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하나님의 군대 운용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어서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의미를 성경은 ‘거듭난다’, 또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다’ 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디 흙으로 창조되었기에 영원한 생명이 없었다. 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 자신이기에 창조될 수 없는 것이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가질려면 사람은 반드시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내 아들은 태어나야 하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창조될 때 영원한 생명이 있었는데 죄가 들어와 육체의 죽음이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오는 말이다. 사람은 죄가 있으나 없으나 어차피 육신은 한번 죽고 부활하도록 운명지어 졌다. 죽지 않는다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우리 육신의 죽음과 삶에 있지 않고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느냐 아니면 끊어져 있느냐에 있다. 천사는 비록 죽지 않지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피조된 생명체이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기에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태어나야 한다.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 1:13)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에 자신을 형상화할 피조물로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역할을 다하려면 사람은 하나님과 생명이 같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생명을 이식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벧후1:4)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창조한 다음 자신의 생명을 넣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직접 넣어주시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중간 연결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두 가지 위치를 가지고 죽으셨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희생물로서의 위치와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시기 위한 헌물로서의 두 가지 위치를 가지고 죽으신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세우신 방책은 1단계로는 양심의 법을, 2단계로는 율법을, 그 이후로는 생명-영이라는 방책을 가지고 인류를 다루신다. 그런데 성경은 ‘양심의 법’과 ‘율법’을 같은 법이라는 관점에서 동일하게 본다.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conscience)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롬2:14-15)
양심(conscience)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마음속에 기록한 율법이며, 율법은 시내산에서 돌 판에 기록하여 모세에게 준 하나님의 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방책은 크게 율법과 은혜라는 두 가지 방책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을 구약(old Testament)과 신약(New Testament)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방책이 결정되면 이 방책을 수행하기 위한 부대가 선정된다. 전쟁의 지휘관이신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전을 5단계로 구분하여 각 단계별로 방책을 설정하셨고, 이 방책을 수행하기 위한 군대를 편성하고 지정하셨다. 구약성경의 네 번째 책인 민수기(Numbers)라는 책의 영적 의미는 하나님의 군대로 편성된다는 의미이다. 아래 표는 시대별 하나님의 방책과 하나님의 통치대상(가용군대)와 구원받은 하나님의 군대를 간략하게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작전단계 | 1단계 (창조-족장시대) | 2단계 (율법시대) | 3단계 (교회시대) | 4단계 (대환란) | 5단계 (천년왕국) |
하나님의 방책 | 양심의 법 | 율 법 (글자의 사역) | 은 혜 (영의 사역) | ||
가용군대 | 이방인 (구원+ 미구원 이방인) | 이방인 유대인 (구원+미구원 유대인) | 유대인 이방인 교 회 (구원 유대인+이방인) | 유대인 (구원+미구원 유대인) 이방인 (구원+미구원 이방인) | 왕국백성 (교회+구원받은 유대인과 이방인) |
하나님의 군대 | 구원받은 이방인 (아담, 셋, 노아 등) | 구원받은 유대인 | 교 회 (구원 유대인+이방인) | 구원받은 유대인+이방인 |
* 주 : 성경에서 이방인이란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를 말한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초기 인류는 하나님께 대하여 모두 이방인이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유대민족을 이루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였고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불러낸 무리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인 교회로 선택하셨다.(벧전2:9)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정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군대로 편성되었다는 의미다. 각 군대는 자기 임무가 있듯이 유대인과 교회는 임무가 다르며 하나님께서도 이들을 다루시는 방법도 다르다. 따라서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를 구분해서 다루신다.
1. 1단계 : 양심의 법 시대의 군대 운용
‘양심의 법’ 시대란 창조이후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까지이다. 하나님은 양심의 법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실 때에는 어느 특정 민족을 지정하지 않고 온 인류를 대상으로 통치하셨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한 자들은 하나님의 군대로 선발되어 구원을 받았다. 이 당시 인류는 모두 이방인이었다. 성경적 의미로 이방인이란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선민 유대민족이 형성될 때까지 지구상에는 이방인만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이 당시에는 인류 가운데 아담-셋-에녹-노아 등 소수의 특정한 몇몇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군대로 선발되는 특권을 가졌다.
