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었다고 하면서 승리하십시오. 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이것이 승리인가? 그냥 성경에 써 있으니까 승리인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아담은 창세기 3장에서 사탄과의 영적전쟁에서 패하였다. 이것을 죄라고 하는데 이로 인해 율법이 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이 사탄과의 1차 전쟁의 결과 범죄함으로 율법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그것은 약속을 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 범죄들로 인해 더해진 것이요, 한 중재자의 손에서 천사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갈 3:19)
사실 율법은 하나님과 종들인 천사들 간의 통치체제이다. 율법이란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와 같이 문서에 의한 계약 관계로 왕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하들인 천사들에 대한 통치체제인 것이다. 반면에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의 관계로 창조되었다. 왕이신 하나님 앞에 사람은 왕권을 이어받을 세자로, 천사들은 신하들로 창조되었다.
사탄은 타락하기 전에 천사장이었다. 그래서 사탄도 일종의 천사로 기본적으로 천사들에게 적용되는 율법의 세계에 살도록 창조된 피조물이다. 그런데 아담이 사탄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 율법이라는 통치체체로 위치를 이탈한 것이다. 곧 아들의 위치에서 종의 위치로 이탈한 것이다. 물론 나중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었지만 결국 아담이 범죄함으로 스스로 율법을 택한 것이나 마찬가지 형국이 된 것이다.(갈3:19) 물론 율법 안에 좋은 것이 너무 너무 많다. 그러나 좋은 것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죄란 바로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에서 사람은 천사에 비해 약하고 능력이 없으며, 결정적으로 육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약점이 있는 피조물로 창조되었지만 하나님 왕국에서의 위치는 사람은 세자이고, 천사는 종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각각의 피조물을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반드시 한 번은 육체가 죽고 영적인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천사처럼 죽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려면 사람은 반드시 씨-하나님 앞에서 흙-사람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피조물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피조물의 위치를 지키는 것, 곧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것이 생명이고 위치를 이탈하면 사망이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고, 천사는 천사로서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우주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사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든지, 사람이 천사가 되고자 하든지, 천사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혼란이 오는 것이다. 성경은 바로 피조물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신의 위치를 이탈한 것을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했다 라고 하며 죄라고 하는 것이다.
사탄은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여 하나님이 위치에 오르려다 타락한 피조물이다.(사14:12-20, 겔28:13-17) 노름꾼은 또 다른 노름꾼을 만들 듯이 이탈자는 또 다른 이탈자를 만든다. 사탄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는 신이 된다고 유혹하여 아담이 위치를 이탈하게 만든 것이다.(창 3:4-6)
전쟁의 기본은 나의 강점을 가지고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사탄은 이것을 가지고 아담을 공격한 것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을 선택하면 ‘나처럼 죽지 않는 신이 된다.’라고 유혹한 것이다. 결국 아담은 이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사람은 어찌해도 사람이지 사람이 신이 될 수 없다. 아담이 아들의 위치에서 신(천사)-종의 위치로 위치를 이탈한 것이다. 이것을 죄라고 하는 것이다. 피조물의 죄란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이탈한 것을 죄라고 한다. 사탄은 하나님이 되고 싶어 자신의 위치를 이탈한 자고, 아담은 신이 되고 싶어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였다. 일부 천사들 중에도 사람의 딸들을 부러워하여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여 현재 영존하는 감옥에 있다고 한다.(창6:2, 유 1:6)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유 1:6)
모두 다 남의 떡이 커 보여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위치를 이탈하자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하시면서 인간의 근원적 위치를 물으신 것이다. 그래서 타락한 아담의 본성을 가진 인류는 종교적으로 신이 되고 싶고, 정치적으로 왕이 되고 싶어 한다. 지금도 인간은 모두 각 분야에서 신이 되고 싶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 안에 있는 인류는 신과 같은 사람을 흠모하고 숭배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탄에게 속은 아담은 죽지 않는 신이 되고 싶어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하셨는데 이것은 사람은 무엇을 해도 흙은 흙이지 결코 씨-영(신)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어디서 완전하게 증명이 되었느냐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완전히 증명되었다. 인류 유사 이래 인간은 영생불사의 신이 되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 그러나 다 죽었다. 이제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불리는 사람으로 인류 유사이래 아담이 가장 소망하는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신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 빵으로 치면 원래 사람은 무교병으로 지음 받았는데 누룩이 들어와 부풀어 올라 유교병이 된 것이다. 신도 아니면 신처럼 부풀려진 사람이 된 것이다. 