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창3:9)

올더스조에 2015. 10. 30. 22:23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3:9)

 

1.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심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 물론 천지를 창조할 때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는 증명할 수 있습니다. ‘건물이 있다’, ‘길이 있다는 말은 누군가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건물이 100동이 있는데 99동은 만들어졌고 1동은 저절로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있다는 말은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렇듯 너무도 쉬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너무도 어려운 저절로만들어졌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절로라는 것은 증명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말을 믿지 않으면 근원이 없는 인생이 되어 인생의 답이 풀리지 않습니다.

 

2.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창조한 것이 아니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창조했습니다. 만물은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고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배추는 김치가 되기 위해, 돼지는 사람에게 잡혀 먹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렇듯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오직 만드신 분만이 그 목적을 규정해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느니라.’(43:7)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려면 하나님과 한 마음-한 생명이 되어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합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최종 목적은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관건은 하나님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사람이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이란 거룩하고 창조되지 않은 생명으로 하나님 자신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은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낳아야 하는 경우와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창조된 사람이 어떻게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께 연결됨으로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관계적 생명이라고 합니다.

4.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위치()

이렇듯 영원한 생명은 만드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는 것이기에 씨-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2:7)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위해 만물에게 각자의 격()을 부여하였습니다. 개는 개격으로, 소는 소격으로 사람은 인격(人格)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격은 세상에서 말하는 인격과는 다른 것으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으로 고정된 것이며 변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격을 지키는 것이 창조물에게는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의 위치는 흙-여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즉 사람은 흙으로서 하나님의 씨를 받아 발아시킬 토대이지 자체 생명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이 규정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혼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원래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 오해하지만 살아 있는 혼이란 지정의(知情意) 기능을 가진 존재로서 무엇을 받아 표현하는 흙과 같은 존재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듯이 하나님을 받아 드리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사탄을 받아 드리면 사탄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란 오직 하나님의 생명만을 말하며 천사는 죽지 않지만 창조된 존재로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흙-여자의 위치로서 혼의 기능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5. 생명의 연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원한 생명의 연결자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직접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고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고 사람은 육이기 때문입니다. 의 차이는 물과 기름의 차이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있고 그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생명의 연결자라는 의미입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과 사이에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니라.’(딤전2:5)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그분의 인식하에 만물은 다 이런 원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도 양성자와 음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중간에 중성자가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물과 기름은 상호 섞이지 않으며 반드시 중화제가 있어야 섞일 수 있는 거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도 연합이 되려면 반드시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6. 아담이 흙-사람의 위치를 이탈함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고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람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드려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사탄이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니느니라.’(3:5) 라는 곧, 사람이 신이 될 것이라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근원적인 죄는 도덕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피조물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이탈한 것을 죄라고 합니다. 즉 흙-사람이 씨-() 된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 대신 사탄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본질은 흙이지 씨가 아닙니다. 아담은 속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을 향하여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계시에 의하면 사람의 위치를 이탈한 인류, 곧 타락한 인류의 목표, 곧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은 각 분야에서 사람 이상인 신이 되고자 하던지 사람이하인 짐승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7. 예수님께서 사람의 위치를 회복함

아담은 사탄과의 우주적 전쟁에서 사람의 위치, 곧 인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우주 안에 가장 큰 비밀이 있다면 인격을 소유한 참사람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인격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 곧 인권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와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위해 아담이 잃어버린 인격을 회복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1차적으로 광야에서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사탄과 접전하셨습니다.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빵이 되게 하라’(4:3)라고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곧 가 신이거든하면서 예수님에게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도록 유혹하였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여기서 돌로 빵을 만들었다면 사람이 아니고 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4:4)하면서 사람의 위치를 지켰습니다. 또 사탄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4:6) 하였지만 예수님은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4:7) 하면서 정상적인 사람의 위치를 지키자 사탄이 물러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능력의 화신인 사탄에게 승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렇게 해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지 나는 사람이다라고 하자 신인 사탄인 물러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4:7) 사람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고 승리의 길입니다.

