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성경이 말하는 ‘진리(the truth)’란 무엇인가?

올더스조에 2019. 2. 22. 20:56

성경이 말하는 진리(the truth)란 무엇인가?

 

1. 들어가는 말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세상은 인류의 문제를 여러가지로 제시하지만 성경은 인류의 문제를  아담이 마귀에게 속았다는데 있다고 단 한가지로 단순하게 말한다.  아담은 무엇에 속았나?   사람은 죽지 않는 신이 될 수없음에도 '이것을 먹는 날에 죽지 않는 신이 된다'(창3:4-5)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은 것이다. 세상에서도 고단수 사기꾼에게 속으면 자신이 속은 지도 모른다.  마귀는 우주 가운데 가장 단수가 높은 사기꾼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자신이 속은 줄도 모르고 있다. 너무 깊게 속아 있다보니 기독교계에서 조차  사람이 영생하게 되어 있었는데 아담이 범죄하여 육체의 사망이 왔다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는 바람에 성경의 대부분의 진리가 가려져 있다.  따라서 성경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속느냐 속지 않느냐', 곧 '진실 대 거짓'의 싸움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14:6)

 

성경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세상의 용어의 정의와 다르다. 세상에서도 각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는 일반적 상식과는 다르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의 의미도 세상이 말하는 육체적 생명과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소위 영생을 얻는다 라는 의미는 하나님과의 연결을 의미하고 사망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the truth)의 정의는 세상이 이야기 하는 객관적 진리와는 차이가 있다. 세상이 말하는 진리란 지구는 둥굴다, 또는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라고 하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진리'란 예수님 자신을 말한다. 예수님이 진리라는 말은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진짜 사람이고,  아담안에 있는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가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단순히 흙으로, 곧 누룩없는 무교병으로 창조하였는데 '이것을 먹는 날에 죽지 않는 신이 된다'(창3:4-5)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타락한 아담과도 같이 누룩이 들어있는 유교병처럼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신도 아니면서 신인척 하는 가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무교병과 같은 진실한 사람이지 유교병처럼 부풀려진  신과 같은 사람은 심판의 대상이다. 예수님은 신과 같은 아담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오셔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물위를 걸어가는 등 신과 같은 사람으로 불리었고 유사이래 아담이 소망하는 그 사람이었다.  드디어 인류는 신과 같은 예수님으로 인해 죽지 않는 신이 된다는 아담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반사람과 다름없이 죽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이것을 먹는 날에 죽지 않는 신이 된다'고 말한 사탄의 말이 맞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사이래 1등 인간으로서  2등 이하 모든 인간을 포함하고 죽었기 때문에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이 된 것이다. (고전 15:45)    '마지막 아담'이란 의미는 죽지 않는 신이 될 수 있다는 아담의 소망이 끝났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제  아담의 종족은 유기적으로 끝이 남으로서 옛인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무슨 아담의 종족이 끝이 났다는 말인가?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이 관점에서 아담의 종족은 유기적으로 끝이 난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분이다. 아담의 종족은 이미 2천년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제 아담으로는 더 이상 소망이 없고 새로운 인류가 출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새인류의 조상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이  체포되어 빌라도 앞에 갔을 때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빌라도가 그분께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18:38)

 

빌라도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진리가 무엇이냐 물은 것이다. 사실 빌라도는 거짓아래 있는 인류의 대표이자, 구원받지 못한 인류의 대표이다. 성경은 절묘하게 빌라도를 통해 진리를 떠난 인류의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도 빌라도와 같이 진리를 앞에 두고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그런데 소위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한편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우리의 일반적 상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진리라는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솔직히  예수님이 왜 진리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목회자도 별도 없는 것 같다. 당시 예수님은 오셔서 자기 자신이 진리라고 말하였지만 세상 사람들은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8:45)

 

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세상은 사악함과 속이는 자,  곧 거짓아래 있었고(요일 5:19,  계12:9)

 

'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음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5:19)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내쫓기더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 12:9)

 

진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들어왔다고 말한다.(요 1:17)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으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이라.’(1:17)

 

사람은  원래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육체가 한번 죽고 부활하도록 운명이 지어졌다. (행 24:15)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라는 말씀의 의미는 육신이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마귀가 아담과 이브에게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라고 한 것은 '육신이 죽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한 거짓말이다.  전쟁의 기본은 나의 강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신 마귀는 죽지 않는 자신의 강점으로 가지고 한번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mortality)으로 창조된 사람의 약점을 공격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근원적 문제는 사람은  원래 한번 죽도록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먹으면 육신이 죽지 않는 신이 된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아담이 속았다는데 있다. 

