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자의 씨로 오신 분
앞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과 연합된 한 몸으로 예수님의 어떠함이 곧 나의 어떠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사람의 운명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 곧 씨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데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씨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3자, 곧 하나님에게서 와야 한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씨를 사람에게 이식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시겠다는 것이다. 국가의 3요소는 영토, 주권, 국민이듯이 백성이 있어야 왕국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왕국은 그 생명이다. 동물의 왕국은 동물의 생명을 가져야 들어가고, 식물의 왕국은 식물의 생명을 가져야 하듯이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져야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원래부터 살과 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죄가 있으나 없으나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씨를 이식시켜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앉아서 금 나와라 뚝딱하는 개념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씨를 가진 사람이 와서 새 인류의 조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조상은 사람이어야 하지 다른 피조물은 사람의 조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담을 옛사람(첫 사람), 예수님을 새사람(둘째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은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뀔 운명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 생명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므로 아담은 원래부터 영원한 생명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이 거듭나야 하는 것은 죄 때문에 거듭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관계없이 사람은 거듭나야 할 운명으로 창조되었다.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 곧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말이 있는데(롬 5:14), 이는 아담이 죄를 지어서 모형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아담은 실재가 아니라 모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롬 5:14)
위 말씀을 보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형은 실재, 곧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델 하우스는 실재 아파트가 지어지면 철거한다. 그러므로 흙으로 지어진 아담은 실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면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했기 때문에 육신이 죽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아담은 죄가 있으나 없으나 실재가 아니고 모형이기 때문에 실재이신 예수님이 오면 그 임무가 소멸되는 것이다. 아담은 영원한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무정란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 곧 씨를 소유한 유정란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은 설령 죄가 없다하더라고 근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야 할 운명이다. 그래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근원적인 죄가 되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요16:9)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법리적 측면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죄 문제의 해결은 사탄이 설치해 놓은 장애물 제거에 불과하다. 전쟁을 수행하는 지휘관의 입장에서 장애물을 제거했다고 최종 목표가 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 용서가 아니라 흙으로 지어진 사람들에게 생명-씨를 주는 것이다. 예수님도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또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 10:10)
그 생명은 그 왕국이다. 동물의 왕국은 동물만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죄 문제는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하나의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씨를 이식받아 다시 태어나야 할 운명이다. 즉, 사람은 본성에 속한 몸에서 한번은 죽고 영에 속한 사람으로 바뀔 운명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것을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내놓는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다시 취하려고 내놓는다고 하셨다.
‘이러므로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니 이는 내가 내 생명을 다시 취하려고 그것을 내놓기 때문이라.’(요 10:17)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인 본성에 속한 몸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영한 속한 몸으로 바뀌려면 누군가 와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명-씨를 이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조상은 사람이 되어야 하므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 자신의 씨를 이식하려면 누군가 하나님의 씨를 가지고 이 땅에 사람으로 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창세기 3장 15절에 그녀의 씨 곧 ‘여자의 씨’라고 하였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창세기 3장 15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탄의 씨와 여자의 씨(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과의 대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여자의 씨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이 태어남으로 약속이 성취된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니라.’(마 1:16)
여자는 씨가 없기에 세상에서 여자 혼자는 자식을 낳을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은 세상에 없는 씨로 하늘로부터 온 씨, 성령으로 잉태된 씨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이 씨는 아브라함에 약속하신 그 씨로 이 씨는 그리스도라고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시 한번 확증한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 3:16)
예수님은 여자의 씨, 곧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 씨로서의 합당한 역할을 하려면 육체로 오셔서 그대 있으면 씨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는 씨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농사의 첫 열매가 되어야 한다. 열매가 되어야만 씨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농사를 짓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열매는 부활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일어나심으로 하나님의 사람 농사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씨가 되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열매와 씨는 하나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 곧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씨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 15:45)
위 말씀에서 마지막 아담, 곧 예수님은 인류에게 ‘살려 주는 영’ 곧 ‘영원한 생명을 주는 씨’가 되셨다는 의미다. 이로써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된 여자의 씨로 오신 예수님의 임무가 완성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 문제만을 해결하신 분으로 국한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지협적인 부분이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자의 후손이듯이 예수님을 조상으로 둔 우리도 여자의 후손이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이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거듭난 우리는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다.(요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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