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mortal)이 죽지 아니함(immortality)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Death)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오 사망(death)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니라.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2~57)
1.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에 대한 개념
이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생명과 사망을 우리의 육체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생명과 사망을 말할때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다고 말한다.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렘 21:8)
성경은 생명을 말할때 하나님과의 관계적 생명을 생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생명이고 관계 끊어져 있으면 사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과 관계없이 별도로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 형상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등은 전기의 형상이다. 전등이 발전소와 연결되어 있으면 불이 들어오고, 끊어져 있으면 불이 안들어오는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도 이런 개념이다.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물론 성경은 사람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만든다고 한다면 나의 어떠함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물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표현하는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기계의 예를 든다면 그 기계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근원이 있고 이를 연결하는 중간체가 있어 기계가 움직이게 된다. 지구도 핵-맨틀-지표 이렇게 셋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도 영-혼-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직접적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중간연결자가 있어야 한다. 이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물과 기름도 연합되려면 중화제가 있어야 되는 이치와 같다. 사람도 사람의 생명인 영이 있고 이를 연결하는 세포가 있어 우리 몸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과 몸을 연결하는 세포가 죽으면 우리의 육신도 죽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생명안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있고 사탄과 연결되어 있으면 사망 안에 있는 것이다. 성경이 생명과 사망을 말할때는 우리의 육신의 죽음과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으로 가는 과정이 있고 사망으로 가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과정이 있고 사탄의 아들로 태어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생명의 연결자라는 것이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즉 예수님은 전등과 발전소 사이의 전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발전소인 동시에 전선이다. 생명인 동시에 생명의 연결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생명이라면 사망은 누구인가? 당연히 사탄이다. 예수님이 생명의 씨를 뿌리는 분이라면 사망의 씨를 뿌리는 자는 사탄이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생명의 씨를 뿌려 사람 농사를 짓는 분이라면 사탄도 자신의 씨를 뿌려 자신의 농사를 짓는 자이다. 차이라면 하나님은 의의 열매를 거두고 사탄은 죄의 열매를 거둔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 부활이 있는 것이다.(행24:15)
이 개념을 머리속에 넣고 성경을 보아야 한다. 즉 성경은 사망을 말할 때 대부분 성경적 의미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간혹 우리 육체의 사망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맥에 따라 이 두 의미를 잘 해석해야 한다. 사람은 어차피 흙으로 만들어져 한번은 죽고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의 육체가 죽는 것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물론 죄를 속하기 위해서 희생물의 피흘림이 필요하다.(레17:11) 그러나 죄인인 우리의 피로는 죄를 속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만이 우리의 죄를 속한다. 우리는 죽어보았자 소용이 없다. 현재 우리가 죽는 것은 죄를 속하기 위해 희생물로서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헌물로서 죽는 것이다.(딤후 4:6)
'이제 내가 내 자신을 헌물로 드릴 준비가 되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이르렀도다.'(딤후4:6)
2.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희생물과 헌물의 두 가지 위치에 있다. 희생물은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고, 헌물은 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사람이 영생을 얻기 위해 드려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두가지 위치를 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나 우리는 희생물로서의 자격도 없고, 이미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물로서 죽으셨기에 우리가 죽는 것은 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헌물로서 죽는 것이다.(딤후 4:6),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죽는 희생물이 아닌 살아 있는 희생물(롬12:1), 또는 영적 희생물(벧전 2:5) 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죽지 않고 이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의 왕국에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을 잘 모르는데서 오는 오해이다. 물속에 살려면 물고기와 같은 몸을 입어야 하고 공중에 살려면 새의 몸을 입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왕국에 살려면 하늘에 속한 몸을 입어야 한다.
