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전쟁

예수님의 승리로 얻은 전리품

올더스조에 2015. 2. 17. 21:08

13. 예수님의 승리로 얻은 전리품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위치전쟁을 통해 마귀로부터 획득한 전리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마귀는 최종적으로 아담이 생각하는 인생 최대의 약점인 죽음이라는 인생의 운명을 가지고 송사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인생의 운명을 가지고 승리했기에 더 이상 마귀의 송사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마귀와 전쟁에서 완전 승리했으므로 마귀를 멸하신 것이다. 사탄은 근본적으로 속이는 자로서 잔머리를 굴려 아담을 속이는데 성공했으나 이제는 예수님이 사람의 위치를 당당히 지킴으로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한 것이다. 사탄의 속임수를 사람의 진실로서 승리하신 것이다. 더 이상 사탄의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 여자의 씨(예수님)가 네(사탄)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3:15)

이것에 대한 예표가 다윗이 돌 한 개로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죽이는 장면이다.

손을 자루에 넣어 거기서 돌을 꺼내어 돌팔매기구로 던져 불레셋 사람(골리앗)의 이마를 치매 그 돌이 그의 이마에 박혀 그가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지니라(삼상 17:49)

돌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상징한다.(2:45, 벧전 2:4) 이것은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의 상징인 골리앗에게 승리한다는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린양이 호랑이를 이겼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어린 다윗이 전사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가? 그런데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자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위치전쟁으로 사탄으로부터 빼앗은 전리품을 살펴보자.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를 멸하기 위함(2:14)

마귀가 인간과 비교했을 때 최대의 강점은 무엇인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최대 약점인 육신의 죽음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사람의 위치를 이탈하여 나한테 경배하면 나와 같이 죽지 않는 신이 된다고 하면서 사람을 속여 둘째 사망으로 인도하는 권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아담은 마귀의 송사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고귀한 인격의 자리를 이탈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가 인간의 최대 약점으로 여기던 첫 번째 사망, 곧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최종적 운명인 육신의 죽음을 가지고 마귀와의 위치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래서 더 이상 마귀의 속임수가 사람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길을 사람이신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것이다. 첫 번째 주자로 예수님이 길을 열어 놓으셨기에 우리도 이제 승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적장인 마귀는 십자가의 위치전쟁에서 예수님에게 패배 당했으므로 멸망을 선고 받은 것이다.

...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려고(might destroy 미래)(2:14)

마귀를 멸한다는 말은 그를 없앤다는 말이 아니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로 죽지 않는다. 마귀는 본질적으로 속이는 자다. 요한일서 38절에서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한다. 마귀의 일들을 멸하므로 우리를 마귀의 속임수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의미다. 마귀의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멸망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다.

또 그들을 속인 마귀가 불과 유황 호수에, 곧 그 짐승과 거짓 대언자가 있는 곳에 던져져서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으리라.(20:10)

그러므로 지금도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여전히 마귀의 자식으로 사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8:44)

피조물의 타락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이탈한 것을 말한다. 사탄은 원래 천사의 수장으로서 하나님과 종의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자기의 위치를 이탈했는데 이것이 이미 사탄에게는 사망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사탄이 타락하자 사형선고를 내렸고 종말에 불 호수에 들어갈 것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25:41)

마귀와 그 졸개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그들을 사람이 이길 때까지 마귀와 그의 졸개들에 대한 형 집행은 연기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사탄의 자식들로 세상이 채워져 있지만 장차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이 채워지면 그들은 설 곳이 없기에 밀리고 밀려서 불 호수에 들어가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을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내심(2:15)

아담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최종적 운명인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여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생은 한번은 죽는 것이 당연하고(9:27) 그 뒤에는 부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서 사람을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건져내셨다. 사실 이것은 아담이 맨 먼저 맛보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이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2:9)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내려 하심이라.(2:15)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시고 정사들과 권능들을 이기심(2:14-15)

원래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종의 관계가 아닌 생명관계이다. 그러나 아담이 아들의 위치를 이탈해서 종의 위치로 갔기 때문에 율법이 주어지고 계약관계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은 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종인 천사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그것은 약속을 받은 씨(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범죄들로 인해 더해진 것이요. 한 중재자의 손에서 천사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3:19)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사람이 종의 위치에서 아들의 위치를 회복했으므로 아들에게는 더 이상 율법이 작용할 수 없고 폐기된 것이다.(2:15, 2:14)

원수되게 하는 것 곧 규례들에 수록된 명령들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2:15a)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던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서 못 박으시며(2:14)

또 아담이 아들의 위치에서 종의 위치로 갔을 때는 사람이 천사도 아니면서 천사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 아들의 위치를 회복하자 몸에 맞지도 않은 천사(정사들과 권능들)의 옷을 벗은 것이다.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2:15)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들의 위치를 회복하기 전까지 마귀의 졸개인 타락한 천사들은 사람을 조롱하고 있었다. 세자가 될 자가 종의 위치로 갔으니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들의 위치를 회복하므로서 우주질서가 회복되었고, 그동안 조롱하던 종(천사)들을 십자가에서 구경거리로 삼으신 것이다.