이런 와중에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대적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들(타락한 천사들)을 세상에 내려 보내 사람의 딸들을 취하게 하여 사람의 씨를 혼잡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또 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삼으니라.’(창6:2)
이로 인해 타락한 천사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거인들이 태어남으로서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한 사람의 씨에 변형을 가져왔다.
‘당시에 땅에는 거인들이 있었고 그 뒤에도 있었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사람들의 딸들이 그들에게 아이들을 낳았을 때더라. 바로 그들이 옛적의 강력한 자들 즉 명성 있는 자들이 되었더라.’(창6:4)
성경은 사람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신의 씨를 사람에게 심어 오직 사람을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사탄은 이를 방해하여 사람을 자신의 아들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씨-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즉, 하나님은 미래 언젠가는 메시아를 사람의 아들-씨로 태어나게 하여 인류에게 씨-생명을 주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탄이 사람의 씨를 혼잡하게 한 이 사건은 ‘사람의 씨’로 오실 메시아를 근본적으로 방해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씨가 온전하게 보전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절대적인 공동목표이다. 씨는 병이 들면 개선하거나 고칠 수가 없고 병든 씨는 버리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당대에 사람의 씨로 온전히 보존된 의인 노아를 선택하고 혼잡하게 된 씨들과 분리하기 위해 물로 청소하시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것이 노아의 홍수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노아 후손인 셈과 야벳과 함은 세상에서 민족을 이루고 번성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주신 ‘양심의 법’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역에 이르고자 바벨탑을 쌓으므로 하나님께 반역하였다. 이 당시 세상은 땅도 하나였고 언어도 하나였다.(창11:1) 이때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자신들 스스로 강성하여 바벨탑을 쌓고 자신들 스스로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곧 피조물이 창조주께 반역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온 인류가 동시에 강성하여 하나님께서 반역하는 것을 막고자 먼저 땅을 나누었고(창10:25), 후에 사람의 언어를 나누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였고 그들을 온 지면으로 흩으셨다.(창11:9)
당시 인류는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법에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이 양심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께 반역한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양심이 법이건 율법이나 목적은 같은 것임을 살펴보았다. 차이라면 양심의 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에 사람의 마음 판에 기록하여 주신 법이고 율법은 돌 판에 기록하여 주신 법이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법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즉 인류가 변명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기록된 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심의 법이건 율법이건 같은 법으로서 이 법의 목적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자를 찾게 하는데 있다.(갈3:24)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갈3:24)
그러면 여기서 율법이 없을 시기인 ‘양심의 법’ 시대에 인류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자 그들에게 가죽 옷을 입혀주심으로 동물의 피 흘림을 통한 대신 속죄의 원리를 계시하셨다(창3:21).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방법이 아담의 후손들에게 전해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아벨(창4:3), 노아(창8:20), 아브라함(창22:13), 모세의 장인 이드로(출18:22) 등이 동물을 잡아 번제헌물을 드렸고, 모세도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율법을 받기 전에 이집트에서 파라오와 담판을 하면서 ‘우리가 주 우리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도록 왕이 반드시 우리에게 희생물과 번제헌물도 주셔야 할 터인즉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발굽 하나도 뒤에 남겨 둘 수 없나이다’(출10:25-26) 하면서 율법에 계시되어 있는 희생물과 번제헌물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보다 훨씬 이전 시대 사람인 욥도 번제헌물을 드렸다.(욥1:5)
‘그들의 잔칫날이 지나가면 욥이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또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들 모두의 수대로 번제 헌물을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짓고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저주하였을까 하노라, 하였기 때문이더라. 욥이 계속해서 이같이 행하였더라.’(욥1:5)
또한 하나님은 욥을 비난했던 욥의 친구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에게 그들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욥에게 가서 번제헌물을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이때 욥은 번제헌물을 드리는 친구들을 위한 제사장 역할을 하였다.