지금 대부분의 교회도 이 거짓말에 너무 깊게 속아 사람이 원래 죽지 않도록 창조되었는데 아담이 범죄하여 육신의 죽음이 왔다고 믿는다.  성경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속느냐,  속지 않느냐의 싸움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죽으셨다.  죄가 없어도 사람이 죽는다는 문제는 너무도 쉬운 문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쉬운 것을 믿지 않고 어렵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을 믿으려고 한다. 성경은 분명하게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는 운명이기 때문에 '그래서(So)'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죽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히 9:28)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이와 같이(So)'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 9:27-28)

'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도 예수님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이 싸움이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으로 오셨지만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인격적인 부분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창조하셨지 신이 되라고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창조목표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는 의미는 사람의 조상이라는 의미다.  아담이 옛 인류의 조상이라면 예수님은 새인류의 조상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고후 5:17)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것을 믿어야 구원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래 목표로 한 사람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셔서 줄곧 자신을 '사람의 아들(人子)'이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신이 되고 싶어 타락한 인류는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부분보다 신적인 부분만을 강조한다. 이게 다 죽지 않은 신이 되고 싶어 타락한 아담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도 사람의 진실을 가지고 거짓을 폭로함으로 이긴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라는 사탄의 말이 맞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십자가에서  일반사람과 다름없이 평범하게 죽음으로서 사람은 죽지 않는 신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진실을 폭로함으로 거짓을 이긴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확증함으로서 인간의 진실을 가지고 거짓을 이긴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에 죽을 수 없는 분인데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도 우리의 육체가  죽지 않으려면 천사와 같은 몸을 입어야 한다고 하셨다. (눅 20:36)  그래서  예수님은 오셔서 죽음을 맛보기 위해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육체를 입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예수님을 보노라. 그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 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 위에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히 2:14-16)

 

사람의 육체가 죄가 없으면 죽지 않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사기군은 사기를 치다가도 진실 앞에서는 슬그머니 사라지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해준 인간의 죽음이라는 운명, 곧  진실을 가지고 육신을 가진 사람이 죽지 않는 신이 될 수 있다고 속인 사탄을 이긴 것이다.  십자가의 승리, 이것은 진실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능력의 승리, 기도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준 인간의 죽음이라는 운명을  가지고 승리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이것은 인간이라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없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으로 승리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창조 시부터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예수님 한 분에게만 적용된다면 우리는 절망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인류 보편적 승리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내 승리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2.  성경은 거짓과 진실의 두 세계를 대별하여 말함

 

성경은 두 개의 세계를 대별해서 말하고 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과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은 거짓아래 있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왕국은 진리 아래 있다고 말한다. 진리가 예수님이라면 거짓은 사탄이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를 향해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 ‘온 세상을 속이는 자라고 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8:44)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내쫓기더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12:9)

 

성경이 정의하는 용어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세상에서도 각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의 개념은 서로가 다르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제압이라는 용어는   아군이 포격을 하는 동안  적이 피해를 입고 자신들이 의도하는 행동을 잠시동안 하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이지만 경찰이 범인을 제압했다는 의미는 범인을 완전히 체포했다는 의미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왕국은 우리의 일반적 상식과 개념 속에 있는 세계가 아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은 선악을 판단하는 율법적인  세계이고 하나님의 왕국은 율법이 작용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고 사람이 아들이 되는 생명의 세계이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회장과 사원은 법적관계이나 회장과 회장의 아들은 율법이 작용하지 않는 생명의 관계이다. 이렇듯 성경은 율법에 의해 통제되는 도덕적인 책이 아니고 생명의 관점에서 기록된 책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생명과 사망이라는 단어도 우리 인간의 육체적인 삶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예수님이라면 사망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의미하는데 결국 하나님과의 연결이 아닌 마귀와 연결된 상태를 의미한다성경은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생명, 사망을 우리의 상식적 수준에서 우리의 육체의 생명과 사망에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개념이다. 성경은  생명과 사망의 개념을 말할 때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다고 말한다.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렘 21:8) 

