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도시
□ 성경에는 두 개의 대조되는 도시가 나옵니다. 사탄이 건설한 바빌론과 하나님께서 건설한 예루살렘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창세기 11장에서 인간이 최초로 하나님을 반역하여 세운 왕국이 ‘바빌론’이며, 요한계시록17, 18장에서 이 바빌론이 자라서 ‘큰 바빌론’이 되는 것을 봅니다.
계시록 18장에서 바벨론은 멸망합니다. 구약에는 예루살렘이 있고, 신약에는 새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성경은 중간지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옥 아니면 천국, 바빌론 아니면 예루살렘입니다.
현재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않으면 바벨론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 가서 바벨론은 멸망할 것이고,
새예루살렘은 건축됩니다.
□ 두 도시의 의미
주님은 큰 바빌론을 향하여 계시록18장 2절에서 그곳을 ‘마귀들의 거처이며, 온갖 더러운 영의 요새이고,, 온갖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라과 선언하시는 반면, 새예루살렘을 향하여는 ‘저 큰도시 곧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계21:10)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도시는 말 그대로 장소적 개념입니다. 또 종교적인 면으로 예루살렘에서 행해지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참 신앙이고, 바빌론에서 행해지는 것은 마귀의 거짓신앙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땅에 그분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인데, 예루살렘이란 바로 그 왕국의 수도이고, 예루살렘 도시 안에 있는 성전은 현시대의 대통령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유사이래 인간이 세운 왕국도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은 이 개념을 모방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적 사탄은 어떨까요? 그는 이 땅에 사탄의 왕국을 만든 것이 자신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왕국 안에 당연히 자신의 사령부인 ‘사탄의 거처’가 있을 것인데 그 곳이 바로 바빌론입니다.
□ 먼저 예루살렘의 기원 살펴보면 그 도시는 하늘에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와“(히12:22)
여기서 예루살렘은 셋째 하늘에 있는 도시입니다. 따라서, 구약시대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모형입니다. 신약에 와서 계시록(21, 22장)을 보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새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을 봅니다. 따라서 구약시대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천년왕국이 끝난 후 새하늘에서 새땅으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의 모형입니다. 또한 구약시대에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곳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처음 창조한 다음 어느 곳을 그분의 왕국의 수도로 정하셨을 까요? 당연히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창2:12절의 에덴동산에서 생산되는 금, 델리움(진주), 줄마노(보석)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계시록 21장에서 새예루살렘을 건축(히11:10)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 도시의 성벽 기초석들은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데”(계21:19)
“열두 문은 진주니, 그 도시의 거리는 순금이며”(계21:21)
※ 상징 : 순금(하나님의 신성), 진주(교회, 중생), 보석(성도의 변화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으로)
* 우리는 진주 문을 통해 들어와 순금으로 된 거리를 걸음으로 보석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완벽한 임재 하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그분의 창조목적(영광, 통치)에 도달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새예루살렘으로 건축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은 사탄의 공격에 의해 범죄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창조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계획이 연기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영광과 통치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였으나,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람이 비록 죄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함으로 하나님을 완벽히 표현하길 원했습니다. 이것을 바로 ‘영광’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간창조 목적 중 다른 하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생명을 보유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땅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창1:28). 따라서 하나님의 생명을 보유한 사람이 이 땅을 통치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이 통치하나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통치하기에 하나님이 통치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치라고 하는데 통치란 그분의 왕국건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야만 즉 그분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만이 그분의 왕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영광이 먼저이고 통치, 즉 왕국이 두 번째입니다.
