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상징하는 포도주(Wine)
성경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은 이중적 의미가 있는 것이 있다. 예들 들어 하나님의 영은 불, 물, 바람으로 상징되는데 먼저 작은 불은 생명을 상징하고 불호수와 같은 큰불은 사망을 상징한다. 물도 출애굽 시에 광야의 반석에서 나오는 작은 물은 생명을 상징하고 노아의 홍수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위해 통과한 홍해와 같은 큰 물은 심판, 곧 사망을 상징한다. 바람도 작은 바람은 성령(생명)을 상징하지만 태풍과 같은 큰 바람은 심판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십자가도 전면은 사망이지만 후면은 생명을 상징한다.
이렇듯 성경에서 포도주도 이중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물론 첫 번째는 일반적인 술로서 마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다른 의미로는 성령, 곧 부활 생명을 예표한다.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돌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변환시키는 기적을 행하신다. 요한복음의 주제는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다. 그래서 돌 항아리에 담겨져 있는 물은 우리의 본성에 속한 몸을 예표하고 돌 항아리에 포도주가 담겨있는 것은 성령을 받은 우리, 곧 거듭난 성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의 이러한 기적은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예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본성에 속한 몸인 우리를 영에 속한 몸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고전 15:46)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 46)
예수님은 이러한 기적을 행하신 후에 요한복음 3장에서 거듭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위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물-육체로 태어난 다음, 성령을 받고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돌 항아리 물을 포도주(성령)으로 변환시키는 기적을 행하진 후에 이 기적의 의미를 부연 설명하고 계시는 것이다. 즉 사람은 육체로 태어난 다음 성령을 받고 거듭나야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어서 예수님은 사람이 성령을 받고 거듭나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하시니라.’(요 3:8)
위 말씀의 의미는 사람이 거듭나는 과정이 포도즙이라는 물이 포도주라는 알코올이 되는 과정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다. 포도주는 포도즙으로 만들어지는데 포도즙을 가만히 놔두면 자연적으로 공기가 들어와 포도주라는 새로운 물질로 변환된다. 포도즙은 일종의 음료로서 물이다. 포도즙을 공기 중에 노출시키면 바람이 임으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게 포도즙에 공기 중의 효소가 들어와 포도주라는 새로운 물질로 변환시킨다. 물이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인 알코올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거듭남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성령을 받고 거듭난 성도들은 겉모습은 일반사람과 다름 없지만 생명이 다른 것이다. 포도즙과 포도주는 겉모습은 같지만 속성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거듭난 성도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새 포도주로 충만하다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로 충만하다, 하더라.’(행 2:13)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는데 성령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포도즙이 포도주가 되는 것과 같이 제3자인 하나남께로 부터 받는 것이다.
우리가 성찬식 때 먹는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성찬식 때 먹는 포도주는 죄 사함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도 상징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생명-성령을 상징한다.
노아는 홍수를 통과한 후에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자기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있었는데 이때 노아의 세 아들 중 함이 노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밖에 있던 두 형제에게 고하였다. 이후 노아는 술에서 깨어나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였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이 사건을 두고 술을 먹고 노아가 수치를 드러냈다고 하면서 술을 먹으면 안된다고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그런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는 홍수, 곧 십자가를 통과한 후에 포도주-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인 부활생명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노아를 책망하는 기록이 없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를 조롱한 것이 된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함을 직접 저주하지 않고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노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 것은 함인데 왜 함이 저주받지 않고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이런 이유인 것 같다.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께 대하여 여자로서 하나님의 씨-성령을 이식 받아 아들을 생산해야 할 운명이다.(요 1:12-13) 그러므로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다는 의미는 함은 하나님께 대하여 아들이라는 열매가 없다는 의미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사람-여자는 아들(열매)가 없으면 상속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와 같았다. 그래서 유다의 며느리 다말도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음에도 유다의 며느리 다말을 책망하는 기록이 없다. 영적으로 아들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않은 것으로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아들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인 생명 노선 안에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육신적 족보에 등장하는 다섯명의 여자들은 모두 도덕적으로 흠이 있었지만 바로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인 생명 노선 안에 있는 여자들이자 죄인된 인류의 대표이다. 성경은 도덕적인 책이 아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생명의 왕국이듯이 성경은 생명노선 안에서 기록된 책이다. 그래서 이 다섯 여자가 우리의 인간적 관점에서는 도덕적 흠결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성경은 이들을 책망하는 기록이 없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출제자의 의도를 잘 아는 사람이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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