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영(靈)의 관계
말씀과 영(靈)의 관계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말씀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예수님 믿으면 되지, 뭐 그렇게 단어 ‘자구(字句)’하나 하나까지 따지고 그러느냐?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 시중에서 어떤 교회를 보면, 그들은 말씀보다는 체험과 간증, 입신, 병고침, 눈에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을 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너희들은 너무 말씀, 말씀만을 말한다라고 소위 ‘말씀 숭배자’라고 합니다. 또 어떤 때는 말씀이 중요한 것은 아는데 이것을 다른 사람들 한테 갑자기 설명하려면 다소 난감할 때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말씀과 영과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왜 중요합니까? 사람은 몸 혼, 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영에 있습니다.
'이는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기 때문이라.'(약2:26).
생명의 본질은 육이 아니라 영입니다. 하나님은 영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인 ‘성령’을 가져야만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요 3:6)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왕국은 동물의 생명만이 들어갈수 있고 식물의 왕국는 식물의 생명만이 들어갈 수 있듯이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만이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영(성령)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요 6:63)
바로 말씀으로 통해 거듭나고,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성령)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1. 말씀이란
- 말씀이란 하나님이시다.
‘처음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는 하늘에 증거하시는 세 분이 계시기 때문이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한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말씀이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를 좀더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의미는 하나님은 공기와 같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듯이 만물의 근원은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자동차를 만들고자 한다면 자동차를 만들고자 하는 말씀이 먼저 있어야 하듯이 모든 만물의 근원은 말씀입니다.
또한 영이신 하나님은 생명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신 하나님의 표현, 곧 생명의 표현입니다. 좀더 쉽게 표현하면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느낄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우리가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신기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수단을 통해 오시는 것입니다.
돌부처가 생명이 없다는 것은 그 안에 영이 없어서 말을 할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우리 사람도 우리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지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이 없는 몸은 죽은 거와 같이 영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살아 있는 것이고, 이 영을 통해 나는 생각을 합니다. 곧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말도 내 생명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무슨 일을 하던지 말씀이 먼저있고 형상이 나중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손으로 잡으려 한다면 잡고자하는 말씀(영)이 먼저고 그 다음 행동으로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근원은 말씀, 곧 영이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일하시고 말씀을 통해 우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과 말씀은 동일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요 6:63)
물론 구약시대에는 불기둥과 구름기둥, 또는 대언자들을 통해서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셨지만 이것은 완전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곧 말씀과 육신이 동일체이신 분이 오셨는데 이분이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히 1:-2)
정리해보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신다면 우리는 그분을 알수가 없기에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자신을 표현하시고 계시합니다. 영이란 하나님의 인격이고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의 표현이자 생명의 표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과 말씀은 동일체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언자들을 통해서 자신의 말씀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체부가 단순히 편지를 전달해주는 격으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는데 이것을 히브리서 1장 2절에서는 이 마지막 날들에는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우리가 제대로 들을 수도 없었고 볼 수도 없었고 만질수도 없었는데 말씀이 육신되신 분이 이 땅에 옴으로서 우리가 이제는 들었고, 보았으며, 만졌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우리가 그것을 보았고 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며 너희에게 보이노라'.(요일 1:1-2)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현재 기록된 말씀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분이 육신으로 이 땅에 계시더라도 그분의 육체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이요 생명인 말씀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육체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도 그분의 육체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 성경의 모든 진리는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요1:1)란 토대 위에 서 있습니다.
마귀가 결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진리가 바로 “말씀은 하나님이시다”란 진리입니다. 따라서 마귀의 첫 번째 공격목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여러 가지 속성 중 유일하게 역이 성립되는 한 가지 명제는 “하나님은 말씀이시며, 말씀은 하나님이시다”란 것입니다.
- 말씀은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씀이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 눈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말씀이 시간 안에서 제약받는 육체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란 이 기초 위에 서 있지 않는 신앙은 한낱 철학이나 종교일 뿐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며, 말씀을 본 것입니다.
'처음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요한은 말씀을 들었고(have heard), 보았고(have seen), 살펴보았고(have looked upon), 만지기까지(have handled)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인가?
‘말씀(Word)’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기록해 놓으셨고 그 기록된 말씀이 전파되고 또 읽혀지는 것을 우리는 ‘말씀들(words)’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곧 ‘성경’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기록(scripture)인 것입니다.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처럼, 말씀은 성경과 동일시됩니다..
굳이 대문자 말씀(Word)과 소문자 말씀(word)을 구별하자면 대문자 Word는 주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소문자 word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말씀이요, 그것을 기록해 놓은 성경을 나타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글자이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계1:8,11, 21:6,22:13)
2. 영이란 무엇인가?
-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 자신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요 4:24)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며 그분 자신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영, 사탄의 영, 사람의 영, 짐승의 영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하나님의 영만이 창조될 수 없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탄의 영, 사람의 영, 짐승의 영은 창조된 것입니다.
- 영(靈)은 바람과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주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참으로 풀이로다.’(사40:7).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바람에게 대언하라. 바람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숨아, 사방의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죽임 당한 자들 위에 숨을 불어 그들로 하여금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37:9).