‘그런즉 너희는 이제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 헌물을 드리라. 그리하면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터인즉 내가 그로 인하여 받으리니 이것은 너희가 내 종 욥과 같이 나에 대하여 옳은 것을 말하지 아니한 대로 즉 너희의 어리석은 행위대로 내가 너희를 대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주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니 주께서도 욥을 받으셨으며 욥이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주께서 욥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시고 또 주께서 욥에게 그가 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시므로(욥42:8-10)
이로 보건데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인류는 동물의 피의 제사, 곧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도 이방인들이 제사를 드릴 때 제단 위에 동물 제물을 드리는 것은 이러한 유전의 변질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최초 계시해 주셨던 대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응답하셨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방인이었던 이디오피아 내시를 하나님은 빌립을 통해 구원하셨고(행8:26-38), 이방인이었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를 비롯한 그의 가족을 베드로를 보내 구원하셨다.(행10:1-48) 성경은 만물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격과 권능이 창세로부터 분명히 계시되어 있어 누구든지 이를 통해 깨달아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기에 그 누구도 변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롬1:20) 따라서 인류에게 글자로 된 성경 말씀과 같은 분명한 계시가 없더라도 시대와 장소와 관계없이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나리라.’(렘29:13)
그러나 이 당시 인류는 하나님을 찾기보다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람이 하나님의 위치에 오르고자 하였다. 결국 이러한 모든 행위가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하나님은 대적 사탄을 물리치고 하나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심의 법’보다 더 강화된 방책을 제시하시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에 기록된 양심의 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분명한 법이기에 인류도 하나님께 변명할 명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류에게 명확한 계시를 줌으로서 인류가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도록 하신 것이다. 즉, 구두계약은 증거가 없기에 부인하면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문서에 기록된 계약은 증거가 남아있기에 변명할 수 없는 것이다.
2. 2단계 : 율법시대의 군대운용
이제 하나님은 ‘양심의 법’이라는 방책으로는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더 강화된 새로운 방책을 제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인류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여 좀 더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를 제시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율법’이다. 양심의 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사람들 마음속에 기록된 법으로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법이 아니다.(롬2:14-15) 그러나 율법은 돌 판에 기록된 법으로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명한 하나님의 법이다. 사탄의 방해로 인해 하나님의 대책이 더 분명해지고 더 강화된 것이다. 양심의 법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들 각자가 각기 자기들 주장을 가지고 하나님께 변명할 명분이 있었다.
‘율법이 올 때까지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5:13)
이 의미는 인류는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양심의 법을 통해 모두가 죄인임을 인식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공식적으로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아담이 죄를 지었지 내가 죄를 범했나? 라고 항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율법이 옴으로 이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변명할 수 없고 모두 죄인임이 선언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알거니와 무엇이든지 율법이 말하는 것들은 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든 입을 막아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왜 모든 사람이 유죄가 되어야만 하는가? 유죄가 되어야만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고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구원자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롬 3:20~21)
마음에 기록된 ‘양심의 법’이든 돌 판에 기록된 ‘율법’이든 목적은 동일하다. 그들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자를 찾게 하여 하나님의 군대로 편입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율법이라는 방책을 사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먼저 인류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었고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게 하여 하나님의 군대로 편성하게 하였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왜 하나님은 처음에 양심의 법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시에는 온 인류를 대상으로 하다가 율법이라는 방책을 사용하기 위해 유대인이라는 특정 민족을 선발하여 하나님의 군대로 편성하였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앞에서 그 이유를 밝혔지만 추가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쟁에서 이미 적에게 노출되어 실패한 방책과 부대로는 승산이 없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새로운 방책과 새로운 부대가 필요하다. 이미 실패한 방책과 부대는 이미 적에게 노출되어 더 이상의 승산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존의 방책과 투입부대를 변경하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즉, 새로운 방책인 율법을 사용 시에는 온 인류 가운데서 선발된 특공대를 투입하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이 특공대로 선발된 군대가 유대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유대인이라는 민족을 만들어서 이집트에서의 400년간의 노예생활과 홍해의 기적을 통해 이집트를 탈출시키고, 광야에서 40년간의 혹독한 특수훈련을 거쳐 정예군대로 만든 다음 최종목표인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2단계 작전인 율법의 경륜 하에서 하나님의 가용한 군대는 ‘유대인’과 ‘이방인’ 두 부류다. 이중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전쟁에 투입된 부대는 유대인이다. 그런데 육체적 혈통에 의한 유대인이라고 무조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율법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동물을 잡아 헌물을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혈통에 있지 않고 영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율법 자구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롬2:28-29)
그러면 하나님께서 유대인, 곧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한 성경적 이유를 살펴보자.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선택된 것은 이스라엘의 규모나 힘 때문에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신 7:7) 이스라엘은 규모나 힘은 주변 국가들에 비해서 훨씬 작았고 약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거룩해서 택함을 받은 것도 아니다(신7:7, 9:4-6).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목이 굳은 백성이라고 하셨다. 단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다음과 같은 임무를 부여받기 위해 택함을 받았다.