 

이 의미는 하나님께로 가는 생명의 과정과 사탄에게로 가는 사망의 과정이 있다는 것인데, 성경은 이것을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개념으로 묘사하고 있다. 생명의 씨를 뿌리면 생명의 열매를  거두고 사망의 씨를 뿌리면 사망의 열매를 거둔다. 사람은 흙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죄와 관계없이 누구든지 반드시 한번은 죽고 부활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 씨가 그 열매를 결정한다. 하나님-생명의 씨를 심으면 의로운 자의 부활로, 사탄-사망의 씨를 심으면 불의한 자의 부활로 부활하는 것이다.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 24:15)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면 사망의 근원은 마귀이다. 이렇듯 성경은 대별되는 두 가지 세계의 관점에서 기록된 책이기에 진리가 예수님이라면 거짓은 마귀인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에 목표가 있다. 곧 예수-생명을 가진 많은 아들들로 구성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표다.

 

 

3.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사람의 운명

 

예수-생명을 가진 많은 아들들로 구성된 사회가   완성이 되면 이것이 하나님의 왕국이다. 하나님 의도는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씨를 흙으로 창조된 사람들에게 심어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는 것이다.(요1:12-13) 다른 종교는 사람들을 교육과 수련을 통해 어떻게든지 개선시켜 보겠다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의 씨-생명을 주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다른 종교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통상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물로 오셨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위해 씨로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3:16)

 

그러면 마귀의 목표는 무엇인가? 마귀도 똑 같이 자신의 씨를 사람들에게 심어서 마귀의 자식을 만들어 마귀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 면에서는 하나님과 똑 같은 것이다. 

예수님은 오셔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8:44)

 

위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마귀에게서 태어났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결국 인류는 모두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것은 출생의 문제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자동적으로 지옥으로 가게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사실 두 씨, 곧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에 대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우리 구원의 문제는  씨-생명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기에 우리의 행위나 육신적 혈통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1:12-13)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이라는 말은 씨-생명이라는 의미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위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여기서 사람이 성령, 곧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는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육체라는 형상을 가지고 있기에 항상 물질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보이지도 않고 형체도 없기에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괴리가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 왜냐하면 형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TV를 보는 것도 일종의 영과 같은 보이지 않는 전파가 TV화면에 연결되어 형상으로 나타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의 목표는 사람들이 하나님 자신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의 연결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무엇으로도 안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과 육인 사람과의 차이는 너무도 크기 때문에 중간 연결자가 필요한데 이것도 반드시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만 가능하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 2:5)

 

만물의 종류는 고체(固體), 액체(液體), 기체(氣體), 전체(電體), 영체(靈體)가 있다. 사람 몸은 고체, 액체, 기체, 전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영체를 제외한 다른 물체는 영원하지가 않다. 사람이 영생을 하려면 영체로 바뀌어져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표는 사람을 흙으로 만든 다음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영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4, 46)

 

위 말씀에 보면 사람은 분명히 본성에 속한 몸에서 영에 속한 몸으로 바뀌어지도록 운명지어진 것이다.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사람이 영생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죄가 들어와 육신이 죽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처음부터 영생하는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존재였다.(3:22)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 (3:22)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우리의 육체의 죽음과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생명이신 예수님과 연결되면 생명 안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사망의 근원인 마귀와 연결이 되면 사망 안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씨를 뿌리시는 분이라면 사탄은 사망의 씨를 뿌리는 자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씨가 들어오면 하나님의 아들로, 마귀의 씨가 들어오면 마귀의 아들로 부활하는 것이다.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24:15)

 

