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8절과 같이 우리가 구원받았다 하더라고 육신에는 죄가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항상 말씀은 어떤 특정 말씀만 찍어서 문자대로 해석하면 안된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이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는 사람이 몸은 없고 영과 혼만 있는 사람이 목표가 아니다. 성경도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이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구성체 중 사람의 주체는 혼이다.(창2:7) 왜냐하면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결심하는 지정의(知情意) 기능이 혼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혼을 감싸는 것은 단지 몸(body)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지칭할 때 혼이라고 한다.
이집트에서 요셉에게 태어난 아들들은 두 혼이었으며 야곱의 집의 모든 혼 곧 이집트에 이른 혼은 일흔 혼이었더라.(창46:27)
사람의 작동순서는 혼의 명령을 받아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죄를 짓는다면 혼이 우선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어떤 혼이 알지 못하여 죄를 지으면 그는 일 년 된 암염소를 죄 헌물로 드릴 것이요(민15:27)
결국 사람은 혼과 몸이 하나다. 혼은 죄를 안 짓고 몸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혼이 용서받아야 하는 것이고 혼이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니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 뿌려 너희 혼을 위해 속죄하게 하였나니 피가 혼을 위해 속죄하느니라.(레17:11)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벧1:9)
성경을 살펴보면 우리가 장차 혼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 않고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육신 또한 장차 죽을 것이라 말하지 않고 이미 죽었다고 말하든지 현재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해 죽었으나(the body is dead) 성령은 의로 인해 생명이 되시느니라.(롬8:10)
그러므로 우리가 혼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육신은 구원을 안받고 혼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구성체는 영, 혼, 몸으로 이루어졌고 그 주체는 혼이듯이 사람이 혼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영과 혼과 몸이 전 인격적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일부 구절을 제외하고는 영, 혼, 몸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구원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혼은 구원을 받고 몸은 죄 때문에 죽는다고 하면 이것은 심각한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대속은 전 인격적인 대속이지 영과 혼만 대속하고 몸은 대속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대속을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요한일서 1장 8절에서는 우리에게 죄가 있다고 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을 볼 때 항상 두 가지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 용서를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는 구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에서 나를 쳐다보면 비록 예수님의 피로 대속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죄의 속성이 남아있고 그 옛 본성으로 인해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내가 죽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경험했듯이 구원은 받았지만 죄를 짓는다면 그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 지게 마련이다. 즉 하나님과의 교통이 안된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단지 사람을 구원해 놓고 그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분의 아들로서 친밀한 교통을 원하신다. 요한이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죄가 있다고 하는 것은 몸이 죄 때문에 죽는다고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서 남아 있는 옛 본성으로 인해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 질 때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빛 가운데서의 하나님과의 교제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요한일서 1장 7절에서 9절을 말씀을 살펴보자.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1:7~9)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에서는 빛 가운데서의 하나님과의 교제를 말하다가 갑자기 요한일서 1장 8절에서는 죄 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이것은 비록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더라도 죄들을 자백하면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다 실족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대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인해 용서되었기 때문이라.(요일2:12) 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는 죄가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어떻게 죄가 있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항상 우리 개인을 보지 않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한 몸을 보신다. 그리스도와 우리는 한 몸이다. 남편과 아내는 한 몸으로 남편의 수준이 아내의 수준이고 남편의 위치가 아내의 위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죄가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는 죄가 있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죄가 없다. 바로 아래 말씀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는 관점이다.
그분께서는 야곱의 불법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 안에서 잘못을 보지 아니하셨도다. (민23:21a)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5:27)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육신이 혼만 구원을 받고 육신은 죄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면 실제 죄의 주체인 혼은 빠지고 그 하수인인 몸만 심판받는 격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 인격적으로 대속을 받았고 전 인격적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 육신은 영생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 육신의 죽음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아담은 이것을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판으로 예수님은 강제적으로 희생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