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 목적이다. 성경이 말하는 '아들'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보자.
1. 아들이란 기본적으로 ‘~ 의 표현(형상)’이란 의미다.
예수님은 목소리 큰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에게 천둥의 아들들이란 별명을 붙여주셨다.
‘또 그분께서 보아너게 곧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을 더해 주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과’(막 3:17)
여기서 야고보과 그 형제가 실제 천둥의 아들이란 의미가 아니고 천둥과 같은 목소리를 가졌기에 천둥의 표현이라는 의미다.
또 천사들에게도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사람들과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외부로 표현하는 형상을 지닌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창 6:2)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를 주 앞에 보이려고 왔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와서 주 앞에 자기를 보이니라.’(욥 2:1)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욥 38:7)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조된 천사를 의미한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아들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의 형상이란 의미로 천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대표하는 피조물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 피조물로 둘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다만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아들이고(요 1:12-13), 천사는 창조된 아들이다. 그러므로 진짜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받은 아들은 거듭난 사람이다.
‘그분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가운데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1:5)
위 말씀에서 보면 구약성경에서는 분명히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신약에 와서 시편 2편 7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언제 내가 너희를 낳았느냐?’하시면서 반문하고 계신다. 천사는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태어난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만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고 태어난 자가 아들이 될 것 아닌가?’ 라고 반문하고 계시는 것이다.
2. ‘아들’과 ‘열매’는 같은 개념으로 하나님은 사람 농사를 통해 열매(아들)을 거두신다.
농부에게 열매를 얻기 위해서 씨가 필요하고 이 씨를 얻기 위해서는 첫열매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첫 열매를 통해 씨를 얻어 씨를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영생의 씨를 주기 위해 오셔서 첫열매가 되시고 인류를 위한 영생의 씨가 되신 것이다. 사람 농사를 짓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열매는 부활이다. 그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람 농사의 첫 열매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그리고 열매가 되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영생을 주는 씨가 되신 것이다. 이 씨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 3:16)
씨라는 의미는 생명이란 의미고 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는 의미는 영생을 주는 씨가 되셨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 15:46)
‘이제 주께서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거기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주님이 영이 되셨다는 의미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 농사의 첫열매가 되고 인류에게 영생을 주시는 씨가 되셨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 영, 곧 그 씨를 이식받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이 나고 오이씨를 오이가 나기 때문이다. 물위로 걸어간 예수,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 없다.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수님과 똑 같은 과정인 하나님의 사람농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planted)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롬 6:5)
3. 처음 난자(the firstborn)와 첫 열매(firstfruits)는 같은 개념으로 창세기 1장의 아담의 창조에서 기원되며, 이는 미래에 한 씨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마지막 날 그분의 사람 농사의 마지막으로 아담을 첫열매(처음난 자)로 거두셨다. 하늘은 땅을 위해 있고, 땅 안에 모든 것은 아담을 위해 창조됨, 즉 나무의 뿌리와 가지는 다 열매를 위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농부로서 6일간 창조의 농사를 통해 첫 열매로 창조물의 머리(대표)인 아담을 거두신다.
* 하나님의 농사는 2000년전에 갈보리에서 첫 열매로 예수그리스도를 거두셨고, 6000년 마지막 때 오늘 현재 수확철이 무르익어감(재림의 때가 다 됨)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벧후3:8)
모든 것이 하나님이 것이나,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첫 열매(처음난 자)는 하나님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처음 난 것 즉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를 여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그것은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출13:2)
‘너는 네 땅의 첫 열매의 처음 것을 주 네 하나님의 집에 가져갈지니라. ..’(출23:19)
농부이신 하나님의 첫 열매의 수확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목적(영원한 목적)을 알 수가 있다. 첫 열매가 열리고 난후 이어서 많은 열매를 수확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은 첫 열매, 즉 아담 한사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첫 열매에 속한 많은 열매를 이어서 얻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영의 원칙은 씨를 뿌리고 많은 열매를 얻는 것이다 (첫 열매→추수→이삭줍기)
· 구약 :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이삭의 씨를 통해 이스라엘(야곱)을 얻음
· 신약 : 예수그리스도의 씨를 통해 교회를 얻음
처음 난 자와 첫 열매는 아들과 같은 개념이다.
‘너는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은 내 아들(son) 곧 나의 처음 난 자니라.’ (출4:22)
성경에서 아들(son)이라 함은 장자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처음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 아들(단수)’, 곧 장자라고 한 곳이 여기서 처음 언급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는 ‘내 아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로보건데 하나님의 목적은 개인을 얻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를 얻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아들’이라는 신분을 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당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노예 하에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아들이라는 신분을 부여함으로써 하나님께 있어 절대적인 존재이며, 하나님의 우주경영의 중심에 이스라엘이 있음을 의미한다.