이러한 창조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아담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어야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담은 이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사탄의 유혹에 의거 죄를 범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이 아담에게서 사탄으로 넘어갔고, 아담은 왕국의 수도인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사탄의 왕국으로부터 그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또 다른 방책을 강구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자의 씨(창3:15)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탄의 왕국을 쳐부수고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오시는 조건은 영적인 치열한 전투를 통해서 조건이 성숙되어야만 오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요.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수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수까지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분의 왕국이 건설될 수 있으니까요.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사람은 하나님의 완벽한 임재 안에 있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은 언제든지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성한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사탄이 유혹했을 때 하나님과 상의했더라면 범죄하지 않았을 것이고 바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도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타락했고,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벗었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할 때 사람의 마음속에 기록해 놓으신 마음의 법 즉 ‘양심’이 작동한 것입니다. 이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신성한 통치로부터 벗어났고, 각 개인의 ‘양심의 법’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창조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인간통치 방법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성한 통치’에서 각 사람의 ‘개인의 양심의 통치’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도 하나님께 거짓말(창4:9)을 하였습니다. 그는 오만하였으며, 그의 죄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가인의 ‘양심’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양심이 타락한 인간은 창세기 6장에서 육신이 타락하여 육체가 됩니다.(창6:3) 그 결과 타락한 천사들과 사람의 딸이 결합하여 순수한 인간의 혈통을 혼잡케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넣어주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이었고, 또한 창세기 3;15절에 약속한 여자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는데 결정적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혼합된 인종을 폐기처분하고 당대 의인인 노아를 통해서 그분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홍수 후에 하나님의 통치방식은 양심의 통치에서 타인의 통제에 의한 통치, 즉 인간정부를 이 땅에 허락하여 그분 창조목적을 이루시고자 하였습니다. (창9:6)
□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그분의 왕국의 수도인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한 후 그분이 거하시는 장소는 창세기 11장까지 정확히 계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프라테스 강(창2:14)일대를 두고 치열과 영적전투가 벌어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유프라테스 강은 에덴동산에 근원을 두고 있는 강이며, 바로 사탄이 아담을 타락시킨 장소이며, 창세기 11장에서 처음으로 사탄이 거하는 장소인 바빌론이 나오는데 바로 이 바빌론이 유프라테스 강 일대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또 바벨탑사건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인류가 흩어진 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창세기 15:8절에서 언약을 하시는데 땅의 동쪽 경계를 유프라테스 강까지를 주십니다. 이 땅에 대한 언약은 천년왕국때 성취됩니다.
“바로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저 큰 강 유프라테스 강까지 네 씨에게 주노니”(창15:8)
따라서 창세기 11장에서 왜 사탄이 유프라테스강 일대의 바빌론 지역에 거처를 삼았느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사탄과의 중요 관심지역은 에덴에서 기원한 유프라테스 강이라는 것입니다.
□ 자 이제 우리는 여기서 바빌론을 왜 그렇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서 보면 그들의 타락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께 심판받을 만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상 ‘바빌론’이 성경에서 의미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우상숭배인 것을 압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 앞서 우리는 창세기 6장에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심판하신 후 하나님의 통치 방식은 인간정부를 통해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고자 하였습니다.
비록 이때까지 인류가 타락해서 심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대하여 인류가 조직적인 반역과 우상숭배를 했다는 기록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1장에서 하나님의 허락하에 하나님을 대신한 인간정부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법으로 그분의 창조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조직적인 반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반역은 곧 하나님대신 사탄을 택한 것이고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국가에 반역은 예나 지금이나 중형으로 다스려집니다.
□ 그러면 지금부터 바빌론의 반역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9:1/9:7/9:9). 그런데 인간은 바빌론 지역인 시날 평지에 정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창10:8-10).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의적인 반역이었습니다. 그들은 연합하여 도시와 탑을 건설하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로 돌 대신 인간의 노력으로 흙을 사용하여 벽돌을 만들었습니다(창11;3)
성경전체의 계시에 의하면 하나님의 건축은 결코 어떤 종류의 벽돌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건축은 돌로 되어 있습니다. 새예루살렘은 돌(보석)들로 건축됩니다(계21:18-20) 돌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고, 벽돌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땅은 자라나는 생명을 위해 있습니다.(창1:11) 그러나 벽돌을 굽는 것은 생명을 죽이고 태우는 것입니다. 예표적으로 흙은 ‘인성’을 상징하나 벽돌을 굽는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바로 죽이는 것은 사탄안에 있는 것입니다.