아담 이래 수많은 사람이 아담이 소망하는 신의 경지에 이르고자 노력해 왔다. 그런데 만일 유사이래 가장 신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시험을 당하고 신이 되지 않는다면 아담의 소망은 끝나는 것이다. 1등이 나타서서 죽지 않은 신이 되지 못하고 그냥 죽어 버린다면 사탄의 말은 거짓말로 만천하에 폭로되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예수님은 신과 같은 사람을 대신해서 심판받고 신과 같은 사람을 끝내야 한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하고, 물위를 걸어가는 등 인류 유사이래 가장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드디어 가장 신과 같은 사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신이 될 수 있는지 시험을 받았다. 그런데 그만 일반 사람과 다름없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결국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로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의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확증 된 것이다. 인류 유사이래 가장 신과 같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사탄이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창3:4)’라는 말이 완전하게 거짓임이 증명된 것이다. 1등이 죽었느니 2등부터는 도전해 보나 마나 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 15:45)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들어 온 것이 율법이고, 이 타락한 아담은 가장 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고, 능력으로서는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시험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으로나 능력으로나 인류 유사 이래 1등인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도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음으로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육체가 없음이 증명되어 율법의 끝마침의 되었고(롬 10:4), 죽지 않을 것 같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너무도 평범하게 죽으심으로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고전 15:45)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을 끝내고 옛 사람 아담을 끝내고 새 사람의 시대를 연 것이다.
‘새 사람을 입었나니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 3:10)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이 어떻게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인가 알아보자. 성경은 하나님과 사탄의 영적 전쟁에 관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이라는 1단계 작전의 실효성이 없어서 새로운 방책을 사용하신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사람이 사탄과의 전쟁에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오지 못하면 또 다시 2단계 작전은 실패하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총사령관이시더라도 실제 전투원은 우리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패하면 하나님도 패하는 것이고 사람이 승리하면 하나님도 승리하는 것이다. 아담은 사탄과의 전쟁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여 사탄에게 패함으로 아담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위임을 모두 잃어버리고 왕국의 주권과 국민과 영토를 모두 사탄에게 빼앗긴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회복하려면 사람 중에 누군가 와서 다시 빼앗긴 왕국을 되찾아 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리의 방정식은 나와 있다. 아담이 사탄과의 전쟁에서 위치를 이탈함으로 전쟁에 패하였다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의 사람의 위치를 지키면 승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사람의 위치지킴으로 어떻게 승리하셨는지 살펴보자. 이제 예수님은 아담이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아 오기 위해 사람을 대표하여 사탄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광야에서 사탄과 마주하였다.(마 4:1~11, 눅 4 :1~13)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로 빵이 되게 하라.(마4:3), ②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보라.(마:4:6), ③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세상영광을 주겠다.(마4:9) 여기서 예수님은 사람의 위치를 가지고 승리하셨다. 사탄은 항상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 하면서 예수님을 유혹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말은 ‘네가 신이거든’ 이 말이다. 지금 사탄이 유혹하는 말은 타락한 아담이 너무 너무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돌로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은 여기에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전쟁에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가지고 승리하셨다. 또 예수님은 마귀의 세 번째 시험에 대해 사람은 세상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사람이다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처음 정해 주신 사람의 위치를 가지고 대응하셨다. 예수님은 단지 ‘나는 신이 아니고 사람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승리하셨다. 그러자 마귀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겼다.(마 4:11) 이것은 무엇인가? 아담은 창세기 3장에서 천사가 부러워 아들의 위치에서 천사-종의 위치를 이탈하자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혼란을 가져왔다. 섬김을 받아야 할 자가 섬겨할 자의 위치로 이탈한 것이다. 이 우주 질서의 혼란으로 천사들은 자신들이 섬겨할 대상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예수께서 마귀에게 승리함으로 원래 아들의 위치를 회복하고 우주질서를 바로 잡은 것이다. 그러자 천사가 와서 예수님을 섬긴 것이다.
