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2. 십자가 자체이신 분

올더스조에 2025. 4. 5. 17:00

 

 

1. 들어가는 말

 

우리의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면서 다른 여러 가지 수단이 있을 것 같은데 왜 하필 십자가를 통해서만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생명을 주실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저 하늘에 앉아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금 나와라 뚝딱하는 식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십자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2.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

 

성경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속성을 불, 물, 바람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에너지의 근원은 화력, 수력, 풍력이다. 이중에 대표적인 하나님의 속성이 소멸시키는 불이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시니라.’(히 12:29)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이 마치 그 산의 꼭대기의 삼키는 불을 보는 것 같았더라.’(출 24:17)

주 네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시요 곧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그러므로 이 날 너는 깨달을지니 곧 주 네 하나님은 네 앞에 나가시는 분이시니라. 그분께서 소멸시키는 불같이 그들을 멸하사 네 얼굴 앞에 쓰러지게 하실 터인즉 주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고 속히 멸할 것이니라.’(신 9:3)

 

그러므로 불 하나님은 용광로 하나님이다. 만물은 용광로 안에서 태워져 재가 되어 연합된다. 예를 들어 나무의자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저절로 연합이 되지 않고 용광로 안에 들어가 태워지면 둘 다 재가 되어 연합된다. 만물이 상호 하나 되는 공통지점이 있는데 그곳은 불이다. 즉, 죽음 안에서 연합되는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영 안에서 연합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개념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이 영이시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영 하나님은 불 하나님, 즉 용광로 하나님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창세기 3장의 화염검, 구약의 번제단, 신약의 십자가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불 하나님, 곧 십자가 하나님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가 있기 때문에도 십자가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죄가 없어도 오직 십자가에서만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창세전에 정해진 것이었다.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또한 에베소서 1장 4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부활생명으로 탄생한 교회는 창세전에 선택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엡 1:4)

 

교회가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관계없이 이미 죽도록 예정이 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없이는 탄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유기체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는다면 설령 아담이 죄가 없다하더라도 거듭남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탄생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씨-생명이 되어야만 그 씨를 이식받아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표는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자신의 씨를 이식하여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요 1:12-13) 이를 위해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반드시 죽음을 통과하여 영-씨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육체로 오신 인간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려면 죽음을 통과하여 씨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 15:45)

 

위 말씀에서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라는 의미는 단순히 사람이신 예수에서 인류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 곧 씨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갈 3:16)

 

단순히 예수님이 육체로만 계시면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고 반드시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을 주는 영, 곧 씨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영이지만 하나님의 영은 우리와 연합될 수 있는 영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 더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바로 줄 수가 없다. 서로 어떤 공통점이 있어야 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영-씨가 되어야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 않은가? 날것으로 먹지 않고 요리를 통해 먹을 수 있도록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영은 날 영으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영이 아니고 예수님을 통해 죽음과 부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예수님과 똑 같은 살과 피를 가진 자로 동질성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요 6:54) 하신 것은 우리도 예수님과 똑 같은 사람으로서 같은 운명이기에 예수님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받아 드리라는 의미다. 번제단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예수님의 인격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번제단 위에서 요리되어 사람을 예표하는 드리는 자와 하나님을 예표하는 제사장이 함께 먹었다. 이렇듯 하나님과 사람은 번제단에서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번제단, 곧 십자가에서 요리된 예수 그리스도 만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소멸시키는 불이라는 속성에서 기인된 것이다.

 

 

3. 흙 사람이 생명을 얻으려면 생명이신 하나님과 실제적인 연합이 필요함

 

가. 흙 사람과 불 하나님과의 연합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는 의미도 어찌 보면 추상적인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실제적이고 물리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것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서로 교차하여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도 저절로 얻는 것이 아니고 물리적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이 되어야 한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흙과 불의 관계이다. 흙이 불에 구워지면 세라믹이라는 돌이 되고 돌을 더 강한 불에 구우면 보석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상태를 ‘살아 있는 돌들’(lively stones 벧전 2:5)이라고 하고 영원한 세계인 새예루살렘에 가면 '보석들'(precious stones, 계 21:19)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도시의 성벽 기초들은 온갖 종류의 보석들로 장식되었는데 첫째 기초는 벽옥이요, 둘째는 사파이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에메랄드요,’(계 21:19)

 

위 말씀은 새예루살렘이라는 도시를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건물로 표현하고 있지만 교회가 건물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유기체를 의미하듯이 새예루살렘도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부활한 성도들의 유기체를 '보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보면 금과 은과 보석이 나오는데 금, 은, 보석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속성을 상징한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을 세우면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그것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고전 3 : 12-13)

 

새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왕국이다. 그 생명이 그 왕국이듯이 새예루살렘은 영원한 생명, 곧 금과 은과 보석이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만이 존재가 가능한 곳으로 나무나 건초나 짚은 불에 태워져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장차 성령 하나님에 의해 불에 태워져 ‘보석’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보석은 영원히 성질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새예루살렘은 영원한 세계로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만이 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영원한 생명, 곧 부활생명을 얻어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성도들을 각종 ‘보석들(precious stones)’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 사람은 먹으면 살고 먹지 않으면 죽음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고 먹으면 살고, 먹지 않으면 죽는 존재이다. 그래서 아담이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내구 연한이 있듯이 첫 사람 아담은 유한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1)라고 하신 것은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고 외부로부터 공급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씀으로 사람은 육적 생명을 위해서도 먹어야 하고, 영적인 생명을 위해서도 먹어야 산다는 것을 정의해 주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구약성경에 보면 믿으라는 말은 거의 없고 먹으라는 말이 주를 이룬다. 창세기 2장에서도 하나님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서 먹었듯이 율법의 제사의식에서도 드리는 자와 받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을 함께 먹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사람이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내가 주고자 하는 빵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 내가 주고자 하는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요 6:51)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요 6:54)

 

구약의 제사의식에서 제사장은 하나님을 대리하고 제물을 드리는 백성은 사람을 대표한다. 제사에서 다섯 가지 제물 중 번제헌물, 음식헌물, 죄헌물, 범법헌물은 사람의 입장에서 모두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다. 모두 하나님을 예표하는 제사장이 일방적으로 받든지, 먹는다. 그런데 화평헌물(화목제)만 제사장과 제물을 드린 자가 함께 먹는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그리스도를 먹는 것’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생명이 연합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먹어야 하지만 우리도 생명이신 하나님께 먹혀야 한다. 이것을 성경은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진다(고전 15:54) 또는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진다‘(고후 5:4)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고전 15: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번제단, 곧 십자가는 음식을 먹기 좋게 요리하는 주방의  도마와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지성소에서 나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번제단으로 나왔고,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먹히기 위해  번제단으로 올라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근원적으로 하나님 앞에 음식헌물(the meat offering, 레 2:1-16)로서 죽음을 맛보야할 운명으로 창조된 것이다. 이러한 운명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다만 예수님을 보노라. 그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상호 먹고 먹힘으로 연합되는 것이다.

 

 

4.  결  언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 중 대표적인 것이 불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용광로 하나님이다. 만물은 용광로 안에 들어가 불에 타 재가 되어 연합되고 재창조된다. 불이라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십자가가 나온 것이다. 여기서 화염검, 번제단, 십자가로 개념이 발전 된 것이다. 용광로 안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철도 녹여져 재창조 되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는 어떠한 인생도 재창조되어 새로운 창조물이 된다.(고후 5:17) 하나님의 속성이 불이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자체라는 의미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이며, 우주의 중심이자 생명의 태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고전 1: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