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왕국이 되기 위해 선택받았다.
‘또 너희는 내게 제사장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네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들이 이러하니라.’(출19:6)
②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 앞에 본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택함을 받았다.
보라, 내가 주 내 하나님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법규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것은 너희가 들어가 소유할 땅에서 너희가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것들을 지키고 행하라. 이것이 민족들의 눈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명철이니라. 그 민족들이 이 모든 법규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민족은 참으로 지혜와 명철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4:5-6)
③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말씀을 맡기기 위해서 선택받았다.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혹은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롬3:1-2)
④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목적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메시아는 반드시 사람의 씨로 오셔야 했고, 이 ‘씨’는 어차피 어느 한 민족(유대인)으로부터 태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요4:22)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유대인)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5)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3:16)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류를 경영하는 대상은 아담으로부터 모세 이전까지는 온 인류를 대상으로, 모세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전까지는 유대인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교회의 휴거까지는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가 휴거된 후 예수님의 재림시 까지는 대환란의 시대로 다시 유대인을 중심으로, 그리고 천년왕국 시대에는 그때까지 구원받은 인류가 왕국백성이 되고, 이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 하나님의 가용부대, 곧 경영 대상은 구약시대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있었고 신약시대에 와서 교회가 새롭게 추가된다. 그러므로 현재 하나님의 경영대상은 유대인, 이방인, 교회 세 부류가 있다. 이것은 군대에서 지휘관이 자신의 휘하에 3개의 성격이 다른 부대를 보유한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런 3개의 성격이 다른 부대를 보유한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책을 수행하시는가? 큰 틀에서 보면 구약시대에는 율법이라는 글자의 사역을 수행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생명이라는 영의 사역을 현재 수행하고 계신다.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새 상속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시되 글자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나니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고후3:6)
그러면 군대에서도 이러한 방책을 수행하기 위한 부대가 있듯이 하나님께도 자신의 방책을 수행하기 위해 2단계 작전(율법)에 투입된 부대는 유대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2단계 방책인 율법은 하나님의 최종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라 다음단계로 이어주는 방책이다. 즉 율법은 하나님의 최종방책인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갈3:24)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갈3:24)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최종목적인 ‘생명’을 줄 수가 없는 결정적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에 위배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생명을 줄 수 있는 율법이 주어졌더라면 진실로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있었으리라.’(갈3:21)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방책은 하나님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고 단지 하나님의 최종방책인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낚시군은 고기를 잡을 때 고기를 모으기 위해 떡밥을 뿌린다. 떡밥은 고기를 낚는 수단이 아니고 낚시 바늘 앞으로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최종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줄 수 없는 율법이라는 방책에서 생명을 줄 수 있는 생명의 성령의 방책으로 변경하기 위해 생명의 주인 예수님을 보내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율법으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율법 밖에 있는 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롬3:20-2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방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책 중 최종방책으로 더 이상의 방책은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서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지장을 초래하게 되자 이 방책에 투입될 하나님의 군대를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전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보면 하나님의 목표는 흙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는데 있다. 이 방법은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우리의 죄와 관계없이 오셔서 죽음을 통해 생명을 주는 영이 되어야만 한다.(고전15:45)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계시면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최종목표는 거듭난 사람들의 연합체인 교회에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가 태어나려면 반드시 예수님이 죽고 부활해야 한다. 이를 위한 도구로서 유대인들이 사용된 것이다. 전쟁의 관점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여건조성 작전부대이다. 전쟁 시에 어떤 목표를 공격해서 탈취하려면 바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특수부대가 투입되어 본진이 공격하는데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도록 장애가 되는 것을 사전에 제거하는 작전을 하는데 이를 여건조성작전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상륙작전 시에는 먼저 특수부대가 투입되어 해안에 있는 장애물과 해안포를 제거한 다음에 본진이 투입된다. 만일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본진은 육지에 상륙하지 못한다. 바로 하나님의 전쟁의 여건조성작전부대로 투입된 특수부대가 유대인이고 교회는 본진이다.