흙은 인성을 상징하고,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단2:34, 45, 마 21:42, 44)
주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시몬에서 게바(돌)로 바꾸어 주셨습니다.(요1:42) 교회는 반석(주님) 위에 돌로 건축됩니다.(마16:18) 우리 또한 부서지기 쉬운 흙에서 돌로 변해야 합니다. 결국 "돌을 대신하여"라는 말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 스스로 사탄종교의 굴레에 얽매이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로 사람이 만든, 하나님 없는 생활을 갖기 위해 도시를 건축하였습니다.
벽돌로 지어진 도시, 즉 생명이 없는 도시에는 하나님이 안계십니다.
넷째로 탑을 세웠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기자랑, 자기선전, 광고판으로 하나님 이름대신 자신의름을 내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선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역이고 우상숭배입니다.
□ 역사는 니므롯과 그의 아내가 “어미와 아이“로 둘러싸인 새로운 종교를 창설했음을 알려 줍니다. 상세한 내용은 히스롭(Hislop)이 지은 “두개의 바빌론“이란 책에 나옵니다.
* 니므롯과 세라미스(당대 절세미인)가 결혼, 니므롯이 죽자 세미라미스는 그 후 사생자를 낳았는데 그녀는 이를 자기 남편 니므롯의 환생(還生)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담무즈(Tammuz)라 하였고 그를 태양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 담무즈가 바로 여인의 후손 곧 구세주(창 3:15)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의 몸에서 난 자기 아들 담무즈와 결혼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침내 신의 아내요 신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물론 이후에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가 흩어졌으나 이후에도 온 세상은 ‘아기와 어미 신’에 익숙하게 되었고, 오늘날 카톨릭에 와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 시간이 흘러 구약시대에 왕국이 세워졌고.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득했습니다.(왕상:10-11),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고 성전은 우상숭배로 가득했습니다.(겔8:9-16)
신약시대 오순절 때도 교회는 영광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교회도 우상들로 가득찼습니다. 오늘날 로마 카톨릭은 우상들로 가득합니다. → 이런 교회를 큰 바빌론, 큰 음녀라고 함
에스겔서 10장에서 하나님의 영은 성전을 떠나게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갑니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성전 안에는 기구들을 가져가서 느부갓네살의 신전안에 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 온 교회가 바빌론에 의해 파괴되었고, 바빌론 종교가 교회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약탈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나 바빌론 종교 로마 카톨릭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목적으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포로된지 70년만에 개입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소수의 무리가 돌아갔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집들의 기구들을 가지고 되돌아 갔습니다.(스1:7)
□ 역사적으로 바빌론 종교가 이 땅에 이어져 내려온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BC 3000년경 인류 최초의 신정일치 국가였던 바빌론 왕국의 사탄의 종교체제는 계속해서 그 지역을 정복하여 새로운 지배제국이 된 앗시리아 - 신바빌론(다니엘서의 바빌론제국) - 메데,페르시아 제국까지 이어져 내려옵니다. 이후 바빌론은 종교체제는 요한이 살았던 소아시아의 퍼가모로 사탄의 본거지가 옮겨지고, 로마제국이 출현할 때가지 계속 사탄의 처소가 되어왔습니다(계2:12-13). 이후 B.C 133년 퍼가모의 왕이자 대사제인 아틀라우스가 죽을때 그는 “바빌론 사제회”의 지배권을 로마에 위임했습니다. 그후 로마인들은 이 대사제를 그들 도시의 지도자로 받아들였고, B.C 74년에 줄리어스 시저는 바빌론 종교의 대사제가 되었습니다. 이렇듯이 “바빌론 사제회”의 우두머리가 첫 로마황제가 되었고, 로마는 바빌론의 전승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로마황제들은 계속해서 최고 사제의 자리를 지켰으나, AD 376년 그라티안 황제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따라 교황자리를 거부했고, 이때 로마교회의 감독이었던 다마수스가 바빌론 종교의 수장에 오르면서 바빌론 종교와 기독교가 결합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로마 카톨릭입니다.