· 장자권의 중요성 : 예수그리스도가 장자임을 통해 그 권리를 알 수 있음
: 왕(땅을 상속받고 통치), 제사장, 대언자(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탁권, 축복권)
* 성경전체의 구조 : 아담도 하나님의 아들(장자)였으나 장자권을 상실, 이에 따라 주님이 회복하시기 위해 오신 것을 묘사한다.
4.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아들’에 관한 두 가지 면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아들에 관하여는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 맏아들(the firstborn, 처음난자)이라는 두 가지 면이 있다.
○ 독생자
‘어느 때나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 1:18)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께 대하여 독생자는 본질적인 면에서 변치 않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이시고, 영원히 독생자이시다.
○ 처음난 자(첫 열매, 장자)
‘그분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가운데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1:5)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분이며, 시작도 끝이 없으신 분이다. 그분은 태어날 수도 없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언제 그분을 낳으셨다는 말인가?
여기에 대한 답이 로마서 1장 4절에 나온다.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롬 1:4)
즉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들어나셨다. 널리 선포 되셨다. 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사람 농사를 지으시는 하나님의 수확의 원리로부터 알 수 있다. 첫 열매인 예수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해 첫 열매(맏아들)로 태어나셔야만 뒤이어 많은 열매들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첫 열매로서 씨가 되어야만 우리가 그 씨를 이식받아 같은 열매종류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창조물 중의 첫 열매 종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 1:18)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근원이 같은 씨를 가진 자로서 형제가 되는 것이다,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예수 그리스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그리스도인들)이 다 하나(하나님)에서 났으니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따라서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아들에 관하여는 본질에 있어서는 독생자이나, 사역에 있어서는 첫 열매(장자)이다. 여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주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또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셨야만 했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밝히 드러나야만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 무언가 감추어져 있었기에 드러나셔야 했던 것이다.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롬1;4)
성육신 이전에 그리스도는 육신에 따른 본성인 인성을 갖지 않으셨다. 성육신을 통하여 그분은 인성 을 입으셨다. 즉 그분은 인성 안에 신성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땅 위에 계셨을 때 하나의 비밀이셨다. 그분의 바깥 모습에 따르면 그분은 완전히 한 인간으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나 행하신 많은 것들은 특출했으며, 어떤 평범한 인간 존재도 능히 말할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자신이 생명이시며 진리라고 말씀하셨다(14:6).
또 그분은 ‘나는 빛이라’(8:12), ‘나는 생명의 떡이다’(6:36)라고 말씀하셨다. 더 나아가 그분은, 누구든지 그분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갖지 못한다고 하셨다(3:36).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분이 땅 위에 계셨을 때 그분의 정체에 대해 경이롭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족을 알았지만 어떻게 그분이 그러한 일들을 행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마 13:54-56). 그들이 갈피를 못 잡은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분 자신을 인성으로 옷 입히셨기 때문었다. 따라서 감추어진 것이 밝히 드러나야 했다.
카네이션 씨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카네이션 씨와 다른 종류의 씨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다. 생명의 방법에 따르면 카네이션 씨는 꽃피는 카네이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흙 속에 묻음으로써 밝히 드러나게 된다. 카네이션이 아직 자그마한 싹일 때는 그것을 카네이션이라고 인식하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종류의 싹들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네이션이 성장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드러나게 다. 결국 우리 모두는 그것이 카네이션임을 인식할 수 있다. 꽃으로 만개함으로써 그것은 완전히 카네이션으로 드러나게 된다.
동일한 원칙으로 우리 또한 부활의 과정을 통한 생명 안의 변화로써 하나님의 아들들로 밝히 드러나게 된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우리 영 안으로 깊이 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도 부활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들로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아들의 신분인 우리 몸의 구속, 즉 영화롭게 되는 때이다(8:23).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롬8:23)
예수님은 인성 안에 신성을 지니셨으나, 인성은 많은 제한을 입고 계셨다. 영적인 몸이 아니었기에 피곤하셨고, 시공간에 제한을 받으셨다. 누구든지 인정하는 영광스러운 몸을 소유한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아담이 잃어버린 장자권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이다. 장자권은 옛창조안에서 처음 아담에게 주어졌으나 아담은 타락함으로 장자권을 잃어버린바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한을 아담에게 주셔따. (창1:28) 이것이 아담이 왕이었음을 알 수가 있고, 온 땅이 아담에게 주어졌다.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창1:31, 계4:11. 사47:3)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단수)이었다.(눅3:38) 단수 아들(son)은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적용, 즉 아담은 장자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타락하기 전 아담 또한 하나님의 장자로서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세 가지 직분을 다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통해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려고 하였음, 그러나 아담이 타락함으로서 장자권을 잃어버렸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장자권을 회복하실밖에 없었다.