이제 사람 예수님과 신 사탄과의 최종적 전쟁은 십자가에서 있었습니다. 사탄은 자신에 비해 인간의 최대 약점인 죽음을 가지고 시험하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 앞으로 내 몰은 다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7:40) 면서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도록 유혹하였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뛰어내렸다면 사람이 아니고 신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부끄러워하여 사람위치를 이탈하였지만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람의 위치를 지킴으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생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2:8) 왜냐하면 씨-하나님은 오직 흙-람만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 예수가 신 사탄에게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본디 땅과 사람은 하나로 땅은 인격을 예표하는데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땅-인격은 변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해주신 가나안 땅은 영원히 지켜야 할 인격을 예표합니다. 그래서 땅-인격을 읽어버렸던 이스라엘이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 그 땅을 회복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이 아닙니다.

8. 이 사람을 보라.(19:5)

성경의 계시에 의하면 현재 타락한 인류는 사탄의 예표인 불 뱀에게 물려있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광야에서 하나님께 반역하자 불 뱀이 나와 이스라엘 백성을 물자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를 위해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 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21:8)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리라.’(21:9)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용하여 예수님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로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3:14)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장대 위에 있는 놋 뱀은 죄는 없지만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면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창세기의 아담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죽지 않는 신이 되고 싶어 사탄을 택한 아담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과 같은 비정상적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이 되길 원하지 신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과 같은 사람은 반드시 심판받아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예수님은 유사이래 자타가 인정하는 신과 같은 사람으로서 타락한 아담이 소망하는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였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을겁니다. 죽은 자를 살렸던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신과 같은 사대표하여 심판을 받고 일반사람들과 다름없이 너무도 평범하게 죽었습니다. 십자가 위에 있는 예수님에게는 신과 같았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흙-사람의 위치만 있었습니다. 아담이 잃어버렸던 인격을 회복한 것입니다.

러므로 이 심판의 의미는 신과 같은 사람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을 통해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사탄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사탄의 말이 맞는 것입니다. 아담이래 인간은 혹시 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었습니다. 예수님같은 분도 죽었다는 것은 누구도 다 예외없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이 완전하게 확증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부끄러워하여 사탄의 거짓말에 속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담담히 받아드림으로 사람의 운명인 죽음이라는 진실을 통해 거짓으로부터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격의 승리, 진정한 인간승리로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이 낙원 한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게하리라.’(2:7) -사람의 위치를 지키는 자에게 씨-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매달린 참사람인 예수님을 쳐다보고 인간이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인간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동일시하는 것이 다름 아닌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쳐다보면 산다는 것입니다. 바로 비정상적인 사람의 위치에서 정상적인 사람의 위치로 전환되는 것이 다름 아닌 구원입니다. 러면 어떤 분은 옛적에 십자가에 죽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고 인생이 죽는 것이 당연한데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만이 참사람의 죽음으로 인정되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안에 있는 인류는 신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인격에 만족하지 않고 인생으로 지어진 것을 모두 원망하면서 죽었기 때문에, 곧 창조자를 원망하였기에 참사람의 죽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생이라는 운명에 대해 누구에게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 순간에도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23:46)하시면서 자신의 영마저도 아버지께 맡기며 흙-사람의 위치를 지키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하는 참사람인 이 사람을 쳐다보면 산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담을 대표하는 빌라도는 십자가 앞에 서신 예수님을 향하여 이 사람을 보라!’(19:5) 하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매달린 이 사람을 보고 인생은 흙이고 숨이 코에 붙은 피조물이라는 존재적 진실을 깨닫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과 내가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즉 내가 흙의 위치로 회복되면 비로소 하나님께서 씨-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6:5)

 

9. 네가 어디에 있느냐?(3:9)

나님은 아담이 사탄에게 속아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자 네가 어디 있느냐?’(3:9) 하시면서 행위를 묻지 않고 위치를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아담 안에서 위치를 이탈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질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하면서 행위를 물으셨다면 인생은 진짜 절망입니다. 그런데 행위를 묻지 않고 위치를 물으신 것이 참으로 은혜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아담이 하나님의 이 유일한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나무 뒤에 숨었듯이(3:10) 지금도 사람들은 종교의 나무, 명예의 나무, 도덕의 나무, 심지어 기도의 나무, 의의 나무 뒤에 숨어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위치를 이탈한 인류의 대표자인 빌라도가 정위치에 계신 예수님에게 적반하장으로 너는 어디서 왔느냐?’(19:9)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