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결혼(연합)을 통해 본 성경의 조감도

올더스조에 2012. 3. 17. 13:46

 

 

□ 성경은 주님의 ‘전쟁의 책’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랑의 책’ 즉 ‘결혼의 책’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결론은 새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결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결말을 맺기 때문에 ‘결혼의 책’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스토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백성을 택하시고 결혼에 이르는, 사랑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결혼, 즉 연합이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사람의 우주적 사랑과 구원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의 아담과 이브의 그림을 통해 구약시대에는 남편이신 하나님과 아내인 이스라엘을 보고, 신약에서는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보고, 긍극적으로 우리가 새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이러한 결혼, 즉 연합의 원칙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과 구원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 우리는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이브가 교회의 모형이라는 것을 에베소서 5장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이 땅에서 남편과 아내로 잠시동안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장차 우리가 계시록 19장에서 주님과 결혼을 한 후 계시록 21장과 22장에 가서 하나님이 남편이 되고 구원받은 백성이 아내가 되어 영원히 사는 모습의 모형으로서 미리 보여 주는 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창세기 2장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분의 형상과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의 창조목적을 달성하기에 다소 부족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분 자신이 직접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과 연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그릇으로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의 생명을 넣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사람이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합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사람과 결혼, 즉 연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육체가 될 지니라.'(창 2:24)

 

위 말씀은 남편 아내의 연합을 문자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표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 창세기 2장 18절입니다.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협력자를 만들리라'(창2:18)

여기서 남자는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즉,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완벽하시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인 교회가 없을 때 그분은 ‘스스로 좋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에게 배필이 필요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배필이 필요하는 것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분 자신의 배필을 얻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영원 가운데 하나님은 혼자이셨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그분이 외로우셨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바램은 다른 어떤 피조물, 심지어 천사들에 의해서도 채워질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만이 그분의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란 단어를 들을 때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합니다. 출애굽기 31장 17절입니다.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음이라'(출31:17)

 

모든 창조물의 대표격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을 보시고 상쾌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사람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배필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로마서 11장에 나와 있는 접붙임의 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접붙여지는 두 존재의 생명은 비슷해야 합니다. 사람이 비록 하나님의 생명과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유사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좋은 올리나무이신 그리스도께 야생 올리브나무 가지인 우리가 접붙혀지면 그 신성한 생명이 야생올리브나무의 가지인 우리에게 흘러들어와 우리 또한 좋은 올리브나무와 하나가 되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온 우주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배필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15장에서는 그리스도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들이라고 말씀함

 

 

 

□ 결혼을 하려면 누군가 상대방에게 먼저 호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인간세상에서도 일상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구혼을 합니다. 예표적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남자는 하나님의 모형이고 여자는 사람의 모형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분의 배필을 얻기 위해 사람에게 구혼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르심의 궁극적인 결말은 무엇입니까? 부르심에 응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아내가 되어 새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결혼생활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한 구혼의 결말입니다.

 

 

□ 그렇다면 그분의 ‘합당한 협력자(창2:18) 즉 배필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창세기2장에 계시된 그림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2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먼저 공중의 날 짐승과 들의 짐승을 데려다 주십니다. 그러나 아담을 위해서는 ‘합당한 협력을 찾지 못하였더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결국 아담의 합당한 배필은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이브를 만드셔서 아담의 배필로 주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배필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 만’이 배필이 될 수 있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 그림을 통해 주님이 원하셨던 결혼, 이 연합은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세우신 계획입니다.

비록 우리가 교회를 말할 때 죄로부터의 구속을 이야기 하지만 주님이 교회를 보실 때 교회는 항상 거룩합니다. 이러한 예는 이스라엘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분께서는 야곱의 불법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 안에서 잘못을 보지 아니하셨도다.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의 외치는 소리가 그들 가운데 있도다'(민23:21)

 

에베소서 1:4절에 보면 우리, 즉 교회는 창세 전에 선택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전, 창세전부터 계신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우리는 창세 전에 그분의 배필로 선택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창세기 2장에서 그분의 배필을 택하였을 때 그분은 죄를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구혼의 대상인 사람은 창세기 3장에서 죄를 지었고, 그분은 죄없는 거룩한 그분의 신부(교회)를 얻기 위해 타락한 인류로부터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내십니다.

 

☞ 여기서 잠깐 부르심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겠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선택과 예정의 교리에 의하면 구원받을 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가 거부했으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 또한 부르심 받았다 것은 그분의 부르심에 우리가 반응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다는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후 그분의 부르심에 우리가 반응을 했고,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영원하신 그분과 한 몸이 됨으로 자동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것은 창세기 15장 6절입니다. 창세기 15장 1~6절까지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하나님이여, 무엇을 내게 주려고 하시나이까? 나는 아이가 없사오며 내 집의 청지기는 다마스커스에서 온 이 엘리에셀이니이다, 하고 3. 또 아브람이 이르되, 보소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은즉, 보소서, 내 집에서 태어난 자가 내 상속자이니이다, 하매 4. 보라,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사람은 네 상속자가 아니요, 오직 네 배 속에서 나올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더라. 5. 그분께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거든 세어 보라, 하시며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씨가 그와 같으리라, 하시니라. 6.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 '(창15:2-6)

 

자 여기 보니까 아브라함이 의인이 되는 과정이 나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씨가 아브라함의 마음에 뿌려져 아브라함이 믿을 때,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이삭의 씨를 아브라함 안에 넣어주시는 것을 믿을 때 의인이라 불리웠습니다. 결국 예수그리스도와 아브라함이 연합되는 것을 믿을 때 의인되었습니다.