이렇듯 장자의 권한은 곧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일치한다.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장자)로 태어난다(요1:12)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장자로서 그분의 창조목적 안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이제 단지 ‘독생자’가 아닌 많은 아들들 가운데 ‘장자(큰 형님)’가 되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에서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하나님으로부터)에서 났으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2:10-11)
그런데 많은 아들들 가운데 장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많은 아들들에 대한 구속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골 1:18)
결국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 농사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많은 아들들 가운데서 장자가 되셨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부활 전까지 하나님은 단지 한 아들만 있었다, 예수그리스도는 단지 독생하신 아들, 외아들이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많은 아들들을 얻으시는 것이기에 그분은 형제들 가운데 처음난 자, 즉 맏아들로서 다시 태어나셔야 했다. 장차 우리 또한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장자로 태어나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고전15:23)
수확의 원리는 첫 열매가 익으면 뒤이어 많은 열매가 익는다, 즉 그분이 첫 열매, 즉 맏아들이 되셔야만 뒤이어 많은 열매들(아들들)을 추수할 수 있다. 따라서 로마서 1:4절에서 그분께서 부활 후 아들(장자)로 드러나신다는 의미는 뒤이어 다른 많은 아들들을 이끄신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가 ‘거룩한 영’에 의해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듯이 우리 또한 ‘동일한 씨’에 의해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수확의 원리는 씨가 있고, 열매가 있으며, 첫 열매와 그 뒤에 따르는 열매의 씨는 동일하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첫 열매(그리스도의 영)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아들로 드러나신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롬8:23)
그리스도가 첫열매이듯이 우리 또한 같은 열매 종류에 참여한 자들이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창조물 가운데 첫 열매 종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1:18)
그러므로 우리로 구성된 교회를 장자들의 교회라고 불리운다.(히12:23) 교회 안에 있는 우리는 장자권을 가진 장자들의 무리이다. 우리의 장자권은 장차 천년왕국에 행사하게 된다. 이렇듯 아들이란 이름은 가장 귀하고 높은 것이다.
히브리서 1:5절을 통해 다시 한번 아들이란 이름에 관해 살펴보자.
‘그분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가운데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1:5)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주님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장자로 다시 태어나셨다. 아들은 아버지만이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신분임, 예를 들어 조선시대 왕의 아들로서 세자가 되면, 왕국에서 아무리 높은 재상이라 하더라도 세자보다 밑에 있다. 하물며 세상의 이건희 회장 아들도 위세가 삼성에서 당당하고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또, 아들이라는 신분은 많은 능력을 가진 천사들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들은 하나님의 인격의 표현이며, 생명관계이고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에 있음. 만왕의 왕이신 아버지하나님과 아들이란 하나님의 장자로서 왕권과 제사장, 대언자의 직분을 소유함으로서 하나님의 대위통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주님이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는 독생자로 오셨지만 재림시에는 맏아들로 오시며 그 때는 모든 천사들은 그분께 경배할 것이다.
‘또 다시(재림) 그분께서 그 처음나신 그분(the first be gotten, 맏아들)을 세상에 들어오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하라, 하시고’(히1:6)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결국 주님께서 (맏)아들이 되신다는 의미는 뒤이어 많은 형제들을 이끄신다는 의미임, 그분은 재림을 통해 그분께 속한 많은 아들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실 것이다.(히2:10)
우리 모두는 오늘날 우리의 아들의 신분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속에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때(롬8:23 몸의 구속) 더욱더 완전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완전히 부활되고, 본성 안에서나 모습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들, 장자로 드러나게될 것이다.
5. 구약성도의 장자권의 회복과정
(타락하기 전)아담 또한 인류의 장자로서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세 가지 직분을 다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통해서 이 세 가지 직분을 가진 사람을 통해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함으로 마지막 아담이 오셔서 이 장자권을 회복하실밖에 없었다. 이렇듯 장자권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아담은 옛창조 안에서 장자였고, 예수그리스도는 새창조 안에서 장자이시다. 그러나 아담은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실패함.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예표인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인 이삭(장자)이 세상에 나온다.
예표적으로 보면 이삭이 이스라엘의 씨로 장자이다. 왜냐하면 이삭은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죽었다가 살아난 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삭의 씨를 통해 야곱(이스라엘=하나님의 왕자)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창21:12)
특히, 아브라함은 장자의 3가지 조건중 2가지인 왕권과 제사장 직분을 가졌지만, 아들인 이삭에게 축복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권을 위임받아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자기 아들과 손자에게 축복을 하였고, 이 축복한대로 예언이 이루어 진다. 이는 구속이 없이는 많은 아들들을 불러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장자가 되었듯이, 이스라엘 또한 예표적으로 이삭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장자가 되었다.