위 말씀에 보듯이 모든 사람은 죄와 관계없이 한번은 육체가 죽고 부활하도록 운명지어 졌다.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한번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간단한 진리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고 죄가 없음에도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이다. 죄가 없으면 육체가 죽지 않는다면 죄없으신 예수님도 죽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반사람과 다름없이 죽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우리의 육체적 생명과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간혹 소위 믿음이  좋다는 그리스도인들과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 하다보면 그들은 논리적으로 말문이 막히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뭐든지 다 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런 논리라면 예수님은 육체로 오실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 앉아서 그냥 인간의 죄를 사해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오신 것이다.  그러한 상식적이고 비 논리적인 주장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고  종교적 어거지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한번은 죽고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졌다.(고전 15:13) 수박 씨를 심으면 수박이 나고 참외 씨를 참외가 나듯이 그 씨가 그 열매를 결정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죄가 없으면 영생하고 죄가 있으면 육체가 죽는 개념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이 정한 법에 의하면 사람은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해서도 죽어야 하지만 유기적인 영생을 얻기 위해서도 육신은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다. 씨와 흙이 결합되면 상호 죽음 안에서 연합되어 새로운 생명을 발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죽는 것을 식물의 씨에 비유해 심겨진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planted)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6:5)

 

그러므로 죄가 있는 인간은 수학적으로는 두 번 죽어야 한다.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의 종류가 크게 희생물과 헌물이다. 희생물은 죄 값을 치르기 위한 법리적인 것이고 헌물은 죄와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해 드려지는 유기적인 제물인데 공통점은 둘 다 죽음으로 드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를 위해서도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과 교통을 위해서, 즉 영생을 얻기 위한 하나님과의 연합을 위해서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즉 상호 이질적인 두 존재는 한 공통지점에서 연합되는 데 바로 죽음-재 안에서 연합된다. 사람과 나무의자가 연합되려면 둘 다 불로 태워져 재가 되면 연합된다. 만물은 바로 불-영 안에서 상호 연합된다. 이렇듯 하나님과 사람도 상호 죽음 안에서 연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소멸시키시는 불이며, 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명의 연합을 위해서는 사람도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도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사람에게 준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내 생명을 다른 누군가에 준다는 것은 나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이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죽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지성소로부터 나와 번제단으로 가셨고, 사람으로서는 세상으로부터 나와 번제단으로 가신 분이다. 그래서 인류는 그리스도의 번제단-십자가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사람은 설령 죄가 없더라도 근원적으로 번제단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러한 생명의 연합의 원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그리스도 안으로 유인하기 위해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도록 하여 유기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나게 하고, 또 사람에게 지킬 수 없는 율법으로 주어서 모든 사람을  율법 아래 가두어 법리적으로도 죄인이 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자 율법의 올무로부터 자신들을 건져줄 구원자를  찾게 되었는데 이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율법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3:24)

 

즉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라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준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율법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구원자를 찾게 하기 위해 주었다는 것이다. ? 사람은 어차피 죄가 있으나 없으나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낚시군은 낚시 바늘 앞으로 고기를 모으기 위해 떡 밥을 뿌린다. 떡 밥은 직접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고 고기를 낚시 바늘 앞으로 모으기 위한 것이다. 율법도 그렇다는 것이다. 율법의 결정적 단점은 하나님의 창조 목표인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가 없다.(갈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에 위배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생명을 줄 수 있는 율법이 주어졌더라면 진실로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있었으리라.'(갈 3:21)

 

 율법은 단지 생명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죄가 있건 없건 무조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만 하나님의 창조 목표인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표인 사람에게 생명을 주려면 우선적으로 사탄이 설치해 놓은 죄라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최종목표는 죄라는 장애물 제거가 아니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목표를 탈취하기 위해 장애물 제거는 부수적인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탄이 설치해 놓은 죄라는 장애물과 함께 하나님의 목표를 단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셨다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4)

 

즉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죽음 안에서 죄라는 장애물을 제거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목표인 생명을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고전 1:24)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죄만을 대속했다면 그것이 무슨 지혜와 권능인가?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나의 죄를 대속했다는 것은 일종의 혜택으로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돈 많은 누군가가 대신해서 내 빚을 갚아 주었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단순히 우리에게 죄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한 혜택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무슨 권능과 지혜이겠는가?

 

바로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율법에 의한 죄 값을 치루기 위한 희생물의 위치와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인 생명을 얻기 위한 헌물의 위치, 두 가지 위치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죄를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이 죽는 것은 희생물로 죽는 것이 아니고 헌물의 위치로 죽는 것이다.