'모든 육체가 같은 육체는 아니니 한 종류는 사람의 육체요, 다른 것은 짐승의 육체요, 다른 것은 물고기의 육체요, 다른 것은 새의 육체라. 또한 하늘에 있는 몸들도 있고 땅에 있는 몸들도 있으나 하늘에 있는 것들의 영광과 땅에 있는 것들의 영광이 서로 다르니라.'(고전15:39-40)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에 왕국에 들어가려면 현재 우리의 육체로는 들어갈 수 없고 하늘의 왕국에 합당한 영에 속한 몸으로 바뀌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고전15:50)
즉 현재의 살과 피를 가진 우리의 육체로는 죄가 있든 없든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다. 그래서 육체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 죽은 다음 영에 속한 몸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영으로서 소멸시키는 불이시다.(히12:29) 사람이 불을 만나면 어떤 사람도 타서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용광로라 할수 있다. 용광로에 들어가면 어떤 종류의 철도 다 녹는다. 좋은 철이든 나쁜 철이든 다 들어가 녹아서 새로운 철로 재생되는 것이다. 그래서 '번제단'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을 본 자는 죽을 것이다(출10:28) 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와 관계없이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육에 속한 몸은 번제단(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만나 죽고 영에 속한 부활의 몸으로 바뀌어져야 할 운명이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4)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 번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 번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라.'(고전15:46)
사람은 어차피 번제단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 본성에 속한 현재의 몸이 죽고 영적인 몸으로 바뀌어 져야할 운명이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는 사람이 죄가 없더라도 그리스도는 사람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전, 창세전에 예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전 2:7) 즉 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 드려야 영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사람이 죄가 없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 드릴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바울의 해석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율법을 통해 죄인이 되게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했다는 것이 바울의 해석이다.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함이라.'(갈 3:24)
성경에 의하면 율법이 없다면 죄가 없고 죄가 없다면 율법이 없다. 고로 죄와 율법은 한몸이다. 그러므로 죄, 곧 율법은 생명이신 그리스도께로 안내하는 길잡이라는 것이다. 율법 자체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지만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온다는 것이다. 즉 율법은 낚시군이 낚시를 한다면 고기를 유인하는 떡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죄(율법)이 들어온것도 은혜다. 죄라는 떡밥이 있어야만 그리스도를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이 이 말이다.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 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쳤나니'(롬 5:20)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분만으로 아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것은 작은 부분이고 더 큰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낚시군의 최종목적은 단순히 떡밥을 뿌려 고기를 모으는 것이 아니고 낚시 바늘 앞으로 모인 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도 오셨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대속은 1차적인 목적이고 최종 목적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또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10:10)
생명이라는 의미는 '씨'라는 말이고 다른 말로 하면 '영' 곧 '성령'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육체로 계시면 우리에게 영-생명을 줄수가 없고 반드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이 되어야만 우리에게 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 15:45)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의 씨를 받으면 의로운 자의 부활로, 사탄의 사망의 씨를 받으면 불의한 자의 부활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 씨가 그 열매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생명이라는 씨를 뿌리는 분이고 사탄은 사망이라는 씨를 뿌리는 자이다.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행 24:15)
대부분 성경은 사망을 말할 때 우리 육체의 죽음과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우리의 육체는 한번 죽게 되어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생명 안에 있는 것이고 사탄 안에 있으면 사망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간혹 사망을 말할 때 우리 육체의 죽음을 의미할 때도 있으므로 문맥에 따라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5장을 소위 부활장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그리스도인만 부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부활하는데 그리스도인은 의로운 자들로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부활을 말할 때는 대부분 의로운자의 부활,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우리 육체의 생명과 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져 어차피 육체는 한 번죽고 모두가 부활하도록 운명이어진 것이다. 생명이신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생명안에 있는 것이고 사망인 사탄과 연결되어 있으면 사망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농사를 짓는 분이시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개념이다. 농부의 최종산물은 열매이듯이 성경은 우리의 부활을 열매라고 한다.(고전15:20) 하나님의 목표는 단순히 우리를 육체로 만들어서 그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고 육체가 죽고 최종적으로 부활의 열매로 바뀌어지도록 운명지어졌다는 것이다. 사탄도 영으로서 자신의 사망의 씨를 뿌리고 자신의 열매-곧 사탄의 자식을 거두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 교회에서 사망을 육체의 사망에 연결시키는데 이것은 성경을 모르는데서 오는 오해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만드는게 아니고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아들은 태어나는 것이지 만드는게 아니다. 성경에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어떻게 만드는가? 내 아들은 만드는게 아니고 낳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모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were born)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 1:12-13)
3. 하나님과 사람의 생명의 연합의 원리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금나와라 뚝딱하는 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흙 사람이 상호 연합함으로서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일종의 물리적이고 화학적 작용을 하는 거와 같은 원리다. 세상에서도 저절로라는 것은 없다. 하나님과 사람이 상호 연합을 통해서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사망이 승리 가운데 삼켜진다'(고전 15:54)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망이 승리가운데 삼켜진다'(고전15:54) 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앞 구절에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다’라고 부활을 다시 설명하면서 ‘사망이 승리 가운데 삼켜지리라’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이 말씀은 대략 2가지 정도의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는 이것은 우리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은 사람의 근원적 운명을 이야기고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쓴 편지를 읽는 대상은 모두 그리스도로 인해 죄를 씻음 받은 사람들로서 죄와 관계없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므로 죄 때문에 육신이 죽는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 인생은 원래 하나님의 음식헌물로 창조되어 영생을 위해 하나님께 삼켜져야 할 운명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고후 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물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음식으로 먹어야 한다.(요 6:63)