 

구속 : 사람의 인격과 인권을 회복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의 결정체는 아담이 잃어버린 인격과 인권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인격을 부끄러워하여 타락한 천사인 신격을 선택함으로서 인격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영광, 곧 인권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사람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인격에 만족하시고 아담이 사탄에게 빼앗긴 인격을 회복함으로서 사람의 인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1:14)

속이란 빗나간 사람의 위치(인격)을 원래의 위치로 회복한 것을 말한다.

 

(Sin)의 제거와 죄들(Sins)이 용서됨

요한복음 129절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서 죄란 피조물이 하나님의 목적에서 이탈한 것을 죄라고 한다. 그러므로 위치를 이탈한 자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면 죄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다란 성경의 용어는 구속(redemp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단수)란 근원적인 뿌리이고 죄들(복수)이란 외부적인 것으로 죄의 열매를 말한다. 그러니까 내부적인 죄의 뿌리는 제거되어야 하고, 죄의 결과 외부적인 행위인 죄들은 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Sin)를 제거하셨느니라.(9:26b)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죄들(Sins)의 용서를 받았도다(1:14)

성경에서 피란 생명을 의미하지만 피 흘림이란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죽음을 통해 인격을 회복함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이 바른 관계(위치)에 있으니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의()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라는 의미이다. 세상이 말하는 의인(義人)과 성경이 말하는 의인(義人)은 다른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롭다고 보시는 위치는 십자가이다. 이 위치는 나는 피조물이고, 아들이며 최종적으로 흙이라는 위치()라는 것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사람이 꾸민 거짓이다. 원래의 위치로 회복하다. 구속(救贖, redemption)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빗나간 인생을 원위치로 회복시킨다는 의미고,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생의 원위치를 깨닫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로 회개(悔改, repent)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위치에 있는 자를 하나님은 ()롭다고 보신다. 안타깝게도 이 용어를 정확히 아는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다. 요한복음 1610절에 주님께서 ()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라는 말씀이 있다. 아들로서 당연히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의()라는 것이다. 아들이 마땅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하에 있는 것이 의()라는 것인데 이 위치가 십자가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역사에 세상의 많은 성인군자들은 아버지가 누군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예수님만은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심(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동일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느니라. 하니라(2:36)

물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주와 그리스도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려면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분은 어떤 공적도 없이 낙하산 인사가 되어 주와 그리스도가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종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지만 한편으로 그분은 수많은 인류 중에 한 사람으로서 사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로 밝히 드러나는 것이다.(1:4) 아무런 명분도 없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친다면 누가 알아 주겠는가? 고대 전쟁에서는 왕자들 중에서 전쟁에 나가서 승리한 자가 세자로 책봉되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사탄과의 위치전쟁에서 승리하심으로서 하나님 아들의 명분을 확보하셨고 새로운 인류의 주(조상)와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란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자란 의미이다. 대리자란 뜻이다.

 

예수님께서 구원자가 되시고 사망을 폐하고,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드러냄(딤후 1:10)

십자가에서 사탄과의 위치전쟁에서 승리함으로서 사탄에게 포로로 잡혀있던 인류를 구출하는 구원자가 되셨고(4:8),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4:8a)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둘째 사망 안에 있던 인류를 예수님은 죽기까지 인생의 위치를 지키심으로 하나님이 정해 놓은 생명노선 안에 계셨다. 곧 예수님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시고 인류를 생명(거듭남, 부활생명)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사탄으로 인해 들어온 사망을 폐하신 분이고 부활을 통해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드러내셨다.

이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분명히 드러났으니 그분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딤후 1:10)

또 그분은 새로운 인류의 첫 열매 - 맏아들, 조상이 되셨다.(고전 15:20, 8:29)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께서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하심이니라.(8:29)

우리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인류가 되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너희가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3:9-10)

그러므로 우리 또한 그분과 같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주셨다.(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요일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