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연합(cleave 창2:24)

올더스조에 2012. 3. 17. 12:50

연합(cleave 창2:24)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창2:24)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이 종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구속이다. 종교는 다 아담안에 있는 사람을 개선시켜 사람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와 세상은 다 한 뿌리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안에 있는 사람을 개선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옛것을 끝내고 새롭게 창조하여 하나님께서 처음 목표로 했던 그 사람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창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새로운 창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후 5:17)

두 번째로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가 종교(세상)과 틀린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씀에 대해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진리 가운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종교는 모두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처럼 되려면 석가의 가르침데로 수행을 통해서 부처가 되라고 한다. 그러나 모두가 석가의 경지에 이를 수 없고 극히 제한적인 성인(?)급만 그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종교 안에는 모든 사람의 서열이 정해진다. 극히 제한적인 몇사람만 그 경지에 이를 뿐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를 포함(연합)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연합이라는 말은 결혼이란 말로 대치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창조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방법이 연합이다. 군대식으로 말하면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전개념, 곧 원리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합, 곧 결혼의 원리를 사용하신다. 사실 성경은 결혼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결혼 이야기다. 계시록에 가면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나오고 계시록 22장 17절에 가면 성령과 신부가 한 몸이 되어 말씀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계22:17)

이 땅에서 남자와 여자의 결혼은 한 몸의 모형일 뿐, 완전한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계시록 22장 17절에서 성령과 신부는 완전한 하나가 된다. 성령과 신부가 한 몸으로서 말씀하고 있다. 이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달성이 된다.

주님과 연합이 없이는 구속도 없고 구원도 없다. 연합을 통해서만 거듭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롬6:5)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방법은 연합이었다. 아담이 생명나무를 먹었으면 하나님의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합의 원리는 아담이 죄를 범한 후 죄 사함을 받는 방법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롬6:5)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심겼으면’은 ‘연합되어 함께 죽고’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죽음에서도 연합되어 죽고, 살으심에서도 연합되어 살고’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작전개념인 연합의 원리는 사람이 비록 타락했더라도 변동이 없다. 오직 십자가 상의 예수님과 연합을 통해서만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는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1:14)

결국 ‘그분 안에서’라는 의미는 그분과 연합을 의미한다.

인생은 원래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과 결혼을 해야할 운명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나니 이것은 너희가 다른 분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분과 결혼하게 하려 함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7:4)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계19:7)

연합의 원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주님과 우리를 한 몸으로 동일시 한다. 연합을 통해서만 죄사함이 있고,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다. 연합을 통해서만 새로운 생명이 창출된다.

하나님과 연합이 없는 것은 모두 지식이고 종교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알고 종교적인 방법으로 경배하는 것은 선악의 지식나무의 결과다. ‘선악의 지식나무’에서 선과악(도덕), 지식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님을 지식으로 아무리 많이 알더라도 주님과 연합이 없으면 그분의 생명과는 관계가 없게 된다. 왜 성경에서 안다(know)라는 단어를 부부간의 연합에 사용하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의미는 연합이라는 의미다. ‘주님을 안다’라는 단어는 지식으로 안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되어 ‘생명으로 하나된다’는 의미다. 주님과 동일시되어 ‘닮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킹제임스 성경 진영에 성경을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속에 왜 그리스도의 인격과는 관계없는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난무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안다는 의미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닮는다’는 의미다. 단순히 지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줄줄 다 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버림받았다.

주님과의 연합 없이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연합없이 얼마든지 성경박사도 될 수 있고, 성경신자도 될 수 있다. 우리는 다시한번 선악의 지식나무에서 왜 지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알아야 한다. 개가 소를 아무리 지식으로 많이 안다고 해도 개는 소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것은 한 생명으로 연합되는 것이다. 지식이 아니다. 성경 몇장 몇절을 알고 있는 것이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렇게 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도 종교의 아류다. 종교에서와 같이 능력에 따라 등수를 매길 밖에 없고 모든 인류를 포함(연합)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무의미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포함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곧 연합에는, 결혼, 포함, 동일시, 한 몸, 하나 됨, 앎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대원리다. 그러므로 연합, 곧 결혼은 모든 것 중에 가장 존귀한 것이다.(히13:4), 연합이 없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