 

 

□ 이제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얻고자 하시는 그분의 백성, 곧 단체적인 아내의 수가 차게되자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광야로 불러 내십니다.

이것이 그분의 아내를 얻기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 곧 구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분의 배우자로 택하게 됩니다. 그러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이스라엘과 정혼하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말씀은 이집트에서 불어내시는 때를 말합니다.

'옛적에 주께서 내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참으로 내가 영존하는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노라, 하셨도다.'(렘31:3)

 

자 그러면 어디에서 정혼하였습니까?

 

'.... 네 젊은 시절의 친절과 네 정혼한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그때에는 네가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곧 광야에서 나를 따랐느니라.'(렘2:2)

 

주님은 이스라엘의 젊은 시절 친절과 정혼(espousal)한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을 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랑에 눈먼 남자와 같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정혼이 광야에서 이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광야시대에 언제, 어디에서 이 정혼이 이루어졌는가? 에스겔서 16:8절입니다.

'이제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며 너를 보니, 보라, 네 때가 사랑을 할 때더라, 이에 내가 내 옷자락을 네 위에 펴서 너의 벌거벗은 것을 덮어주며 참으로 맹세하고 너와 함께 언약 속으로 들어가매 내 것이 되었느니라'(겔16:8)

 

‘사랑할 때’와 ‘언약’이라는 말씀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할 때의 언약’이 언제 이루어 졌습니다. 이 문맥에 의하면 정혼의 때가 출애굽과 그 이후의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언약은 어디에서 이루어졌을 까요. 여기서 언약은 율법에 기초한 구약을 말합니다. 언약 속으로 들어가 내 것이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이 언약을 통해 내 것(정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언약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심으로 맺어졌다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출20장). 우리는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서 율법이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의 ‘범죄들로 인해 더 해진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율법은 당시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정혼 서약이었습니다.

아래 말씀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을지라도 그들이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주가 말하노라'(렘31:31-32)

 

이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날에 맺은 언약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깨뜨렸기에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스라엘과 다시 새언약을 맺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과거에 남편이신 하나님과 맺은 과연 언약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남편이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이라고 하였고, 문맥상 이것은 율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셨고, 율법에 기초한 구약이 정혼증서, 정혼계약이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출애굽기 처음 열 아홉 장에서 하나님께서 구애하시고 구혼하시어 심지어 그분의 백성과 데이트하시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의 유일한 사랑받는 대상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분의 원함은 백성이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 만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십계명중 처음 다섯 계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유일한 남편이되길 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아내로서 그분 외에 다른 애인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자와 결혼하는 모든 남자는 그 여자가 자기 외에 다른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요구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10계중 첫 번째 계명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형상을 만들지 말고’는 어떤 남자가 여자와 약혼을 할 때 그 여자가 다른 남자의 사진을 갖기를 원치 않는 거와 똑 같습니다.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은 당연하신 것입니다. 남편이신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지 않고 합당하게 사용해야는 것, 이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약혼한 사람이 반지를 끼는 것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분과 정혼했다는 표시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안식일이 거룩하게 됨, 곧 분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약혼반지를 끼었다는 것은 그녀는 지정되었으며, 어떤 남자로부터 분별되었다는 의미이며, 오직 그 여자만이 사랑하는 사람의 약혼반지를 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사람의 근원은 최종적으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정혼하실 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근원으로 기억하기 원하셨는 것입니다. 이렇듯 처음 다섯 계명은 하나님과 그분 백성의 혼인 조건으로 친밀함 안에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 전까지 외로우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랑을 구하고 계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친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처럼 사랑스런 분위기에서 처음 다섯 계명을 말씀하신 후에 나머지 다섯 계명을 '--하지 말라'로 구성된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남자는 자신의 아내에게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 현 세상에서도 정혼서류의 기능은 양자, 곧 남자와 여자를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원칙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은 우리와 하나님을 하나되게 합니다. 율법이란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표현이기 때문에 정혼서류인 율법과 일치하는 것은 하나님과 일치, 곧 연합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그리스도의 표현이면, 율법도 그리스도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깨닫지만 율법을 통해서도 죄를 깨닫는 거와 똑같습니다. 정혼서류의 기능적 측면에서 보면 이 율법이 하나님과 그분의 아내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가 되게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구약전체가 정혼방식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호세아서 등 모두가 그분의 아내인 그분의 백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이 그분과 이혼하려고 까지 했지만 다시 그분에게로 데려오실 것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을지라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주가 말하노라'(렘31:31-32)

 

이스라엘은 과거 정혼서약을 깨뜨렸으나, 하나님은 미래에 깨지지 않는 새로운 정혼서약을 맺을 것입니다.

