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한복음 1장 1절)

올더스조에 2021. 8. 15. 21:32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KJV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Jn 1:1)

 

그리스도인들이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이해한다면 성경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도움이 된다. 

 

1. 영이신 하나님

 

오늘은 요한복음 11절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요한복음 11절에 의하면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말씀이 하나님이 라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4:24)

 

성경이 말하는 영은 4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 그리고 사람의 영, 짐승의 영, 사탄의 영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은 창조될 수 없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이라고 한다. 사람의 영, 짐승의 영, 사탄의 영은 피조물의 영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만을 성경은 생명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 자신이기에 창조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자녀)가 된다고 할 때 성경은 전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다.(1:12, 벧전 1:23)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할 때 우리 안에 있던 생명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고 제3, 곧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아담이 창조될 때 영원한 생명이 있었는데 죄를 범함으로 영생을 잃어 버렸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기에 창조될 수 없는 것이고, 영생을 얻은 다음에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담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창조되지 않았다. 영원한 생명은 창조될 수 없는 것인데 아담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창조되었다는 말 자체가 맞지 않는 것이다. 만일 아담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이 두 분 계신다는 논리임으로 말도 안되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과의 관계적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도 아담이 범죄한 다음에도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은 자가 아니라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할 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보라, 남자가 우리 중의 하나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었도다. 이제 그가 자기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염려하노라,’(3:22)

 

또한 하나님이 영이라는 말은 공기와 같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 인간과 같은 어떤 형상을 떠올리면 안되는 것이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1:1) 라는 말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보이는 형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은 영이신데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영, 곧 성령이고,  말씀이고 생명이고, 씨라는 것이다. 

 

 

2. 영, 곧 말씀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은 '말씀'을 통해 일하신다. 앞서도 말했듯이 '영'이라는 것은 공기와 같이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형상을 가진 우리로서는 영을 인식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하려면 '말씀'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인식하는 것이다.  곧 말씀은 영의 표현인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곧 영이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고 하신 것이다.(요 6:63) 즉 영과 말씀은 동일체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떤 백성이 너처럼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산 적이 있었느냐?(4:33)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1:1-2)

 

하나님은 영이시고 이 영이 생명이다. 그런데 영이신 하나님께서 아무 말없이 가만히 계신다면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의 표현이자 생명의 표현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1:1)

 

이와같이 하나님은 영이시고, 생명이시고 말씀이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나의 영, 곧 내 생명은 보이지 않지만 내 말은 내 생명의 표현이자 곧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근원은 말씀인 것이다. 영이자 생명인 말씀이 먼저고 그 다음에 그 말씀이 형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행동을 옮기고자 한다면 말씀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형상은 다 이런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자동차가 있다면 자동차를 만들고자 하는 말씀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자동차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 이라고 하였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의 근원을 '말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서와 같이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물을 만들고자 하는 말씀이 먼저 있어야 물이 있고, 공기를 만들고자 하는 말씀이 먼저 있어야 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영이시고, 이 영이 생명이고 말씀이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6:63)

 

또한 말씀이 영이고 생명이라는 것은 라는 의미다. 그래서 하나님 = = 생명 = 말씀 = 씨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씨에 의해 거듭나는 것이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 1:23)

 

우리 인간의 말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다. 세상에서도 조선일보를 읽는 자와 한겨레 신문을 읽는 자가 생각이 다르듯이 사람이 어떤 말씀을 먹느냐? 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형성된다. 사람의 말도 이러할 진대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하겠는가?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권능이 있기에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여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4:12)

 

흔히들 '성령충만'이란 의미를 무슨 신기한 기운이 내안에 충만하던지 어떤 감정이 나를 충만하게 한다는지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거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성령충만이라는 의미는 '말씀충만'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연구해야 한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

 

 

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자신을 알기 원하신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지나간 구약시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는 불기둥과 구름기둥 같은 자연계시를 통해서, 그리고 구약시대 전반에 걸쳐 대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셨다.(1:1) 그러나 이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들을 대면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것이 못되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언자들을 통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우체부가 대신해서 연애편지를 전달해 주는 거와 같은 것으로 직접적인 사랑의 표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제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1:2)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1:1-2)

 

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의미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는 말씀과 육신이 동일체인데 이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이다. 말씀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말씀이 육신되었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딤전 3:16)

 

 

4. 하나님의 최종대책 : 아들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1:1-2)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인간을 위한 더 이상의 대책은 없는 것이다. 마지막 날들에 아들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대책은 하나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대책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외에 다른 대안을 찾으면 안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었고 만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살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요일 1:1)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최종대책인 것이다. 더 이상의 대책은 없는 것이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육신으로 계신 예수님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보았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이요 생명인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때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 사람은 육체라는 형상을 가지고 있기에 늘 괴리가 발생한다.. 즉, 하나님이 영이라는 말은 공기와 같은 분이기에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는데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인간적 관점을 가지고 먼저 어떤 형상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지금도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생각할때 이러한 개념을 모른채 막연하게 사람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은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님을 보고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이다.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14:8)

 

그러자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14:9)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런데 말씀이 하나님이고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살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이다.(요일 1:1)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글자(말씀)의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계 22:13)

 

말씀이 하나님이시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인 것이다. 육체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셨고 그분은 현재 영이요 생명인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