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교단체에서는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했기에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이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넘어왔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잠깐 그 문제를 좀 더 깊게 다루어 보자. 특히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구절은 아래 구절을 들어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을 상실한 것 같지 아니하니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라고 해서 다 아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곧 육체의 아이들인 자들 즉 이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아이들이 그 씨로 여겨지느니라.(롬9:6-8)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고 교회는 교회라고 말하지 교회가 영적이스라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이 틀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위 성경 문맥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육적이냐, 영적이냐 라는 기준으로 보면 분명 이스라엘은 육적 이스라엘이고,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 말씀을 보면 결국 ‘육체의 아이들인 자들 즉 이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아이들이 그 씨로 여겨지느니라.’(롬9:8) 하면서 육신적 혈통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영적 혈통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요1:12-13)
로마서 8장까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무슨 말을 하고 있나? 결국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복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다가 로마서 9장에 이르러 갑자기 자기 민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울은 자기도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방인에게 이렇게 귀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육신의 형제인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육신적 자부심으로 가득차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근심을 말하면서 육신적 혈통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영적 혈통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어차피 육은 아무리 훌륭한 혈통을 가졌다 하더라도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을 통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요3:6-7)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1:12-13)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우리 안에 있었는데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제3자인 하나님께로부터 와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최종적인 방책은 글자(율법)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고후3:6)
그들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로마서 성경구절은 아래와 같다.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글자 안에 있지 아니하고 영 안에 있는 마음의 할례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들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나느니라.’(롬 2:28-29)
그러나 위 말씀도 로마서 9장 6-8절의 말씀과 같은 의미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어느 시대와 관계없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약시대에도 육신적 유대인이 되었다고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이 죄인이며 자신의 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동물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 즉 형식적이고 표면적 유대인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속으로 유대인이 되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신약시대 교회가 유대인이라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바로 이어서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혹은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롬3:1-2) 라고 하면서 여전히 육신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교회가 이들의 주장처럼 영적 유대인으로 신분이 변경되었다면 바울이 바로 뒷말에서 ‘유대인이 나은 점이 무엇이냐?’라고 말하는 대신 영적 유대인인 교회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교회에 대해 말하지 않고 여전히 육신적 유대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로마서 2장 28-29절과 9장 6-8절 말씀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생명은 영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교회가 유대인으로 신분이 변경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고자는 것은 오늘날도 교회에서 겉으로 교인이 교인이 아니고 속으로 교인이 진정한 교인이듯이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속으로 유대인이 진정한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육신적 의나 혈통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이식받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구원은 표면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유대인이 버림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②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를 표면적으로 보면 그들의 자의에 의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 속에서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눈 멀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의 눈 먼 것도 민족 전체가 아니고 일부이며 그리하여 현 시대에도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목표로 하는 이방인의 구원의 수가 충족되면 민족적으로 일시에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 멀게 된다는 것이라.’(롬11:25)
그런즉 이와 같이 이 현 시대에도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11:5)
‘그리하여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11:26)
이스라엘의 특권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넘어왔다는 자들의 주장대로라면 현재 이스라엘 전체가 눈 멀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현재도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면 이들이 이스라엘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위와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 10명이라면 1명만 남아 있어도 가족으로서의 역할은 수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스라엘 전체가 자기들의 권리를 포기해야만 이스라엘의 대체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스라엘 전체가 눈 멀었다 해도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지만 성령께서 이들의 주장을 미리 알고 여기에 이렇게 모든 사람이 눈 먼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눈 멀고’, ‘현 시대에도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③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다. 성령께서 이미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에 자신들이 유대인도 아니면서 유대인(소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미리 내다보고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11:1)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지게 되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11:11) 라고 하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못을 박고 있다.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해 원수 된 자들이지만 선택에 대하여는 그들이 조상들로 인해 사랑받는 자들이니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롬11;28)
그러므로 어떤 이들의 주장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특권이 교회로 옮겨왔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경륜과 목적을 위해 비록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눈 멀게 하였지만 결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바울은 말한다.
④ 또한 성경의 일반적인 해석 원칙 상 ‘다른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과 소위 ‘영적 이스라엘’은 다른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고 영적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이다. 즉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 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만일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로서 이스라엘의 역할을 대체했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생긴다.
