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는 두 가지 관점
성경 기록의 두 가지 관점
성경은 어떤 한 사건에 대해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에 기록된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구원에 대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도다.’(벧후 1:3) 라고 기록하고 있고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벧후 1:4)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우리게 주시는 것’이고,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현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대속(법리적인 죄사함)과 구속(유기적인 죄사함), 그리고 부활을 통해 구원(거듭남)을 받았다라고 이미 이루어진 과거로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구속과 구원은 장차 우리가 죽음을 통과하여 영적인 몸으로 부활되어야 완성이 됩니다.
* 십자가의 의미는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속과 구속이고, 사실 구원(거듭남)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낳으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셨으며'(벧전 1:3)
‘그 일과 동일한 모형 곧 침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또한 우리를 구원하나니 (이것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응답하는 것이니라.)’(벧전 3:21)
이렇듯 성경은 시간의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속을 받았고(골 1:14), 또 구원을 받았고(엡 2:8), 하늘에 앉힌바 되었고(엡2:6), 장차 다가올 진노(대환란)으로부터 건짐을 받았다(살전 1:10)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제한 속에 있는 우리에게 위와 같은 일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물(죽음)로 드려진 후 미래에 일어날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미 ‘구속을 받았다’라고 과거로 말하였지만 로마서 8장 23-24절은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사람이 보는 것을 여전히 바라리요?’(롬 8:23-24) 라고 하면서 사람의 관점에서 우리 몸의 구속이 미래 일어날 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는 이미 구속을 받았지만, 시간의 제한 속에 있는 우리 입장에서 구속은 미래에 일어 날 일인 것입니다.
아래 성경 말씀을 보면 우리가 어둠의 권능에서 건짐을 받았고 아들의 왕국으로 이미 옮기어졌고 죄들의 용서를 이미 받았다라고 모두 과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 그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 1:13-14)
그러나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비록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죄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요한일서 1장 8절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
하나님이 보실때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에 나를 보면 여전히 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상 우리의 관점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행위적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사함과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고 하나님과의 연합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여자로서 여자가 아무리 빚이 많다 하더라도 무한대의 재산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하면 남편의 재산이 내 재산이 되기 때문에 빚 문제가 해결되는 거와 같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법을 보지아니하고 잘못을 보지 않는다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야곱 안에서 불법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 안에서 잘못을 보지 아니하셨도다.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의 외치는 소리가 그들 가운데 있도다.'(만 23:21)
우리가 볼 때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너무도 많은 흠결이 있는 민족이 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흠결이 없다고 하십니다. 신약시대와서도 우리가 볼때 교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향해 점이나 주름이나 흠이 없고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6-27)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보실때 교회는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에 점과 흠이 있을 수 없고 거룩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하나의 사물을 볼때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과 사람이 보는 관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볼 때 우리 개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나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제한이라는 역사 안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홍해의 침례는 법리적 죄용서를 위한 대속이고, 요르단 강의 침례는 유기적 죄용서를 위한 구속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구원이지만 시간의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것을 믿는 우리에게 십자가 안에서 대속과 구속, 구원을 모두 받았다고 하듯이 홍해의 침례 안에 대속과 구속, 구원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의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구속은 요르단 강의 침례를 통과하는 것이고 가나안 땅(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거듭남)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은 성도의 신앙생활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