‘내 살은 참으로 양식이요 내 피는 참으로 음료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느니라.’(요 6:55~56)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먹고 먹힘으로 연합되는 것이다. 우리 육신은 흙으로 만들어져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께 삼켜져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4절은 죽을 우리가 생명이신 하나님께 삼켜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죄가 있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생명이신 하나님께 삼켜진 다음 죽지 않을 몸으로 바뀌어질 운명이라는 것이다. 먹힌다, 삼켜진다는 의미는 죽는다는 의미이고 다른 말로 '침례(baptism)'라고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운명은 육체로 태어나서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다음 부활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생명의 연합을 위해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죽어야 하고, 하나님도 사람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하나님-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으로서 사람을 위해 죽으시고,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지성소에서 나와 번제단으로 가셨고,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나와 번제단으로 가신 것이다. 우리 육신은 원래 죄가 있으나 없으나 죽을 운명의 몸(mortality)이었다. 그런데 죄-사망이 들어왔다. 죽을 몸이 사탄의 종으로서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의 길로 가게 되었다. 그러면 여기서 ‘사망이 승리 가운데 삼켜진다’는 말은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사망'이라는 단어는 성경적 사망의 의미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이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할 때 이 사람들은 이미 구속 받은 성도로서 생명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사망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생명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망'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근원적 운명인 죽을 수 밖에 없는 육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 운명은 하나님의 헌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 삼켜진후 부활의 몸으로 바뀔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죽을 운명의 몸)이 승리(예수님-생명) 가운데 삼켜져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망이 승리 가운데 삼켜진다는 말은 죽을 몸인 우리가 하나님께 헌물로 드려져야 한다는 의미다.(딤후 4:6) 그래야만 우리는 죽을 운명(mortality)에서 죽지 않을 운명(immortality)으로 바뀌기 때문이다.(고전 15:53) 그러므로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고전 15:53) 라는 말씀과 ‘죽을 것(mortality)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는 말씀은 같은 의미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2-54절까지 나오는 '썩을 것(corruptible)' '죽을 것(motal)' '사망(Death)'은 같은 의미다. 사람은 원래 영생하게 되어 있는데 죄가 들어와 몸이 죽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인간의 근원적 운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죽을 운명(motality)의 몸이 생명이신 하나님께 삼켜짐으로 죽지 않을 운명(immortality)의 몸으로 다시 부활하도록 정해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분명히 드러났으니 그분께서는 사망(death)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life)과 죽지 아니함(immortality)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딤후 1:10)
딤후데후서 1장 10절 말씀에 보면 바울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통해 사망(Death)을 폐하고 생명(life)과 죽지않을 운명(immortality)의 몸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왜 여기서 사망의 반대말인 생명에 추가하여 '죽지 않을 운명(immortality)'이라는 단어를 추가했을까? 여기서 말하는 사망과 생명이 우리의 육체에 관한 의미라면 '죽지 아니할 운명(immortality)'이라는 말이 필요없고 단지 '생명(life)'을 주셨다라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왜 '죽지 아니할 운명의 몸(immortality)'이라는 단어를 추가되었을까? 성경은 단 한글자도 헛되이 기록된 것이 없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망과 생명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육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의 근원은 사탄이고 생명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씨를 받으면 생명의 길로 가는 것이고, 사탄의 씨를 받으면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 씨가 그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는 원래 사탄으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고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의 길로 가게되었고 종국적으로 죽지 않을 몸, 곧 의로운 자의 부활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고린도전서 15장 55절이후에 나오는 사망이라는 단어도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이듯이 사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고전 15:55)
물론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 우리에게 찾아온 부활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만 부활하는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의로운자의 부활이 아니면 불의한 자로 부활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보고 사람이 원래 영생하게 되어 있었는데 아담의 죄로 사망이 왔고 그리스도로 인해 부활이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사람의 부활은 모든 사람에 정해진 운명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55절 말씀은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성경에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다. 육신의 죽음과 삶이 생명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씨다. 하나님의 목표는 이 생명- 씨를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씨가 아니고 하늘로부터 온 씨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 3:16)
4. 결 론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을 우리의 육체의 삶과 죽음에 결부시키면 안된다. 생명이 예수님이라면 사망은 사탄이다. 예수님은 생명이라는 씨를 가지고 계신 분이고 사탄은 사망이라는 씨를 가지고 있는 자다. 특히 고린도전서 15장 55절은 사망을 말할때 '오 사망아' 하면서 사망을 의인화 시켰다. 그래서 이것은 사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신의 씨를 뿌려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는 것이다. 사탄도 기본적으로 자신의 씨를 뿌려 자기 자식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사망아(사탄아), 너의 쏘는 것(너의 씨, 곧 자식들)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사탄아) 너의 승리(네 자식들이)가 어디 있느냐? 바울은 사탄이 비록 에덴동산의 최초 전투에서 아담에게 승리하여 사람에게 자신의 씨를 뿌려 자기 자식들을 많이 낳았지만 종국적으로 십자가에서 예수님께 너는 패하지 않았느냐, 결국 사탄에게 너의 자식(열매)가 어디 있느냐?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고전 15:56절을 보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니라.'(고전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는 ‘사탄이 씨를 뿌리는 것은 죄인을 만들기 위함이요’ 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바울은 여기서 사탄이 씨를 뿌리는 것을 벌이 독침을 ‘쏜다(sting)’라는 말로 은유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죄의 힘은 율법이니라.’ 의 의미를 살펴보자. 율법이 없다면 죄가 없고(롬 5:13), 역으로 죄가 없다면 율법이 없다. 죄와 율법은 한 몸이다. 죄가 없다면 율법이 없고, 율법이 없다면 죄가 없다. 율법아래서는 누구든지 죄인이며(롬3:20) 사망아래 놓인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율법의 세계 아닌 생명의 세계에 살도록 운명지어 졌는데 아담이 범죄함으로 율법의 세계로 넘어 온 것이다(갈3:19). 그래서 죄의 힘, 곧 죄의 결과는 율법이다. 누구든지 율법아래 있으면 사망이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와서 이 율법의 세계를 끝내야했던 것이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의 끝마침(롬10:4)'이 되셨다는 것은 율법을 폐하신 것이고(히7:18), 율법이 없으면 죄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죄도 끝났다는 의미다.
