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道)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그렇다면 성경이 제시하는 도(道)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처음 도(道)에 대해서 창세기 3장 24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 도(道)는 생명나무의 길, 곧 예수의 길, 둘째 사람(고전15:47)이 가야할 길(道)이다. 인생은 원래 생명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아들로 완성되어야 했다. 그런데 생명과 대신 선악과를 먹고 이 길(道)에서 이탈하였다. 생명나무의 길로 가야하는데 반대방향인 선악의 지식나무의 길로 가버린 것이다. 이 궤도에서 이탈한 것을 성경은 죄라고 한다. 그래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길(道)에서 벗어나 각각 자기 길(道)로 갔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롬3:10-12)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아담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 신들(천사들)과 같이 될 것이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창3:5)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했지 사람이 신들이 되라고 창조하지 않았다. 사람의 신분을 이탈한 것, 이것이 죄다. 피조물인 사람은 본래 생명나무의 길로 가야할 운명이었는데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사람이 신들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은 것이 죄다. 개는 개가 되어야 하고 소는 소가 되어야 한다. 개가 소같이 되려고 한 것 이것이 죄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신분을 이탈한 것이 죄다. 개가 소같이 되려고 한다고 절대로 소가 될 수 없다. 사람이 신이 되려고 아무리 해보았자 신이 될 수 없다. 선악과를 먹은 세상의 최종목표는 전부 신들, 곧 왕이 되는 것이다. 과거 왕들은 신적 존재였다. 지금도 세상과 종교 안에서의 최종 목표는 신이 되는 것이다. 종교 안에는 있는 교주들을 보라. 교황을 비롯한 이단 사이비는 그 안에서 다 신적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이 신(천사)는 아버지와 아들(사람)의 종이다. 그러니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스러우시겠는가? 아들이 종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생명나무의 세계는 아들의 세계고 선악과의 세계는 종의 세계다. 종교와 세상에 있는 소위 도사(道士)들을 보라.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해탈하여 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아담도 이 열매가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므로 따서 먹은 것이다.(창3:6)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종 영화와 소설을 보라. 대부분 인간성을 초월하기 위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특별한 존재가 되는가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이런 사람들을 세상과 종교안에서는 경탄의 눈으로 쳐다 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죄라고 한다. 하나님이 원래 정해주신 사람의 길을 이탈하여 신들의 길로 가려한 것이 죄다. 생명나무의 세계는 인격의 세계다. 그러나 선악과의 세계, 여기는 신들의 세계, 곧 능력의 세계다. 그러므로 당연히 사탄이 오는 것은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로 온다. 그 사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살후2:9-10)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이 땅에는 모든 사람이 궤도를 이탈하여 정상적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명나무의 길에서 이탈한 사람, 신들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재창조하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생명나무이시자 정상적인 사람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가 알고 또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요14:4) 그러자 도마가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어찌 그 길을 알겠나이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14:6) 우리는 일반적으로 길을 어떤 방법, 지도(地圖)와 같은 것을 생각한다. 장소적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곧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라는 인격이 우리가 걸어야할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살지 말고 예수를 살아내라는 것이다. 그 인격 만을 하나님은 인생의 정해진 운명으로 여기고 받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다. 우리는 통상 예수님 믿는 것을 천당가기 위해 믿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천당에 보내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천당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이다. 본질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이 인격이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정해주신 운명인데 아담이 인격을 버리고 이탈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정해주신 본래의 인격을 회복할 수 있는가? 궤도(軌道)를 이탈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길, 생명나무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가? 하나님은 궤도를 이탈한 인생이 정상적인 길로 들어서려면 반드시 불타는 칼을 통과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남자를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불타는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道)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불타는 칼, 이것은 구약의 번제단이고 신약의 십자가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과한 자만이 생명나무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계룡산 토굴에서 소위 엄숙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도 닦는 사람이 도사가 아니고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산 사람이 생명나무의 길에 들어 선 사람이고 참 도사(道士)이고 구도자(求道者)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롬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