□ 예루살렘과 바빌론은 문자 그대로 장소적 개념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장소적 면과 종교적인 면입니다. 장소란 말 그대로 가시적인 도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면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신앙체계를 말합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참 신앙이 있고 바빌론에는 사탄을 섬기는 거짓종교가 있습니다. 이렇듯 계시록에서는 바빌론의 두 가지 면을 보게됩니다. 계시록 17장에서는 종교적 바빌론을, 18장에서 장소적 개념의 도시인 물질적 바빌론을 보게 됩니다.
종교의 창시자는 사탄이며, 사탄이 관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맘몬신으로 상업입니다. (겔28:16)
사탄 안에서 우리는 종교적 바빌론과 물질적 바빌론을 발견합니다. 모든 이단종교가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지구상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이단종교는 카톨릭입니다.
“또 일곱 병을 가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나와 이야기하며 내게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들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라”(계17:1)
성경은 우상숭배자를 음녀라고 합니다.(계17:1)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할 때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허락하셨는데, 이것은 궁극적으로 새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결혼’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결혼제도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하나님과 사람의 우주적인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자, 교회의 신부요, 장차 남편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아내로서 간음이고 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13:4에서 ‘결혼을 모든 것 중에서 존귀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세6장에서 타락한 천사와 사람의 딸들이 결합하여 사람의 씨를 혼잡하게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 카톨릭은 그냥 ‘음녀’도 아니고 큰 ‘음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여자는 자주색 옷과 주홍색 옷을 차려입었고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미고 가증한 것들과 자기의 음행으로 인한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금잔을 손에 가졌더라(계17:4)
* 그 여자는 새예루살렘이 건축된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도금하다, 가장하다)
→ 이것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 여자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5)
* 로마 카톨릭은 큰 음녀로서 ‘큰 바빌론’이며, 창녀들의 ‘어미’라고 말씀하십니다.
* 창녀와 음녀는 부녀관계임, 즉 가족이다. 어미와 딸은 서로 닮았고, 이들에게는 남편이 없다.
- 남편(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 카톨릭이 어미라고 하면 딸은 그 행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종교들입니다.
* 향후 카톨릭을 중심으로 종교통합이 일어날 때 카톨릭은 어미가 되고 그 안에 복속되는 개신교,
기타 종교들은 어미의 딸인 창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 종교적 바빌론의 결과는 사람들을 우상숭배(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합니다(계17:2)
□ 물질적 바빌론의 결과는 사람들을 물질적인 것에서 부요하게 합니다.
계18:3 “... 땅의 상인들도 그녀의 넘치는 사치로 말미암아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 바빌론의 최후
마지막 때 카톨릭(음녀)는 짐승(적그리스도)을 등에 업고 종교와 정치적으로 결합하여 일시적으로 세계를 지배(계17:3)함으로서 자신들의 오랜 꿈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성령께서는 혼동(바벨)이라고 말씀하십니다(레18:23)
결국, 짐승(적그리스도)의 지휘아래 열왕들(세계연맹)에 의해 음녀 종교적 바빌론은 멸망되고(계17:16)
* 왜냐하면 경배는 짐승(적그리스도)만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질적 바빌론(큰 도시)은 하나님의 심판 의해 멸망됩니다. (계18:21)
이 적그리스도의 왕국인 세계연맹은 계시록 19장에서 주님께 멸망을 당합니다(계19:19-21)
□ 회복되는 예루살렘
신약시대에 예루살렘은 어디에 있습니까?
엡2:22에 의하면 하나님의 처소는 우리 영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오늘날의 예루살렘입니다.
또한 문자적인 예루살렘은 결국 주님이 재림하시면 천년왕국 때 회복됩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처음 의도한 목적대로 사탄의 왕국과 사탄의 거처인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며, 그분께서 거처하시는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십니다. 또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는 온 우주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하고, 새 하늘에서 새 땅으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을 봅니다(계21:2). 그리하여 우리는 새예루살렘에서 주님과 영원무궁토록 살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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