‘이에 마귀가 그분을 떠나고, 보라,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기니라.’(마4:11)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이용하여 마귀에게 승리하였기 때문에 말씀을 암송해야 승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한다고 하시는데 만일 그렇게 해서 마귀에게 승리할 수 있다면 인류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승리할 수 있을까. 예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어야 하는데 말씀을 암송할 수 있는 특출한 사람 몇 명만 승리할 수 있다면 이것은 보편적 승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인류 보편적 승리여야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특출한 사람 몇 명만 구원받도록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다 주셨다. 우리에게 없는 것으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주신 것으로 힘 안들이고 승리하도록 다 주신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든지 다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예수님께서 잃어버렸던 왕국을 선포하셨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이 왕국을 잃어버렸다. 이제 예수님 오셔서 사탄과의 1차 전쟁에서 승리하자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왜 오시자마자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시지 않았는가?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6.25때 본토를 거의 다 빼앗기고 낙동강 방어선만 남았다. 그러면 잃어버린 국토를 다시 찾으려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러면 인천이라 곳은 실지를 회복하기 위한 아군의 교두보가 되는 것이다. 교두보가 확보되어야 그곳에 병력과 장비, 물자가 들어와 계속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고 해서 실지가 다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인천은 단지 공격을 위한 거점으로 이를 발판으로 계속 북쪽으로 공격하여 잃어버린 땅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서 마귀와의 전쟁은 최종 전쟁이 아니고 바로 실지 회복을 위한 거점이 되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거점을 발판으로 처음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천사에 비해 사람의 위치는 연약하고 능력이 없으며, 결정적으로 육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창세기 3장의 위치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를 이탈함으로 이 위치를 다 잃어버렸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의 위치전쟁에서 사람의 연약함과 능력 없음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사탄에게 승리함으로 이 위치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사탄과의 전쟁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이 전투는 최초진지를 돌파하기 위한 거점 확보 전투이고 완전하게 승리하려면 적의 최종진지에 승리의 깃발을 꽂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 주신 사람의 위치는 죽음인 것이다.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서 고귀한 것이고 절대적으로 확보해야할 목표다. 이 죽음 안에서만 하나님과 사람의 생명이 연합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 성도들의 죽음은 그분의 눈앞에서 귀중하도다.’(시 116:15)
이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왕국의 실지 회복을 위한 최종 전쟁이다. 이제 마귀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전쟁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회피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마귀는 유대인들을 이용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여, 네 자신이나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마 27:40) 하면서 유혹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죽기까지 사람의 위치를 지킴으로 마귀에게 승리하시고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오르신 것이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빌 2:8-9)
사람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고 마귀에 대한 승리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숨을 거두시니라.’(요 19:30)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라고 하신 것은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를 다 완수했다.(It is finished)’라는 말이다. 아담이 잃어버렸던 사람의 위치를 다 회복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속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죄가 ‘위치를 이탈하다’ 라는 의미라면 구속은 ‘원래의 위치로 회복하다’ 라는 의미다. 사탄과의 전쟁에서 아담이 빼앗긴 사람의 위치, 곧 인격(人格)을 다 회복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승리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 인격에게만 자신의 생명-씨를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담은 죽지 않는 신, 곧 천사가 된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여 신도 아니면서 신처럼 살아 왔다. 사람은 원래 흙-무교병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누룩이 들어가서 부풀려진 유교병이 되어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인해 사람의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거짓이 폭로되고 진실이 이긴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5절 말씀은 바로 예수님께서 아담 안에 있던 사람이 신도 아니면서 신인척 하는 거짓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를 벗겨내고 사람의 진실로서 승리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 2:15)
예수님은 스스로 이기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신의 인간의 운명, 곧 십자가에 못 박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mortality)’을 가지고 승리하였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람은 씨-하나님 앞에 흙-사람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아담은 사람이 씨-신이 된다는 사탄의 속임수에 속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고 싶어도 복을 주실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복을 받는 길은 사람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해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의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하옵소서.’(요 17:1)
이 의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달성되려면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사람이 육체로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이식받아 죽고 부활함으로서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롬 1:4)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가지고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승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곧, 죽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인간의 위치를 지키는 것, 이것이 승리다. 이 승리는 인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곧 내 승리인 것이다. 우주 안에는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3번의 우주적 전쟁이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는 창세기 3장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마귀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과 마귀가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광야에서,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