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

14. 만일 아담의 죄가 육체적 죽음이 아닌 영혼만의 죽음이라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죽으실 수 없고 또 죽으셔도 안된다

올더스조에 2015. 2. 28. 10:58

14. 만일 아담의 죄가 육체적 죽음이 아닌 영혼만의 죽음이라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죽으실 수 없고 또 죽으셔도 안된다. ????

 

 

이것도 기본적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에 대한 오해와 죄에 대한 오해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이란 사망의 노선 안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지 단순하게 육체적 죽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길이건 사망의 길이건 표면적으로 똑 같은 과정을 겪는다. 어떤 씨든 땅에 뿌려지면 똑 같은 과정을 겪는 것이다.

육체가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이후에 부활이 있는 것이다. 만일 죄로 인해 육체적 죽음이 오는 것이라면 죄인들은 왜 부활하는가? 죄인들의 몸은 부활하지 않고 불호수로 직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517절에 또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였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으며라고 하고 있다. 이 말씀대로라면 죄인들의 몸은 부활하지 말고 여전히 땅속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 자들은 의로운 자의 부활이건 불의한 자의 부활이건 모두 부활한다고 말한다.(24:15) 이 말씀의 의미는 생명의 노선 안에 있는 의로운 자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에 있건 사망의 길에 있건 표면적으로 동일한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도덕적인 죄가 아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피조물의 위치 이탈,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이탈한 것을 말한다. 아담과 예수님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담은 신이 된다고 하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흙-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여 사망 노선으로 간 것이고 예수님은 죽기까지 흙-사람의 위치를 지킴으로 생명의 노선 안에 계신 것이다. -사람은 생명이 아니다. 영생을 얻을 자였지 영생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죽음을 부정적인 것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의 지식의 부요하심을 우리가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히 대속적 죽음에 그친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최악의 부정적 상황을 최상의 긍정적 상황으로 바꾸셨다는데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에는 표면적으로 심판이라는 부정적인 내용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희생물의 의미도 있지만 헌물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대속, 곧 죄가 없으면 영생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무죄는 하나님이 씨를 뿌릴 수 있는 위치지 영생이 아니다. 단순히 법리적으로 죄만 사하면 영생이라고 아는 것은 낮은 수준이다. 영생은 법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유기적인 문제다. 하나님은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처음에 흙-육신으로 오셨고 부활을 통해 씨가 되셨다. 하나님의 왕국의 씨-조상이 되셨다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15:45) 살려주는 영은 씨라는 의미다. -씨가 되려면 육신은 죽고 영적인 몸으로 부활해야 한다. -사람으로는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씨가 되어야만 흙-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흙으로 오신 동시에 씨로 오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라면 사탄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는 것을 방해했겠는가?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 유도한 후에 갑자기 십자가를 회피하도록 유혹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7:40) 하면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인생의 위치를 이탈하도록 유혹했다. 물론 예수님도 그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해달고 기도하셨지만 끝까지 사람의 위치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목적 안에 계셨다. 즉 흙-사람의 위치를 지켰다는 것이다. 만일 거기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훨훨 날아 내려오셨다면 그분은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 그것은 신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먹은 아담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씨-하나님의 창조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씨를 뿌릴 흙-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이전까지 아담 안에서 있던 사람들은 열심히만 하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았다. 마음 깊은 내면에는 늘 죽지 않는 천사를 부러워하면서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다. 아담도 사실 이 열등감 때문에 흙-사람의 위치를 버리고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흙-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면서 만족하시고 안식하셨다. 성경도 사람이 천사보다 조금 낮게 창조되었으나 위치적으로는 천사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다.(1:14)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도 늘 죽지 않는 천사를 부러워 하면서 한 번 죽는 것이 불완전하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창조 목적이 있는 것이고 천사는 천사로서의 창조 목적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늘 천사와 비교한다. 그래서 원래는 죽지 않는 존재인데 죄 때문에 육체적 죽음이 왔다고 말한다. 아담은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위치를 원망하며 그 위치를 이탈했다.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자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고 안식을 방해한 것이다. 이것이 아담에게는 사망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이 버린 인생의 위치를 십자가 앞에서 담담히 받아 드렸다. 거기서 인생의 위치를 원망하지 않고 십자가에 매달면 모든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진실을 담담히 받아드리고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신 것이다.

또 구약의 역사를 보면 의인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심판받지 않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아브라함과 롯이 구원을 받았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용광로에서 구원을 받았다. 구약의 관념으로는 예수님은 최소한 그 상황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게 당연하였다. 제자들도 그런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따라다녔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름없이 죽었다. 그분도 십자가에서는 꼼짝 못하고 죽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매달린 그 사람을 보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인간의 정체성이 폭로된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을 보고 인간의 원형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흙이지 씨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상식으로는 너무도 허무하게 죽었는데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왕좌 오른편에 앉히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과 기대 밖에서 죽었는데 그분을 하나님이 인정하셨다는 것이다. 교리적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살아났다, 하나님이기 때문에 살아났다,’ 이렇게 알면 이것은 나에게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분과 내가 똑 같은데 그분이 살아나야 나도 살 수 있는 것이지 그분과 내가 다르다면 그분을 경배는 할 수 있지만 그분과 내가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분과 우리가 똑 같은데 그분이 살아나야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 그분만이 특별하다면 그분은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은 흙이지 씨가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씨-하나님은 흙-사람을 기다려왔는데 바로 이 사람을 기다려 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부정적인 것이고 이 안에는 인류의 죄에 대한 심판의 의미도 있지만 이 죽음 안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거듭나야하는 생명의 연합이라는 긍정적인 부분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표면적으로는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셨다.(고후5:21) 그러나 이면적으로 그분은 죄인이 아니다.(4:15)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죽으셨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과의 생명의 연합 위한 과정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들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하나님은 소멸시키시는 불이시다.(12:29) 하나님의 불을 만나 타지 않을 피조물은 없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은 용광로와 같은 것이다. 그 안에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용광로 안에는 폐품도 들어가지만 좋은 것도 들어간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용해되는 것은 매 한가지다. 오직 새로운 창조를 위해 불에 의해 녹여지는 것이다. 희생물과 헌물은 한 불에 의해 태워져 재가 되고 하나님이 흠향하는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다.

그것은 태우는 희생물이요, 불로 예비하여 주께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헌물이니라.’(1:17)

-사람은 씨-하나님과 연합하여 살아있는 돌이 되고(벧전2:5) 하나님의 불에 의해 태워져 보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흙이 돌이 되고 돌이 보석이 되는 것이 생명의 연합을 통해 흙-사람이 변화되는 정상적인 생명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