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여신숭배
최근 들어 동성애 합법화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또 종교적으로 보면 어머니 하나님 등 여신숭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의도는 단지 성경에 기록된 표현만을 가지고 ‘동성애는 죄다’ 라는 단순한 주장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의 근원적인 문제와 이 동성애가 여신숭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모든 성경이슈가 그렇듯이 이 문제를 이해가 위해서는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주시는 것이다. 곧 하나님 자신-생명을 분배해서 사람과 하나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완전한 연합, 곧 결혼이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라는 것이다. 우리는 통상 결혼한 부부를 한 몸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물리적으로 완전한 한 몸은 될 수 없다. 육체와 육체는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육인 사람이 완전한 한 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이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과 이브를 통해 계시되었듯이 아담은 그리스도의 예표고 이브는 교회 곧 사람의 예표다.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이것은 큰 신비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남편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아내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주님의 ‘전쟁의 책’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랑의 책’ 즉 ‘결혼의 책’이기도 하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는데 계시록 19장에 가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잔치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계19:7)
그리고 성경의 결론에 가면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신부이자 아내가 등장한다.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계21:2)
성경은 이렇게 결말을 맺기 때문에 ‘결혼의 책’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스토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택하시고 결혼에 이르는가를 기록한 사랑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결혼, 즉 연합이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사람의 우주적 사랑과 구원의 원리가 들어 있다. 창세기 2장의 아담과 이브의 그림을 통해 구약시대에는 남편이신 하나님과 아내인 이스라엘을 보고, 신약에서는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보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새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영-하나님과 육-사람의 연합, 곧 씨-하나님과 흙-사람의 연합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경륜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받아드리도록 에덴동산에 두셨다. 즉 흙-사람이 씨-하나님을 받아드려 한 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흙-사람이 씨-신이 될 수 있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선악과를 먹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성경은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단 한 가지로 정의한다. 아담이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이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창3:4-5)
여기서 신이란 천사로 영적인 존재다. 영이란 일종의 씨다. 사람이 흙으로 창조되었다면 천사는 영적인 존재로 씨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흙-사람은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 하지만 천사는 죽지 않는다. 즉,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여자-아내로 창조되었는데 신-씨가 되겠다고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이 인류의 근원적 문제라는 것이다. 아담은 사람이라는 위치를 이탈하여 신이 되겠다고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아담이 위치를 이탈하자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하시면서 인간의 존재적이고 근원적 위치를 물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인생의 위치, 곧 여자-아내의 위치를 이탈했다는 것이다. 사탄은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여 하나님의 위치에 오르려다 타락했고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여 천사의 위치에 오르려다 타락한 것이다. 사실 세상에서도 모든 문제의 근원은 위치이탈이다. 도둑이 왜 도둑이 되는가? 자신의 위치 이탈이다. 왜 사기꾼이 되는가? 위치이탈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도 위치이탈 이듯이 아담의 근원적 문제도 위치이탈이다. 정상적인 사람의 위치에서 비정상적 위치로 이탈한 것이다.
하나님은 각각의 피조물에게 자신의 창조목적에 따라 격을 부여하셨다. 사람은 인격으로 창조되었고, 개는 개격으로 소는 소격으로 천사는 천사격으로 창조되었다. 그런데 천사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든지, 사람이 천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혼란이 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에게는 죄다. 그러므로 피조물에게는 자신의 격을 지키는 생명이고 이탈하면 사망이다.
흙-사람이 위치를 이탈하여 신-씨가 되겠다고 타락한 것은 곧 동성애를 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흙-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여자임으로 여신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신은 없다. 흙-여자는 남자-씨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이 타락하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하신 것이다. 흙-사람은 본질이 흙이기 때문에 결코 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에게서 완전히 확증되었다. 예수님은 신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먹은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반사람들과 다름없이 너무도 평범하게 죽으셨다. 만일 예수님이 신이라면 죽을 수 없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창3:4) 라는 사탄의 말이 맞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셨고 사탄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완전하게 확증되었다. 흙-사람은 결코 신-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확증된 것이다. 십자가란 신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먹은 인류의 소망이 끝난 자리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 이라고 하는 것이다.(고전15:45)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인류는 열심히만 하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르러 사람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소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유사이래 가장 신과 같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아담-인류의 소망이 끝난 것이다. 아담은 죽지 않는 신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먹고 신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신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은 바로 아담을 대신하여 신과 같은 사람으로서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고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인간의 원형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원형을 되찾은 것이다. 흙은 흙이지 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고백과 같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인간이 정체성을 발견하고 그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속이고 구원이다.
우리의 구원은 무엇인가? 십자가에 매달린 정상적인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신과 같은 비정상적인 사람의 위치에서 정상적인 사람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 사람을 쳐다보면 산다는 것이다.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보면 살더라.’(민21:9)
사람은 본질적으로 흙이지 씨가 아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여자-아내의 위치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하여 신-씨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곧 하나님께 대하여 동성애자가 되겠다고 한 것이고 스스로 여신이 되겠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류의 마지막 때의 최종적 열매는 세상에서는 동성애가 번창하고 종교적으로 여신을 숭배하는 카톨릭이 종교의 주류가 될 것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하나님은 남성이고 왕이자 신이다. 그러므로 여신과 여왕은 없는 것이다. 여신과 여왕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대하여 아내로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 신이자 왕이 되겠다는 의도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스스로를 여왕이라고 자부하면서 과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음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녀가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호화로이 살았은즉 그만큼 그녀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라. 그녀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아 있고 과부가 아니므로 결코 슬픔을 보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니'(계 18:7)
'그분의 심판들은 참되고 의로우니 그분께서 음행으로 땅을 부패시킨 그 큰 음녀를 심판하시고 또 자신의 종들의 피의 원수를 그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더라.'(계 19:2)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마지막 때의 세상인 바벨론의 모습이다. 성경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마지막 심판 때의 예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주요 범죄가 동성애였다.
‘그러나 그들이 눕기 전에 그 도시의 남자들 곧 소돔의 남자들이 즉 늙은이든 젊은이든 사방에서 나온 모든 사람들이 그 집을 에워쌌더라. 그들이 롯을 부르며 그에게 이르되, 이 밤에 네게 온 남자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려오라.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창19:4-5)
모든 것은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는다. 아담의 타락의 최종적 열매는 세상에서는 동성애이고 종교적으로는 여신숭배라는 것이다. 사실 카톨릭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 실제는 마리아라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다. 이러한 타락의 깊은 본성이 우리 자신은 모르지만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보면 도무지 이해 안 되는 행동을 인류가 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이방의 종교의 근원을 올라가보면 대부분 여신숭배 사상이 있다. 지금 세상에서 만연하고 있는 동성애, 그리고 카톨릭, 안상홍 증인회 같은 여신숭배를 하는 이단종교들이 왜 만연할까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러한 아담의 타락한 본성이 그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타락의 씨가 마지막 때 열매를 맺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이는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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