3. 3단계 : 생명의 성령의 사역시대의 군대 운용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가용한 부대는 유대인과 이방인 두 개의 군대뿐이었고 율법시대에 투입된 하나님의 군대는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으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에 새로운 방책인 생명의 성령 방책을 제시했지만 유대인의 거부로 인해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유대인 대신에 이방인을 투입하기로 결정하셨고,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의 부름에 응함으로서 선발된 그리스도의 군대가 교회이다.
‘그러므로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견디어 내라. 전쟁을 하는 어떤 사람도 이 세상 삶의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그가 자기를 군사로 택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즉, 하나님은 율법이라는 방책 이후 신약시대에는 새로운 방책인 생명의 성령의 방책을 이방인들로 하여금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이 방책을 받아드린 자들이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인 것이다. 이 시대의 하나님의 가용한 군대는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 세 부류이다.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어떤 실족거리도 주지 말되’(고전 10:32)
교회란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고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으로 그리스도를 머리하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생명 유기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한 몸이다.
‘한 때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분은 우리의 화평이시니라. 그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사 우리 사이의 중간 벽을 허무시고’(엡2:13-14)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연합된 사람은 개별적으로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고전12:27)
‘그리스도의 지체’란 말은 나는 내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태어나서 내 아버지의 자손, 즉 지체가 되는 거와 같이 나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태어나서 그리스도가 내 조상이 되고 나는 그분의 자손-지체가 되는 동시에 그리스도와 한 생명으로서 한 형제가 된다는 의미다.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으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그러므로 현 시대는 하나님께서 3단계 작전을 진행 중이며 이를 위해 ‘생명의 성령의 사역’ 이라는 방책을 사용 중인데 이 방책은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완전한 방책이며 더 이상의 대책은 없다. 이 방책에 순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3-1. 이스라엘의 지위와 역할이 교회로 넘어왔다는 주장에 대하여
어떤 종교단체에서는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했기에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이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넘어왔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잠깐 그 문제를 좀 더 깊게 다루어 보자. 특히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구절은 아래 구절을 들어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상실한 것 같지 아니하니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라고 해서 다 아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곧 육체의 아이들인 자들 즉 이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아이들이 그 씨로 여겨지느니라.(롬9:6-8)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고 교회는 교회라고 말하지 교회가 영적이스라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이 틀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위 성경 문맥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육적이냐, 영적이냐 라는 기준으로 보면 분명 이스라엘은 육적 이스라엘이고,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 말씀을 보면 결국 ‘육체의 아이들인 자들 즉 이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아이들이 그 씨로 여겨지느니라.’(롬9:8) 하면서 육신적 혈통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영적 혈통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요1:12-13)
로마서 8장까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무슨 말을 하고 있나? 결국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복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다가 로마서 9장에 이르러 갑자기 자기 민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울은 자기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방인에게 이렇게 귀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육신의 형제인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육신적 자부심으로 가득차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근심을 말하면서 육신적 혈통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영적 혈통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어차피 육은 아무리 훌륭한 혈통을 가졌다 하더라도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을 통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요3:6-7)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1:12-13)
그러니까 하나님의 최종적인 방책은 글자(율법)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고후3:6)
그들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로마서 성경구절은 아래와 같다.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글자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나느니라.’(롬 2:28-29)
그러나 위 말씀도 로마서 9장 6-8절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어느 시대와 관계없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약시대에도 육신적 유대인이 되었다고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이 죄인이며 자신의 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동물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즉 형식적이고 표면적 유대인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속으로 유대인이 되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신약시대 교회가 유대인이라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어서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혹은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롬3:1-2) 라고 하면서 여전히 육신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교회가 이들의 주장처럼 영적 유대인으로 신분이 변경되었다면 바울이 바로 뒷말에서 ‘유대인이 나은 점이 무엇이냐?’라고 말하는 대신 소위 영적 유대인인 교회에 대해서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교회에 대해 말하지 않고 여전히 육신적 유대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로마서 2장 28-29절과 9장6-8절 말씀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생명은 영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교회가 유대인으로 신분이 변경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바울은 오늘날도 교회에서 겉으로 교인이 교인이 아니고 속으로 교인이 진정한 교인이듯이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속으로 유대인이 진정한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육신적 의나 혈통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이식받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구원은 표면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유대인이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②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표면적으로 보면 그들의 자의에 의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 속에서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눈 멀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의 눈 먼 것도 민족 전체가 아니고 일부이며 그리하여 현 시대에도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목표로 하는 이방인의 구원의 수가 충족되면 민족적으로 일시에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 멀게 된다는 것이라.’(롬11:25)