-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욥33:4).
하나님의 영과 전능자의 호흡을 동격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 하나님의 호흡은 단지 호흡이 아니라 성령님을 말합니다.
‘주의 말씀(예수그리스도)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가 그분의 입의 호흡(성령님)으로 만들어졌도다.’(시33:6).
주의 말씀과 그분의 입술의 호흡이 동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입의 호흡이 성령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2)
주님은 그들 위에 숨을 내쉬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그들 위에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하신 것은 '자신의 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지금 제자들 위에 내 쉬는 숨(호흡)이 곧 성령이었습니다.
- 창조 때부터 살리는 것은 영이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魂)이 되니라.’(창2:7).
생명의 숨이란 곧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때에 사람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호흡을 통해 ‘생명과 호흡’을 주셨습니다.
호흡을 받은 것이 출생이요, 호흡(숨)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 육체의 죽음입니다.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기 때문이라.’(행17:25).
주님은 호흡, 즉 영을 주셨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숨입니다. 우리가 호흡을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호흡을 주관하는 신체 기관으로 폐를 지목하지만 호흡이 필요한 이유는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이는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약2:26a)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몸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다 알지만 영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죽습니다. 영은 우리에게 영을 주신 주님께 돌아갑니다. 영은 하나님이 회수해 가십니다.
‘모두가 한 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나와 모두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거니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는 자가 누구이랴?’(전3:20~21).
‘그때에 흙(몸)은 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며 영(靈)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로다.’(전12:7). 우리가 숨을 거둔다고 할 때 영이 주님께로 떠나는 것입니다.
영적 생명(거듭남) 역시 성령을 통해 살려주십니다. 호흡으로 예표 되는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영적 생명이 출생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역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후 부활하신 것은 그분 안에 있는 영원하신 성령때문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히9:14)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제한받는 사람의 몸을 입고 드리셨지만, 영은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드리셨는데 영은 시간을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창세때부터 죽임당하신 것입니다.
3.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호흡이 성령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다"(요6:63)라고 했을 까요.
- 말과 호흡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호흡이 없이는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성경은 주님의 입술과 호흡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하여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일 것이며’(사11:4).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호흡)으로 그를 소멸시키시고’(살후2:8)
* 입의 영 =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칼(계19:16)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6:17)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호흡(성령)은 항상 결합되어 있습니다.
- 사람이 말을 하면 입술의 호흡이 공기를 타고 흘러 상대방의 귀에 전달되어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말(말씀)과 호흡(성령)은 결합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말씀)과 성령(호흡) 역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씀, 입에서 나오는 호흡은 매 한 가지입니다.
- 즉, 말씀(예수그리스도)이신 주님은 모든 사역을 항상 성령님과 동행합니다.
‘주의 말씀(예수그리스도)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가 그분의 입의 호흡(성령님)으로 만들어졌도다.’(시33:6).
창조 사역이 구체적으로 주의 말씀과 그분의 입의 호흡이 창조 사역의 주체이십니다. (창1:1-2) 지금도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은 동시에 역사합니다. 말씀이 없는 곳에 성령도 없습니다.
성령은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을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숨결(호흡, 성령)과 함께 나온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숨이 막히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받은 자 또한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로 인해 말씀이 숨이 막혀 열매 맺지 못하는 자라.’(마13:22).
‘가시나무 사이에 떨어진 자들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듣고 나아가다가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혀 완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라.’(눅8:14).
※ 성경은 말씀과 성령(하나님의 호흡)을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호흡(영감)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말은 곧 영이요, 생명이다”(요6:63)라고 하셨는데 이는 말씀에 하나님의 호흡(숨)이 담긴 말씀이란 뜻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호흡(숨)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이란 하나님의 호흡이란 말입니다.
인간세상에서도 직장에서 상사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즉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군대내에서 지휘관의 지시(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두지시는 듣는 사람에 따라 시간이 지나고 전파 되면서 혼란을 가져 올 수 있고, 강도가 약해집니다. 그러나 기록된 문서로 된 지시는 계속해서 서로간에 혼란없이 살아서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지휘관이 바뀌면 앞에 있던 지휘관의 지시는 효력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호흡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 세상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살아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즉 기록된 그 말씀에는 하나님의 호흡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에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 넣으면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말씀을 받아 들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육이 아닙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 육은 아무 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와 종교심은 인간의 육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해 주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것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영이요 생명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그는 살아나며, 새 생명의 소유자가 됩니다. 말씀은 생명을 가져다 주는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처음에 창조하셨듯이 지금도 말씀으로 창조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1:18).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진리의 말씀,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말씀으로 태어난 것이 새 생명이요, 중생(重生)이요, 거듭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된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따라서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하신 성령의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히 1:3)
4. 이제 영이 거듭난 성도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 말씀만이 영의 생명의 양식입니다.
