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시에 왜 재 또는 흙을 뒤집어 쓰거나 옷을 찢었을까?
‘다말이 자기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입었던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가니라.’(삼하13:19)
‘이에 왕이 곧 일어나 자기 옷을 찢고 땅에 눕고 그의 모든 신하들도 옷을 찢고 옆에 서니라.’(삼하 13:31)
‘모르드개가 이루어진 모든 일을 깨닫고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재를 뒤집어쓰고 도시 한가운데로 나가서 큰 소리로 비통하게 부르짖으며’(에4:1)
‘그들이 눈을 들어 멀리서 보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그들이 저마다 자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자기 머리 위에 티끌을 뿌리고’(욥2:12)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를 할 때에 재 또는 띠끌-흙을 뒤집어 쓰거나 옷을 찢는 장면이 나온다. 옛날에는 이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면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회개란 인생이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인생의 원위치, 하나님이 인생을 만들 때의 원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위치만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행위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위치다. 이 자리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해주신 위치고 하나님은 이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복을 주실 수 있다. 이 위치는 바로 사람은 흙이라는 것이고 흙이란 생명이 없다는 의미다. 아담은 이 위치를 이탈했다. 흙이면서 씨가 되고 싶어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신도 아니면서 신인척 하고 있는 것이다. 무교병으로 지음받았으면서 누룩이 들어있는 유교병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고 거짓아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 원래 정해주신 무교병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거짓의 세계에서 진실의 세계로 위치를 옮겨야 한다. 하나님은 그 위치에 있는 자에게만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행위는 바로 십자가를 상징한다. 재와 띠끌은 사람은 흙이라는 것을 예표하고 옷을 찢는 행위는 죽음을 상징한다. 결국 사람은 생명이 없고 죽을 수 밖에 없는 흙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번제헌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이 위치에 있는 사람과 연합하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람이 죄가 있기 때문에 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 본래 생명이 없는 존재로 창조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씨-하나님은 생명이 없는 흙의 위치에 있는 자에게만 생명-씨를 주실 수 있다. 그래서 이 회개의 행위는 씨-하나님 앞에 인생은 흙-사람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진실의 위치에 있는 흙-사람에게만 복을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힘쓸 필요가 없다. 힘을 완전히 빼고 흙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통상 우리는 죽음을 상징하는 침례를 죄 때문에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도 죽음을 상징하는 침례를 요르단강에서 침례요한에게 받으시면서 침례를 만류하는 요한에게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하여 모든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마 3:15)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의 죽음(침례)는 죄가 있어도 죽어야 하지만 죄가 없어도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할때도 죽음을 상징하는 침례가 두번 있었다. 법리적으로 죄를 속하기 위한 홍해의 침례와 죄와 관계없이 유기적으로 영생을 얻기 위한 요르단강의 침례가 있었다. 예수님도 요르단강에서 침례를 받은 것은 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사람은 죄와 관계없이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침례를 예표하는 강을 두번 건넜고,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당시에도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광야에서의 반석이 갈라지는 사건도 두번 있었다. 례위기에 보면 예수님의 인격을 상징하는 제물도 두가지로서 죄를 속하기위한 법리적 제물인 희생물과, 죄와 관계없이 유기적으로 생명을 얻기 위한 번제헌물이 있었는데 공통점은 둘다 죽음으로 드려진다. 십자가에서도 예수님은 두가지 위치인 법리적인 대속물의 위치와 유기적인 헌물의 위치로 죽으셨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인 영생을 얻으려면 죄와 관계없이 본성에 속한 몸에서 영에 속한 몸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고전 15:44) 죽을 운명(mortality)인 우리 몸이 생명이신 하나님께 삼켜짐으로 죽지 않을 운명(immortality)으로 바뀌는 것이다.(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mortal)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immortality)을 입으리로다.(고전 15:53)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mortal)이 죽지 아니함(immortality)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고전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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