'이는 율법이 진노를 이루기 때문이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롬 4:15)
'율법이 올 때까지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5:13)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었기 때문이라.'(롬 7:8)
이제 고린도전서 15장 57절을 살펴보자.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반전이 일어난다. 성경은 우리의 문제가 도덕적인 행위 문제가 아닌 영적 전쟁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냐 아니면 패냐, 이 문제다. 전쟁의 승패는 사망과 생명의 문제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는 사망의 세계이고, 하나님이 지배하는 세계는 생명의 세계이다. 사탄은 아담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세상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러나 최종전투에서 예수님이 죄와 사망의 근원인 사탄에게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이 승리를 통해 우리를 율법이라는 죄와 사망의 세계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과의 유기적인 생명의 세계로 구출하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롬 8:2)
아담은 사탄과의 최초전투에서 패함으로 율법이라는 죄와 사망의 세계로 이탈했지만 최종전투에서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님이 적장인 사탄에게 승리함으로서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 되는 생명의 세계로 옮겨왔기에(translated) 이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고전15:57).
최종 정리해보면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육체의 죽음과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생명안에 있는 것이고, 사탄과 연결되어 있으면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예수그리스도라면 사망은 사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는 육체의 사망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신약성경은 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구원받은 성도, 즉 죄를 용서받고 생명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미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만일 죄로 인해 육신이 죽는다면 그는 여전히 죄를 용서받지 못한 자며 구원받은 자가 아니다. 따라서 죄 때문에 몸이 죽는다는 논리는 맞지가 않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의로운 자의 부활과 불의한 자의 부활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으로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진 것이다. 즉 생명의 부활과 사망의 부활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운명을 원래 죽을 운명의 몸(mortality), 즉 썩어질 육신으로 1차적으로 창조하신 다음 2차적으로 죽지 않을 운명의 몸(immortality)으로 부활하도록 정하신 것이다. 이 생명의 부활의 과정을 성경은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고전 15:53) 또는 ‘죽을 것(mortality)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망' =' 죽을 것'은 죽을 운명인 우리의 육체를 의미하고, '승리' = '생명'은 곧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5장 42-56절의 말씀에서 '사망'이란 의미는 54절 말씀까지는 우리 육체의 사망을 의미하고, 그 이후부터는 사탄을 의미한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그리하여 이 썩을 것(죽을 운명인 우리 육체)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mortal, 죽을 운명인 우리 육체)이 죽지 아니함(immortality)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죽을 운명인 우리 육체)이 승리(하나님께)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고전15:52-54)
'오 사망아(사탄아), 너의 쏘는 것이(너의 씨 뿌리는 것, 곧 너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사탄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너는 예수님께 패하지 않았느냐?) 사망의(사탄이) 쏘는 것은(씨를 뿌리는 것은) 죄요(사탄의 자식을 낳기 위함이요), 죄의 힘은(결과는) 율법(사망)이니라.'(고전 15:55-56)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생명)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
비록, 사탄은 아담과 처음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이세상에 사망의 씨를 뿌려 사탄의 자식을 생산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탄과의 최종전쟁에서 승리하심으로서 이 세상에 생명의 씨를 뿌려 하나님의 아들을 생산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전환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이제 누구든지 이 승리에 참여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축복을 누린다. 그래서 이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노라. 라고 바울은 고백하는 것이다. 최후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자.
‘그분께서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translated)’(골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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