'또 내가 영원토록 나를 위하여 너와 정혼할 것이요, 참으로 나를 위하여 의와 공의와 인자와 긍휼로 너와 정혼하며 나를 위하여 신실함으로 너와 정혼하리니 네가 주를 알리라'(호2:19-20)

 

물론 이 말씀은 미래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다시 정혼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구절들에서 주님께서는 정혼이라는 단어를 세 번 사용하셨습니다. 이혼한 아내였던 이스라엘이 여기에서 다시 남편인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구약이 하나님의 배우자를 삼는 즉 결혼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 사랑은 흔히 눈을 멀게 한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사랑은 이런 눈 먼 사랑입니다. 만일 눈이 멀지 않고 사랑하는 자의 모든 결점에 대해 눈이 열려 있다면 우리는 별거하거나, 이혼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함에 있어 하나님은 마치 눈을 감으신 것과 같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고, 탈취자였지만 그를 사랑하셨고, 예레미아 31:3절에 있는 말씀처럼 영존하는 사랑’으로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한번 맺어지면 영원히 나누지 못하는 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과 교회를 그토록 사랑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결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그분께로 죄인들을 부르심은 그들에게 ‘구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죄인들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 신부를 얻기 위한 구혼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가서 6장 3절입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이의 것이요,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라,'

 

여기서 나의 사랑하는 이는 주님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은 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과 나는 하나(연합)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바로 이 아가서는 주님과 구속된 백성의 신성한 로맨스를 기록한 축소된 형태의 책입니다.

 

 

□ 신약에서의 결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신약에서의 결혼,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결혼이야기는 이야기는 이미 창세기 2장과 에베소서 5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한 육체가 되었습니다(창2:23-24), 사실상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영입니다. 왜냐하면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기 때문입니다(고전 6:17), 에베소서 5:29-32절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결혼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대한 모형이다]라고 말씀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9:15절에서 주님은 신랑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3:29절에서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니'

 

 

□ 주님께서 그분의 신부를 취하기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부활을 통해 그분의 신부가 되도록 교회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요 3:3 - 5) 

주님은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가지신 신랑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우리 또한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가질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향하여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엡5:30)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배필이 될 수 있습니까? 오직 거듭남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 신약성경에서 신랑으로 오신 주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부르실 때 구혼하고 계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냐?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요21:15)

주님께서 두 번 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17, 18)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남편과 아내의 사랑과 같은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14:21절입니다.

'내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다면, 즉 우리가 그분의 신부가 되지 않는 다면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부부가 서로 사랑함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과 하나가 될 때만이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로마서에 현재 주님과 우리의 결혼 상태를 표현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만일 그녀(사람)가 자기 남편(옛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간부(姦婦)로 불릴 터이나 그녀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나니 다른 남자(새사람=예수님)와 결혼할지라도 간부가 되지 아니 하느니라. 그러므로 내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다른 이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신 이(예수님)결혼하게 하려 하심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롬 7:3~4)

* 자기 남편은 율법이 아니라 롬6:6절에 나와 있는 옛사람임,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아내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인해 우리의 남편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 자신, 곧 옛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에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한 의도대로 새사람인 예수그리스도와 결혼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 현재 우리는 결혼의 과정 중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처녀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고후11:2)

현 시대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간의 약혼한 상태입니다.

 

 

□ 계시록 19장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랑이신 주님과 결혼을 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계19:7)

 

 

 

□ 창세기 2장에서 아담과 이브가 함께 살았다는 의미는 종국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내인 사람과 영원히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우주적인 결혼생활은 계시록 21장에 나와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사람은 함께 영원토록 결혼생활을 하게 됩니다.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더라'(계21:2)

 

 

맺는말

성경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거룩한 의미에서 우주적인 한쌍 즉, 그리스도안의 하나님과 신부인 하나님의 구속된 백성들 간의 로맨스를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우주의 유일한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이 우상숭배를 할 때 이것을 간음하였다고 하는 말씀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과 결혼, 연합에 있습니다. 구속, 침례, 안수 이러한 모든 성경적 개념은 결혼, 즉 연합의 원리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다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롬6:3)

'이는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하여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요, 곧 한 성령에 의하여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라.'(고전 12:13)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엡4:30)

 

이 하나님과의 결혼, 즉 연합이 없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이 없는 선행, 도덕, 모든 노력은 육신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결합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이 영'(요3:6)입니다. 육은 제아무리 어떤 노력을 해도 육입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없는 세상의 모든 것은 육입니다. 육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리 좋은 물건도 주님과 결합되지 않으면 부정한 것입니다. 어떤 곳에 금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고 그것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께 드려졌다면 그것은 거룩한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늙었더라도 주님과 결합되면 새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새로운 물건이 여기에 있더라도 주님과 결합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낡은 물건이 주님께 드려졌다면 새로운 물건이 됩니다. 주님과 결합되지 않은 모든 것은 낡은 것이고 부정하고, 죄로 얼룩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결합된 모든 것은 새로운 것이 되며, 거룩한 것이 됩니다. 주님과 결합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거룩한 무리, 곧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남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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