이 의미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흙이지 사탄과 같이 신이 될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은 흙으로 지어진 다음 한번은 죽고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도록 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최종 목적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타락한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육신이 죽지 않고 신들과 같이 되려고 하는 깊은 속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속은 것이다. 대부분 사이비 이단 교주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죽지 않는 신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 또한 타락한 아담의 깊은 속성의 결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아담이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는데 선악과를 먹어 육신의 죽음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락한 아담의 깊은 속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전히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아담은 죽지 않는 신이 되고자 하였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신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목적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며,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인류 유사이래 예수님은 가장 신과 같았던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담을 대신하여 가장 신과 같은 사람으로서 아담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십자가에서 일반사람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죽음으로서 사람은 죽지 않는 신이 될수 있다는 사탄의 말은 거짓말로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한 다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지니라‘(3:19)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아담이 죄를 범해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은 무엇을 해도 죽지 않는 신이 될수 없고 하나님께서 정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이며, 결국 인류유사 이래 가장 신과 같았던 사람이자 죄 없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서 최종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된 것이다.

 

 

2.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없었을까?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교회인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인 창세전에 예정되어 있었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유기체임을 살펴보았다. 특히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영적인 왕국임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오직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에 있다. 하나님의 왕국의 구성체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인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도 죽음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도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단지 우리의 죄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두 가지 위치가 있는 것이다. 레위기의 율법의 제사의식에 보면 그리스도의 인격을 상징하는 제물의 종류로 희생물(Sacrifice)과 헌물(offering)이 있다. 희생물은 죄를 용서하기 위한 위치고, 헌물은 죄와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위치로서 공통점은 둘다 죽음으로 드려진다는 것이다. 희생물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법리적인 위치라면 헌물은 생명을 얻기 위한 유기적인 위치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헌물의 위치로 창조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홍해의 침례가 있었고, 요르단 강의 침례라는 두 번의 침례가 있었던 것이다. 홍해의 침례는 희생물의 위치고, 요르단 강의 침례는 생명을 얻기 위한 침례였던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이르러서도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하는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내려치는 행위도 두 번이 있었던 것이다. 침례, 곧 죽음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생명을 얻기 위해서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해의 침례를 통해 죄를 용서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유기적인 생명을 얻기 위해 요르단 강의 침례를 받았듯이  죄 없으신 예수님도 침례 요한에게 요르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그분을 허락하더라.’(3:15)

 

위 말씀의 의미는 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침례(죽음)은 정해진 운명이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의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이 죄가 없었다면 예수님은 필요없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아닌 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하지 않다. 설령 내 육신이 죄가 없더라도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생명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고전15:50) 물속에는 물고기의 몸을 입어야 살 수 있듯이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인 왕국이기 때문에 영적인 몸만 들어갈 수 있으며, 그것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죄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가 필요 없다는 관념은 하나님의 경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이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그리스도라는 인격으로 구성된 영적인 왕국을 목표로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우리가 죄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가 필요없이 우리끼리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너무도 한심한 생각이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의 창조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죄를 허용했을까? 이는 어차피 우리가 죄가 없더라도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죄를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성경에 의하면 사람이 죄가 없다면 그리스도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 바울의 해석이다. 성경에 의하면 율법은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그래서 율법과 죄는 동일체다. 그런데 율법(죄)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선생이라고 하였다.(3:24) 즉 이 의미는 죄가 없으면 구원자인 그리스도를 찾지 않고 죄가 있어야만 그리스도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는 것이다.(5:20) 그러므로 성경은 어떤 책인가 하면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위해 합리적으로 죽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배열해 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경륜을 너무도 모르는 낮은 관념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표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창조 자체가 의미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