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 고인(古人)
성경은 사실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아담 안에 있는 옛사람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사람이다. 옛사람은 고인(古人), 곧 죽은 자이다. 우리 인생은 근원적으로 고인(古人)으로 태어난다.
1.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은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지도록 정하심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전환되도록 정하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람이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아담의 죄로 인해 사망이 들어와 육체적 죽음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우리 인간의 육체적 생명과 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연결되면 생명 안에 있는 것이고 단절되면 사망 안에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아담은 처음부터 영생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지 않았고 영생을 얻을 존재였다.(창3:22)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창 3:22)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이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창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부터 태어나야 한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 1:12-13)
그러므로 사람은 죄와 관계없이 흙으로 창조된 다음 하나님의 씨-생명을 이식받아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나도록 운명지어졌다. 즉 본성에 속한 몸에서 영에 속한 몸으로 전환되도록 운명지어진 것이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4)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그래서 예수님을 믿건 믿지 않건 모든 사람은 한 번 죽고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졌는데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의로운 자의 부활로, 믿지 않는 자는 불의한 자의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진 것이다.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행 24:15)
사람 농사를 짓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사람의 부활이 열매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 농사의 첫 열매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우리의 육체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이고 부활하는 것은 열매로서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추수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운명은 본성에 속한 몸에서 영에 속한 몸으로 전환되도록 운명지어진 것이다.(고전 15:46) 아담 안에 속한 사람은 죄가 있건 없건 본성에 속한 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몸으로 전환되어야 할 운명이다.
성경은 이것을 다시 본성에 속한 사람을 옛사람, 영에 속한 사람을 새사람이라고 부른다. 즉 사람은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성경은 옛사람을 죄에 속한 사람이라 부르며, 생명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죄가 있건 없건 본성애 속한 사람은 생명이 없기에 새사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는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 3:9-10)
아담은 근원적으로 생명이 없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롬 5:14)이다. 모형이란 모델하우스와 같은 개념으로 실재 집이 지어지면 허물어져야 한다. 모형이란 생명이 없는 것이기에 옛사람이라는 의미다. 아담은 근원적으로 모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실재가 오면 그 임무는 다하는 것이다. 사람은 죄와 관계없이 생명없는 옛사람에서 생명있는 새사람으로 전환되어야 하나님의 목적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육체로 지어진 사람은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어차피 죽도록 운명지어졌다. 죄가 없으면 육체가 죽지 않는다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이다. 만일 죄가 없으면 죽지 않는다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죽지 않았아야 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너무도 쉬운 평범한 진리를 잘 믿지 않는다. 분명히 예수님도 우리의 육체가 죽지 않으려면 천사와 같은 몸을 입어야 한다고 하셨다. (눅 20:36)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은 오셔서 죽음을 맛보기 위해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육체를 입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예수님을 보노라. 그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 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 위에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히 2:14-16)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가 죄가 없으면 죽지 않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2. 사람은 죄가 없어도 근원적으로 예수를 믿도록 운명지어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는 분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이 주는 진리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할 뿐만아니라 근원적으로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두 가지 위치가 있는 것이다. 죄를 대속하는 방면과 생명을 주는 방면이다. 예수님도 요한복음에서 생명을 주러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또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 10:10)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수님의 인격을 상징하는 제물도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물(Sacrifice)과 생명을 주기 위한 헌물(offering)로 구분되는 공통점은 모두 죽음으로 드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은 죄와 관계없이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며, 그것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창세 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다.(고전 2:7)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역사 안에서 보면 약 2천년 전에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였지만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창세로부터 죽임 당해도록 정해진 것이다.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곧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계 13:8)
신약시대에서 사는 우리는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영생을 얻었지만 그리스도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이 인식하건 인식하지 못했건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제한과 육체를 가진 우리의 관점에서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보고 영생을 얻었지만 시간의 제약이 없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리스도는 이미 창세전에 인류를 위해 생명의 제물이 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적 제약이 없는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도 이미 이루어진 과거로 말하고 있다.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는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 3:9-10)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saved)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엡 2:8)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made us sit)’(엡 2:6)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의 아들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는지 보여 주나니 이분은 곧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신(delivered) 예수님이시니라.’(살전 1:10)
3. 인생은 근원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죄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은 근원적으로 고인으로 태어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으로 전환되도록 정하셨다. 그래서 죄가 있건 없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생명이 없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이탈한 것으로 죄가 되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요 16:9)
위 말씀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관점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기록한 책이다.
우리는 통상 죄라고 하면 아담의 죄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의 죄란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하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우리 인생이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부터 근원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은 창세 전에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고전 2:7)
그러므로 사람은 근원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위와 같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4. 결언 : 인생은 운명적으로 옛사람, 고인(古人)으로 태어난다.
우리나라 말로 고인(古人)은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매우 성경적인 의미다. 인간은 사실 태어날 때부터 고인으로 태어난다. 왜냐하면 근원적으로 사람은 죄가 있건 없건 영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인, 즉 죽은 자로 태어난다.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하나님은 이 고인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셔야 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항변할 수 있다. ‘어떻게 전능하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 인생을 본래부터 영생이 없는 죽은 자로 운명지었는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생을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주셨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 아들로 얻기 위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단지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단순히 믿기 하면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피조물인 우리는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인정해야 한다.
‘아니라, 오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어진 것이 자기를 지은 이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겠느냐“(롬 9:20)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할 때 인생의 행복과 안정이 오고, 여기에 참여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복을 받도록 운명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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