그런즉 이와 같이 이 현 시대에도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11:5)
‘그리하여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11:26)
이스라엘의 특권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넘어왔다는 자들의 주장대로라면 현재 이스라엘 전체가 눈 멀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현재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면 이들이 이스라엘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위와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 10명이라면 1명만 남아 있어도 가족으로서의 역할은 수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스라엘 전체가 자기들의 권리를 포기해야만 이스라엘의 대체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스라엘 전체가 눈 멀었다 해도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지만 성령께서 이들의 주장을 미리 알고 여기에 이렇게 모든 사람이 눈 먼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눈 멀고’, ‘현 시대에도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③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다. 성령께서 이미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에 자신들이 유대인도 아니면서 유대인(소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미리 내다보고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11:1)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지게 되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11:11) 라고 하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못을 박고 있다.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해 원수 된 자들이지만 선택에 대하여는 그들이 조상들로 인해 사랑받는 자들이니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롬11;28)
그러므로 어떤 이들의 주장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특권이 교회로 옮겨왔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경륜과 목적을 위해 비록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눈 멀게 하였지만 결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바울은 말한다.
④ 또한 성경의 일반적인 해석 원칙 상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과 소위 ‘영적 이스라엘’은 다른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고 영적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이다. 즉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 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만일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을 대체했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생긴다.
첫째,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영적 이스라엘에게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말씀이 성취될 지역은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지역인데 교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수 많은 예언의 말씀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위과 역할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옮겨왔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도저히 정황상 교회에 성취될 수 없기에 거짓말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신성모독과도 같은 것이다.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말이 성경에도 없듯이 ‘영적 이스라엘’이란 단어도 성경에 없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에 없는 것을 더하는 행위이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그래서 성경의 예언이 현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 미국이든지, 한국이든지 그 어떤 곳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다. 그러므로 과천에서 계시록의 예언이 실상으로 성취되었다는 주장은 황당무계한 것이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롬16:18)
둘째, 이스라엘이 버림받았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현 팔레스타인 지역에 성경의 예언대로 회복된 이스라엘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다. 약속하신대로 성취하신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자신들이 영적 이스라엘로서 이스라엘의 지위와 역할을 대체했다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과천에 있는 이단단체의 교리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교리부터 출발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환란기에 이스라엘에게 적용될 말씀이 실상으로 이루졌다고 하면서 기존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이단들과 동일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기성교회의 잘못된 교리도 그들의 미혹에 빠지는 한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또 이렇다보니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에 대해 기성교회에서 다른 것은 다 반박하나 교회가 이스라엘의 역할을 대체했다는 교리에 대해서는 반박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다. 그리고 계시록을 가지고 이단 단체들과 토론하는 것을 들어 보았는데 서로 틀린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⑤ 앞에서 언급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경륜과 목적, 곧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일부러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 수 없도록 그들의 마음과 눈과 귀를 닫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들게 하는 영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도다, 함과 같으니라.(롬11:8)
바울도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즉,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고의로 죽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몰라서 죽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말씀에서도 확증된다.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눅23:34) 하셨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아직 응답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100% 응답받기 때문에 머지 않아 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고의가 아니라 알지 못하여 실수로 죽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율법에 의하면 고의가 아닌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에 살인한 사람은 피의 보복자를 피하여 도피처로 도피하여 자기 생명을 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여섯 도시는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그들 가운데 머무는 자를 위한 도피처가 되리니 이것은 알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는 자가 다 거기로 도피하게 하려 함이니라.(민35:15)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마지막 날에 피의 보복자인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피하여 광야로 1260일 동안 도피하여 생명을 보전하도록 예언되어 있다.