‘너는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은 내 아들 곧 나의 처음 난 자니라.’(출4:22)
하나님의 경영의 원칙(창조목적)은 개인으로 시작해서 단체를 얻는다. 신약에서도 예수그리스도로 시작해서 많은 아들들로 구성된 교회를 얻는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삭 안에서 첫 열매이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첫 열매(장자)이다.
아담의 타락이전에는 하나님의 농사의 결과로 첫 열매를 얻으셨고, 아담의 타락 후에 사탄에게 빼앗겼던 것을 구속을 통해 장자를 얻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난 자, 첫 열매, 즉 장자의 소유는 주님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처음 난 것 즉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를 여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그것은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출13:2)
‘너는 네 땅의 첫 열매의 처음 것을 주 네 하나님의 집에 가져갈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것의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출23:19)
6. 성경에서의 장자권의 이동 사례
성경에 의하면 장자권은 그 땅의 두 배의 상속과 왕권과 제사장 직분과 축복권을 포함한다. 제사장 직분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왕권은 하나님을 사람에게로 인도한다. 창세기는 이 장자권이 장자로부터 차자에게로 이동될 수 있음을 계시한다.
아담의 아들도 가인이 아닌 아벨이 택함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아들 역시 장자인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이 택함을 받았고, 이삭 역시 에서가 아닌 야곱이, 야곱의 아들중 역시 장자 르우벤이 아닌 요셉이 택함을 받았고, 요셉의 아들은 므낫세가 아닌 에브라임이 택함을 받는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는 왜 이렇게 자주 첫째가 아닌 둘째에게 복이 상속되는 것인가?
이는 고린도전서 15:46에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 번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 번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는 까닭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죄가 있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첫 사람은 모형이기 때문에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둘째 사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은 첫 사람 아담이 아니라,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이 주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에서는 삶의 고난을 탈출하기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인 장자(맏아들)권을 둘째인 야곱에게 팔았다.
‘이것은 음행하는 자나 혹은 먹을 것 한 조각을 위해 자기의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히 12:16)
이것은 한마디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것을 가볍게 여겼다는 의미이다.
르우벤(야곱의 첫째아들)은 음행으로 인해 장자권을 잃었다. 정해진 두 배의 땅은 요셉에게 주어졌고(대상 5:1-2), 제사장 직분은 레위에게 넘어갔고(신33:8-10), 왕의 직분은 유다에게 넘어갔다. (창49:10, 대상5:2)
르우벤의 사례는 비록 장자권을 소유하도록 예정될 수 있지만, 음행이 그것을 잃을 수 있음을 계시한다. 음행을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로 더불어 하나님의 제사장과 왕이 되는 천년 왕국에서 상속을 받지 못한다.(고전 6:9-10, 갈 5:19-21, 엡 5:5).
또한 출애굽기 4장 22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이기는 하였지만 불신으로 인하여 장자권을 잃었다.(마 21:32, 롬 11:20). 누가복음 15장에 의하면 그분의 사역의 초기에 주님은 여전히 바리새인들로 대표된 이스라엘을 장자로 여기시고 세리와 죄인들을 차자로 여기셨다. 그러나 누가복음 15장에 의하면 장자권을 받은 이는 둘째 아들이었다. 이것은 장자권의 이동을 가리킨다.
그분의 사역의 끝 무렵인 마태복음 21장에서 주님은 교회를 구성하는 회개한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이 장자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이 차자임을 암시하셨다. 마태복음 21장 32절은, ‘요한이 의의 길로 너희에게 왔어도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나 세리들과 창녀들은 그를 믿었으며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그 뒤에 뜻을 돌이켜 그를 믿으려 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한다.
불신으로 인하여 장자인 이스라엘은 잘리워 졌으며 차자는 장자권 안으로 접붙인 바 되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믿는 죄인들은 교회의 구성 요소가 되었으며 오늘 교회는 장자의 교회라 불린다(히 12:23). 그러나 우리에게 장자권이 있기는 하지만, 신약은 그것을 잃을 수 있음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한다(히 12:16-17).
7. 결 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다. 아들이란 열매란 의미로 열매는 씨의 표현이다. 영(생명)이신 하나님의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씨-생명은 보이지 않고 외부에 드러나는 열매로써 그것이 무슨 씨인지 안다. 하나님도 영시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그분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들(열매)로서 그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장자와 같은 개념이다. 즉, 하나님의 왕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항상 권리와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자로서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아울러 신분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못할 때, 아들이라는 신분(구원)을 없어지지 않으나 장자로서의 권한(상속)은 천년왕국에서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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