 

이제 내가 내 자신을 헌물로 드릴 준비가 되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이르렀도다.’(딤후 4:6)

 

만일 죄를 용서받은 우리가 죄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면 우리의 죄는 아직 용서받은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을 훼손하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죄로 인해 육체가 죽는다고 한다면  우리 자신이 희생물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말이 안되는 것이다. 희생물은 오직 죄 없으신 그리스도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죽는 희생물이 아닌 살아 있는 희생물(12:1), 영적 희생물(벧전 2:5)이 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이 죽는 것은 희생물로 죽는 것이 아니고 헌물로 죽는 것이다. 사람은 어차피 죄가 있으나 없으나 한번은 죽고 부활하도록 운명지어진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십자가)의 두 가지 위치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고 생명을 주기 위한 씨로 오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3:16)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의 씨를 받으려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 이다. 

-씨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씨를 주기 위해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2:7)

 

왜냐하면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천사도 창조하고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낳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요 1:12-13) 그러므로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다음 죽고 다시 태어나야할 운명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씨와 땅의 관계, 남자와 여자의 관계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2장에서 아담과 이브의 부부관계를 통해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가 들어오기 전에 아담을 잠들게 하고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만드셨는데 아담은 예수그리스도, 이브는 교회를 예표한다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분께서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 살로 채우시며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2:21-24)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이것은 큰 신비니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1-32)

 

이는 예수님이 사람이 죄가 없음에도 교회(부활생명)를 산출하려면 죽음을 통해 산출해야 한다는 것을 계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아담에 있지 않고 이브에 있다. 아담은 죽음을 통해 이브를 산출했다. 여기서 이브는 부활생명, 곧 교회를 예표한다. 교회의 구성원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가 없어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부활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운명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5.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람의 위치. 곧 진실을 이탈함

 

그러나 아담은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3:4-5)라는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이 정해 놓은 사람의 운명을 거부하고 대신에 사탄을 택한 것이다사람은 하나님의 씨를 받은 다음 육체가 죽고 의로운 자로 부활할 운명인데 이 운명을 아담은 거부한 것이다즉 아담은 사람의 위치를 지켜야 하는데 사람이 죽지 않는 신이 된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즉 흙이 씨가 되고 싶어 타락한 것이다.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사람을 향하여 죽지 않는 영적 피조물인 마귀가 나를 택하면 죽지 않는다고 속인 것이다. 전쟁의 기본은 나의 강점을 가지고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마귀는 자신의 강점을 가지고 사람의 약점을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속은 것이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육체가 어차피 한번은 죽고 부활하도록 운명지어 졌기 때문이다.(24:15)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사람이 위치를 이탈하자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3:9) 하신 것이다. 사람은 씨-하나님 앞에 흙-사람의 위치를 지켜야 하나님께서 씨를 뿌릴 수가 있는데 이미 사탄이 자신의 씨를 흙-사람에게 뿌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비록 사람이 죄를 지었지만 사탄이 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하니 종들이 그에게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모으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거늘’(13:28)

 

아담은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을 망각하고 사람의 위치를 이탈한 것이다. 사람은 흙이지 씨가 될 수가 없음에도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라고 하신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이 정해 놓은 사람의 위치를 이탈한 것, 이것을 죄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타락한 아담 안에 있는 인류는 신도 아니면서 신인척 하거나 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룩이 들어있는 유교병은 받지 않으시고 누룩없는 무교병만 받으시는데 이는 사람은 원래 무교병의 위치로 창조되었는데 위치를 이탈하여 부풀려진 유교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종교적으로는 죽지 않는 신이 되기 위해, 정치적으로는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보라, 자신은 모두 죽지 않는 신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 안에는 있는 인류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사람의 위치를 이탈한 거짓 사람이다. 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진리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진실은 흙이다. 그런데 씨도 아니면서 씨인척 하는 것이 아담 안에 있는 인류다. 신도 아닌면서 신인척 하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더 멀리 더 높이, 더 빨리를 추구한다.