그녀(이스라엘)가 사내아이(예수님)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철장으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자더라. 그녀(이스라엘)의 아이(예수님)가 채여 올라가 하나님께 이르고 그분의 왕좌에 이르더라. 그 여자(이스라엘)가 광야로 도피하니라. 거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처소가 그녀(이스라엘)에게 있으니 이것은 그들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거기서 그녀(이스라엘)를 먹이게 하려 하심이더라.(계12:5-6)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방인들의 때, 곧 교회시대가 종료되면 다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마지막 때의 역사를 70이레(490년) 로 정하였고 이중 69이레(483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성취되었기에 한 이레(7년)만 남았기 때문이다.(단9:25-27)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 지니라.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아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으리니 심지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질 터이나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하려니와 그것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단9:25-27)
위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B.C. 445년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의 거리와 성벽, 성전 건축을 하라는 명이 떨어진 후 정확히 69이레 483년 만인 A.D. 32년에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교회시대가 시작되었다. 아직 교회시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한 이레 7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일부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이스라엘이 버려졌다든지, 또는 마지막 한 이레의 예언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등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배경은 대부분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지위와 역할을 대체했다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아뭏튼 여기서 ‘7년 대환란’ 이라는 개념이 나왔으며, 이 대환란을 성경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 라고 말하며 이 기간에 유대인들이 연단을 받고 주님께로 돌아온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아아, 슬프도다! 그 날이 커서 그것과 비길 날이 없나니 그 날은 곧 야곱의 고난의 때로다.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로다.(렘30:7)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새 이름은 이스라엘이므로 ‘야곱의 고난의 때’란 이스라엘의 고난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레미아 30장 7절의 예언이 성취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라고 했던 그 기도가 응답되는 시기다. 유대인들의 죄는 현대적 법률용어로 ‘과실치사’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도 과실치사는 고의적인 살인죄와 달리 합당한 죄의 댓가를 치른 후에 방면되듯이 유대인들도 이에 대한 합당한 댓가를 치른 후에 예수님께로 회심한다는 것이 성경의 예언이다.
그래서 바울은 두 번씩이나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것이다.(롬11:1, 11)
그러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지게 되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11:11)
하나님은 교회시대에 유대인도 아니면서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계신다.
또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아노라.(계2:9)
왜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사탄의 회당이고 신성모독자라고 하는가? 이는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음으로 유대인의 역할과 지위가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넘어왔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수많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거짓말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기에 신성모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했기에 이스라엘에 주신 복이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넘어온 것이 아니고,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 다시 이스라엘 중심의 경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는 유대인들의 희생에 대해 그들에게 감사하고 그들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경륜
단 계 | 하나님의 방책 | 가용군대 | 구원받은 하나님의 군대 | 비 고 |
최종목표 | 영원한 세계 : 새 하늘과 새 땅(새 예루살렘) | |||
5단계 (천년왕국) | 생명 (영의 사역) | 왕국백성 (각 단계별 구원받은 성도들) · 부활의 몸 : 교회 + 구약성도 · 육체 가진사람 : 대환란시 살아서 구원받고 천년왕국으로 넘어온 유대인+이방인 * 천년왕국 때 태어난 자들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어야 함. | 1000년 |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 ||||
4단계 (대환란) | 생명 (영의 사역) | 유대인 (구원받은 유대인 +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
이방인 (구원받은 유대인 +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 | 구원받은 유대인 + 이방인 | 7년 |
교회의 휴거 | ||||
3단계 (교회시대) | 생명 (영의 사역) | 유대인 이방인 교회 (구원받은 유대인 + 이방인) | 교회 (구원받은 유대인+이방인) | 약 2000년 |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죽으심과 부활) | ||||
2단계 (율법시대) | 율법 (글자의 사역) | 유대인 (구원받은 유대인 +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
이방인 | 유대인 (구원받은 유대인) | 약 2000년 |
1단계 (창조 ~ 족장시대) | 양심의 법 | 이방인 (구원받은 이방인 +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 | 이방인 (구원받은 이방인: 아담-아벨-셋-노아 등) | 약 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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