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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올더스조에 2021. 7. 24. 00:26

 

 

이단종파의 교주들이 주장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들은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신천지 교주 이만희도 자신이 하나님이며 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왜 이런 주장을 할까?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1. 아담은 신들과 같이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선악과를 먹음.

 

사탄이 아담을 속인 내용을 보면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면 신들과 같이 되어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3:4-5)

 

그러나 이것은 속은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창조한 다음 반드시 한번은 죽고 영에 속한 몸으로 부활하도록 운명지으셨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4)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즉 하나님의 씨를 받은 사람은 의로운 자의 부활로, 사탄의 씨를 받은 사람은 불의한 자의 부활로 열매를 맺도록 운명지어졌다.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24:15)

그 씨가 그 열매를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씨와 땅의 관계인 것이다. 생명이신 예수의 씨를 심으면 의로운 자의 부활로, 사탄의 사망의 씨를 심으면 불의한 자의 부활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은 속이는 자 사탄에게 속은 것이다.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운명은 죄가 없더라도 반드시 한번은 죽고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졌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죽지 않는 신들과 같이 되려고 하자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하신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계에서는 이 말씀을 사람이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는데 선악과를 먹고 그 형벌로 육신의 사망이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가 아니고 사람은 무엇을 해도 흙으로 지어진 사람이지 사람이 신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그날에 반드시 죽으리라(2:17) 하신 것은 사람의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 의미의 생명과 사망은 우리 육신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면 사망이고, 우리 육신이 죽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연결되어 있다면 산 것이라는 의미다.

 

2. 소위 예수님을 믿는다 라는 의미는 비정상적, 비상식적인 사람에서 정상적,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임.

 

창세기 3장에서와 타락한 아담과 같이 아담 안에 있는 인류의 깊은 내면에는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을 거부하고 신(천사)들과 같이 죽지 않으려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생각은 비정상적, 비상식적인 것이다. 이단 사이비 교주들의 일반적인 공통점이 자신은 죽지 않는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모두 아담이 죽지 않는 신이 되고자 소망했듯이   같은 마음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면 아담은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을 거부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에 죽기까지 순응하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씨와 땅의 관계인데 아담은 이것을 거부했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에 죽기까지 순응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흙-사람의 위치에 있는 자에게만 씨-하나님께서 씨-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죄가 없더라도 죽을 운명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단순하게 증명된다. 우리와 똑 같은 육체를 가지고 오신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일반사람들과 다름없이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교계에서는 예수님은 원래 죽지 않아야 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 죽음을 허락하셨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는 적용이 안되고 그분에게만 특별하게 적용된다면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고 단지 희한한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던 죽음과 부활이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기에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말이 안되면 하나님의 전능성을 들고 나와 자신들의 비논리를 방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다. 사실 알고 보면 소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는 비정상적인 사람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고, 비상식적인 사람에서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담은 죽지 않는 신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지만 하나님은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지니라(창3:19) 라고 하셨는데 이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어차피 한번은 죽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운명을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안에 있는 인류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죽지 않는 신이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사람으로 창조했지 신과 같은 사람으로 창조하지 않았다. 신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것을 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과 같은 사람은 심판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제 인류 유사이래 가장 신과 같은 사람 예수가 나타났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하고 죽은 자를 살린 사람이었다. 누가 보아도 이사람은 죽지 않을 사람으로 보았고 신으로 보았다. 드디어 사람들은 예수로 인해 아담의 소망이 달성되는구나 생각했다. 이제 예수는 십자가에서 신인지 사람인지 마지막 테스트를 받았다. 만일 예수가 죽지 않는다면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창3:4)고 하였던 사탄의 말이 맞는 것이다.  그러나 죽는다면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3:19)라고 하였던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나 예수는 일반사람과 다름없이 십자가에서 평범하게 죽음으로서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지니라(창3:19)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확증되었다.  사탄의 말이 거짓이라 것이 완전하게 증명되었고,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곧 아담의 소망은 완전히 끝나버렸다. 인류 유사이래 가장 신과 같았던 1등 인간 예수 마저 신이 되지 못하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이제 부터 죽지 않는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없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위 예수를 믿는다 의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정상적, 상식적 인간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신과 같은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코에 숨이 붙어있는 흙으로 지어진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3.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위치를 가지고 마귀에게 승리하심.

아담은 사람이 죽지 않는 신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었다. 정상적인 사람의 위치에서 비정상적인 사람의 위치로 이탈한 것이다. 상식적인 사람의 위치에서 비상식적인 사람의 위치로 이탈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에 어떻게 승리하셨나? 마태복은 4장에서 사탄이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거든 돌들로 빵을 만들어 보라는 유혹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을 때 예수님은 단지 나는 사람이다하시면 사람의 위치를 가지고 승리하셨다. 즉 사람은 돌들로 빵을 만드는 자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자가 사람이고,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리면 사람은 죽기 때문에 당연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가지고 사탄에게 승리하신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흙이라는 사람의 위치를 부끄러워하여 위치를 이탈하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오른 신 것이다. 아담이 비정상적, 비상식적 사람이라면 예수님은 정상적, 상식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위 예수님을 믿는다 라는 의미는 예수님처럼 정상적,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너무도 명백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의미를 모르고 예수님은 죄가 없어서 죽지 않을 분인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해서 죽게 하셨다는 비상식적인 황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또 이러한 믿음을 대단히 좋은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합리적인 믿음이 아니라 어거지인 것이다.

 

4.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신천지 교주는 자신이 죽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을 보고 교계에서는 말도 안되는 사이비 교주의 황당한 주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는 육신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인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해서 죽었다는 황당한 주장과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육신이 죽지 않고 신들과 같이 되고 싶은 타락한 아담의 깊은 욕망이 우리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사이비 교주들이 계속 등장할 뿐아니라 기존 교인들이 많이 속아 넘어간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고자는 성경상의 많은 진리들이 닫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