 

 

 

6.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사람의 위치, 곧 진실을 가지고 마귀에게 승리함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진실을 가지고 마귀에게 승리하셨다. 흔히들 마귀에게 승리하려면 기도를 해야 한든지 더 큰 능력을 있어야 승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단지 나는 사람이다라고 하셨다. 사람의 위치를 가지고 승리하신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곧 신이거든 이 돌들로 빵을 만들어 봐라. 네가 신이거든 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봐라.’ 하면서 인간의 위치를 벗어나 신의 영역에 도전하라고 유혹하였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사람은 돌로 빵을 만드는 것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사람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사람이 아니니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응대하셨다. 마귀는 네가 하나님이 아들이거든 ~’ 하면서 유혹했지만 그때마다 예수님은 사람은~ ’ 하면서 대응하셨다. 사람의 위치, 곧 사람의 진실을 지키자 마귀가 물러간 것이다. 돌로 빵을 만들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 그렇기에 참사람이신 예수님은 사람의 진실-위치를 가지고 승리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창세기 3장에서 마귀의 이러한 능력을 부러워하여 마귀에게 패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뛰어내려보라는 마귀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매달리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죽기까지 사람의 위치를 지킴으로 마귀에 승리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해주신 흙-사람의 위치를 지켜야만 하나님이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아담은 사람의 진실-위치를 이탈하여 마귀에게 패배한 자라면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람의 진실-위치를 지킴으로 마귀에게 승리하고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오르신 분이다. 예수님은 아담이 잃어버린 인간의 원형을 십자가에서 되찾아 주신 분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부여한 인간의 위치를 부끄러워하여 자신의 위치를 이탈했지만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람의 진실-위치를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자랑스럽게 지킴으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인격(人格)의 고귀함을 되찾아 주시고 이 인격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권리, 곧 인권(人權)을 되찾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격의 승리, 하나님의 승리다. 예수님은 바로 사람의 진실을 십자가에서 찾아 주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물위로 걸어간 지점, 죽은 자를 살린 지점,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한 지점에서 우리를 구속한 것이 아니고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우리와 예수님은 다른 지점에서는 연합이 될 수 없고 오직 십자가에서만 연합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성취된 것이다. 우리는 이 진리 안에서만 자유할 수가 있다.

 

또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7.  결  언

 

우리는 아담안에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진실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주안에 가장 큰 비밀이 있다면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참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이다.   바울이 빌립보서 3장 9절에서 고백했듯이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진짜 사람을 발견하고 우리 또한 그 안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위치에 있는 자에게만 복-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 3:9)

 

사실 십자가의 출현배경은 하나님 자신이 영이라는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이 영이라는 의미는소멸시키는 불이라는 의미다.(히 12:29)  그래서 영 하나님은 불 하나님이고 여기서 화염검 - 번제단 - 십자가의 개념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인 것이다.  어떤 철이든 용광로 안에 들어가면  녹여져 재창조되듯이 만물은 불로 태워져 재창조 된다.  사람도 영생을 얻으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생명이신 하나님께 삼켜져 재창조되어야 한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십자가를 고통과 고난 정도로만 인식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 자신으로 우주의 중심이며 이 위치에서만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 인간의  생명이 태동한 근원적 자리이다. 우리는 이제 어린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좀더 깊이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원래 ()라는 의미는 '바른 위치에 있다'라는 의미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정해주신 그 위치에 있는 것이 ()다. 흙이 보석이 되려면 용광로 안에 들어가 태워져 처음에 돌이 된 다음  더 강한 불에 태워져 보석이 되듯이  흙 사람이 불 하나님과 연합될 수 있는 유일한 위치는 용광로 - 십자가이다. 그래서 십자가가 하나님이 정해주신 바른위치로 하나님의 ()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위치를 이탈한 우리를 원위치시킨 지점, 곧 구속한 지점은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한 지점도 아니고 죽은 자를 살린 지점도 아니고 오직 십자가이다.  십자가가 우리 인생의 근원적 자리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진리란 하나님이 정해주신 흙이라는 사람의 위치를 지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참사람이신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진실 - 인격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씨를 뿌릴 수 있다. 진리라는 말은 객관적인 용어다. 그러나 이 진리가 사람 안에 들어오면 주관적 용어인 '진실'로 바뀐다. 그래서 그분은 객관적으로는 진리이시고 주관적으로 진실하신 분이다. 우리는 이 진실하신 분을 참 사람으로 인정할 때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사 우리가 진실하신 분을 알게 하셨음을 우리가 알며 또 우리가 진실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아노니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니라.’(요일 5:20)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곧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되 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