첫째,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영적 이스라엘에게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말씀이 성취될 지역은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지역인데 교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수 많은 예언의 말씀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위과 역할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옮겨왔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도저히 정황상 교회에 성취될 수 없기에 거짓말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신성모독과도 같은 것이다.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말이 성경에도 없듯이 ‘영적 이스라엘’이란 단어도 성경에 없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에 없는 것을 더하는 행위이다.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계22:18-19)
그래서 성경의 예언이 현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 미국이든지, 한국이든지 그 어떤 곳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다. 그러므로 과천에서 계시록의 예언이 실상으로 성취되었다는 주장은 황당무계한 것이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그런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롬16:18)
둘째, 이스라엘이 버림받았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현 팔레스타인 지역에 성경의 예언대로 회복된 이스라엘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다. 약속하신대로 성취하신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자신들이 영적 이스라엘로서 이스라엘의 지위와 역할을 대체했다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과천에 있는 이단단체의 교리가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교리부터 출발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환란기에 이스라엘에게 적용될 말씀이 실상으로 이루졌다고 하면서 기존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이단들과 동일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기성교회의 잘못된 교리도 그들의 미혹에 빠지는 한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또 이렇다보니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에 대해 기성교회에서 다른 것은 다 반박하나 교회가 이스라엘의 역할을 대체했다는 교리에 대해서는 반박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다. 그리고 계시록을 가지고 이단 단체들과 토론하는 것을 들어 보았는데 서로 틀린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⑤ 앞에서 언급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경륜과 목적, 곧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일부러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알 수 없도록 그들의 마음과 눈과 귀를 닫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들게 하는 영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도다, 함과 같으니라.(롬11:8)
바울도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즉,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고의로 죽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몰라서 죽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말씀에서도 확증된다.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예수님도 십자가 상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눅23:34) 하셨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아직 응답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100% 응답받기 때문에 머지 않아 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고의가 아니라 알지 못하여 실수로 죽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율법에 의하면 고의가 아닌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에 살인한 사람은 피의 보복자를 피하여 도피처로 도피하여 자기 생명을 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여섯 도시는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그들 가운데 머무는 자를 위한 도피처가 되리니 이것은 알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는 자가 다 거기로 도피하게 하려 함이니라.(민35:15)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마지막 날에 피의 보복자인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피하여 광야로 1260일 동안 도피하여 생명을 보전한다고 예언되어 있다.
그녀(이스라엘)가 사내아이(예수님)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철장으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자더라. 그녀(이스라엘)의 아이(예수님)가 채여 올라가 하나님께 이르고 그분의 왕좌에 이르더라. 그 여자(이스라엘)가 광야로 도피하니라. 거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한 처소가 그녀(이스라엘)에게 있으니 이것은 그들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거기서 그녀(이스라엘)를 먹이게 하려 하심이더라.(계12:5-6)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이방인들의 때, 곧 교회시대가 종료되면 다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마지막 때의 역사를 70이레(490년) 로 정하였고 이중 69이레(483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성취되었기에 한 이레(7년)만 남았기 때문이다.(단9:25-27)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 지니라.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아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으리니 심지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질 터이나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하려니와 그것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단9:25-27)
위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B.C. 445년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에 의해 예루살렘의 거리와 성벽, 성전 건축을 하라는 명이 떨어진 후 정확히 69이레 483년 만인 A.D. 32년에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교회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머지않아 교회가 휴거되면 교회시대는 끝나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예언하신대로 유대인들에게는 마지막 한 이레 7년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계시록은 바로 마지막 7년 환란을 예언한 책이다. 여기서 ‘7년 대환란’ 이라는 개념이 나왔으며, 이 대환란을 성경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야곱의 고난의 때’라고 말하며 이 기간에 유대인들이 연단을 받고 주님께로 돌아온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아아, 슬프도다! 그 날이 커서 그것과 비길 날이 없나니 그 날은 곧 야곱의 고난의 때로다.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로다.(렘30:7)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새 이름은 이스라엘이므로 ‘야곱의 고난의 때’란 이스라엘의 고난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레미아 30장 7절의 예언이 성취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라고 했던 그 기도가 응답되는 시기다.
그래서 바울은 두 번씩이나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것이다.(롬11:1, 11)
그러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지게 되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11:11)
하나님은 자신들이 자칭 유대인들이라고 하면서 유대인도 아니면서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또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아노라.(계2:9)
왜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사탄의 회당이고 신성모독자라고 하는가? 이는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음으로 유대인의 역할과 지위가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넘어왔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을 향한 수많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거짓말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기에 신성모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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