사람의 몸은 흙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흙에서 난 것을 양식으로 삼습니다. 그것이 밥이든 빵이든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몸은 흙에서 난 것을 먹고 삽니다. 반면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 넣으신 것이기에 땅에서 난 것으로 양식을 삼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은 말씀의 씨앗을 통해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적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의 양식인 말씀을 편식해서는 안되며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 젖(벧전 2:2), 꿀(시119:103), 사과(잠7:2), 빵(눅4:4), 물(사55:10-11, 엡5:26), 고기(히5:12-14),
5. 주님은 그분의 영감이 깃들어 있는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시는가?
- 성경은 하나님 그분 자체는 아니지만 하나님과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the scripture)이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운 목적이 바로 이것이니 곧 네 안에서 내 권능을 보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알리려 함이니라, 하셨음이니’(롬9:17)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하나님을 대변했을 때 성경은 없었습니다. 모세는 그 사건 이후에야 출애굽기를 기록했습니다. 분명 거기서 말한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 대신에 성경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성경은 곧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하여 이교도들을 의롭게 하려 하심을 성경(the scripture)이 미리 보고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선포하여 이르되, 네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갈3:8)
미래의 일을 미리보고, 미리 알고, 미리 선포 한 분은 ‘성경(the scripture)’이십니다. 성경의 속성은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음을 증명해 줍니다.쉽게 말하자면 성경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창12:3에서 말씀하신 분은 주 하나님이셨고, 신약 성경에서는 그 분을 성경이라 부르십니다.
* 참고구절 : 롬4;3, 10:11, 11;2, 갈3:22, 4:30
-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림(행13:48)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고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행13:48)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는 것임에도 동일하게 말씀에도 돌린다고 표현합니다.
- 주님은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보다 높였음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보다 위로 크게 하셨나이다’(시138:2)
주님의 이름들은 그분의 어떠하심을 표현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고, 정의이고 표현입니다. 바로 말씀은 그분 자신입니다. 어떤 이름도 그분을 완벽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공격하는 것은 그분 자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책과 .....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몫을 빼시리라.’(계22:19)
심지어는 "생명의 책" 밖으로 제거되는, 실로 가장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내 마음은 주의 말씀의 두려움 가운데 서 있나이다’(시119:161)
6.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 뭔가 볼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
주님은 하늘로 올라 가셨음(행1:9)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행1:9)
- 베드로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마17장 변화산 사건)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로부터 나온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들은 것이니라.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벧전1:16-19)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나 믿으며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나니’(벧전 1:8)
- 바울
사도 바울은 환상 가운데 주님을 뵈었지만 그의 증언은 이렇습니다.
‘오직 그분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그분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께 존귀와 영존하는 권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전6:16).
그분을 이제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구원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줄기에 속한 자손과 너희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아, 주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너희에게 보내셨거늘’(행13:26).
마지막 날들에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록된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꿈, 환상, 계시, 천사, 우림과 둠밈 등)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히1:1-2)
- 진리를 찾지 않고 은혜만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은혜와 진리는 결코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진리를 배격한 채 은혜를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은혜를 구한다고 기도합니다. 은혜를 받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진리없는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종교적 카타르시스이거나 영적 망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을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다. 진리와 동떨어진 마음의 감동은 은혜가 아니라 마귀에게 속은 것이며, 자신에게 속은 것입니다. 은혜는 진리 안에서만 효용 가치가 있으며, 열매를 맺습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온 세상에서처럼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도다.’(골1:6).
※ 핵심은 진리, 즉 영 = 말씀이 우선임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에게도 어떤 능력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잘해야 한다. 저주의 말을 하지 말고 하나님처럼 말해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 같이 하고 ’(벧전4:11)
‘그들에게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진실로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 만나의 비유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안에 만나 일 오멜을 가득히 담아 그것을 주 앞에 두어 너희의 세대들을 위하여 간수하라, 하매’(출16:33)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성막은 지성소라 불리느니라. 거기에는 금향로와 돌아가며 금으로 입힌 언약궤가 있었고 이 궤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었으며’ (히9:3-4)
말씀을 먹으면 우리는 무게가 나간다. 그러나, 내 안에 말씀이 없으면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인생이 얼마나 가벼울까?
‘참으로 지위가 낮은 자들은 헛되며 지위가 높은 자들은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그들을 다 더해도 허무보다 가볍도다.’(시62:9).
약간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는 겨와 같은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지위나 학력이나 가문이나 돈이 나의 무게를 더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벨사살은 제국의 왕이었지만 무게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왕국이 나뉘어져 메대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함이니이다, 하니’(단5:27~28).
무게를 달아 보면 부족하다. 무게가 나가지 않는 자는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할 때 모두 날아가 버립니다.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여도 주는 영(靈)들을 달아 보시느니라./All the ways of a man are clean in his own eyes; but the LORD weigheth the spirits.’ (잠16:2).
주님은 사람의 영을 달아 보시며, 행동을 달아 보십니다.
‘다시는 그와 같이 심히 교만하게 말하지 말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이는 주께서 지식의 하나님이신즉 사람의 행동을 달아 보시기 때문이로다.’(삼상2:3).
주님은 우리를 달아 보시는데 우리의 무게가 허무보다 가볍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귀가 와서 밀 까불듯이 까불 때 날라가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