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
오늘은 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 라는 문제를 성경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창조목적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표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창조물이 되도록 창조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 자체이기에 영원한 생명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죽지 않는 천사를 비롯한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될 수 있으나 영원한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은 창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이 창조된다면 하나님이 여럿이 되기 때문에 한 분 하나님이라는 말이 안 맞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는 생명이신 하나님께 연결된다는 의미지 하나님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의 개념은 우리의 육체의 삶과 죽음이 아니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생명이고, 관계가 끊어져 있으면 사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활에서도 전선에 전류가 흐르면 살아 있다라고 하고, 전선이 끊어져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죽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과 사람의 중간 연결자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연결되어야 하며, 이것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죄를 제거받기 위해서도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필요하지만 근원적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이 영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담은 창조될 시에 죄는 없었지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였다는 것이다.(창3:22) 영원한 생명은 말 그대로 영원하기에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의 제사의식에 보면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제물의 종류가 크게 희생물과 헌물이었다. 희생물은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이고 헌물은 죄와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한 제물이다. 공통점은 둘 다 죽음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하나님과의 연합을 위해, 곧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헌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개념에서 율법의 제사의식이 나왔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온 것이다. 곧 죽음-영안에서 서로 다른 두 존재는 연합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곧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된다는 말인데 연합은 어떤 공통지점에서 되는 것이지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금나와라 뚝딱하는 개념으로 연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안에서 연합된다는 말은 불 안에서 연합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나님은 소멸시키시는 불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난 자는 모두 불에 타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용광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부활의 몸이 되려면 반드시 번제단이라는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만물은 이 불-영안에서 상호연합되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다. 흙은 불을 만나면 돌이되고 보석이 된다. 쇠와 쇠가 연합되려면 불로 용접해야 한다. 사람과 나무의자가 연합되려면 모두 불로 태워지면 재가 되기 때문에 연합된다. 생명의 연합과 새로운 출생은 이런 개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다른 많은 방법이 있는데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존재는 창조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만은 만드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들은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낳아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태어나는 것이지 육신적 혈통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요1:13)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로의 출생의 과정에는 우리의 죄와 관계없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가 죄가 있으면 죽고 죄가 없으면 육체가 죽지 않고 산다고 알고 있으나 그런 것이 아니고 육체는 죄가 있으나 없으나 어차피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인 왕국이기 때문에 혈과 육을 가지고는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전15:50). 따라서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운명은 사람은 흙으로 창조 된 다음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을 이식받고 육체가 죽은 다음 그리스도와 같이 영적인 부활의 몸이 될 운명이라고 말한다.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4)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고전 15:46)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부활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행24:15)
즉, 그리스도의 씨를 받으면 의로운 자의 부활로, 사탄의 씨를 받으면 불의한 자로 부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한 운명은 사람은 흙으로 지어진 다음은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죄가 없더라도 생명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죄가 없다면 쉽게 그리스도를 받아드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바울의 해석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줘서 율법을 통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이 죄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찾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갈3:24)
양심의 법 시대의 구원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사람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도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필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사람은 죄가 있건 없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영생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창세 전에 정해진 것이었다.(고전 2:7)
‘다만 우리는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어진 지혜(그리스도)를 말하노니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그러므로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진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 시대와 관계없이 동일하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자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심으로 동물의 피 흘림을 통한 대신 속죄의 원리를 계시하셨다(창3:21).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방법이 아담의 후손들에게 전해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도 아벨(창4:3), 노아(창8:20), 아브라함(창22:13), 모세의 장인 이드로(출18:22) 등이 동물을 잡아 번제헌물을 드렸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기 전에 모세도 시내산에서 이집트에서 파라오와 담판을 하면서 ‘우리가 주 우리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도록 왕이 반드시 우리에게 희생물과 번제헌물도 주셔야 할 터인즉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발굽 하나도 뒤에 남겨 둘 수 없나이다.’(출10:25-26) 하면서 율법에 계시되어 있는 희생물과 번제헌물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보다 훨씬 이전 시대 사람인 이방인이었던 욥도 번제헌물을 드렸다.(욥1:5)
‘그들의 잔칫날이 지나가면 욥이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또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들 모두의 수대로 번제 헌물을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짓고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저주하였을까 하노라, 하였기 때문이더라. 욥이 계속해서 이같이 행하였더라.’(욥1:5)
그렇다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율법 밖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사람이 창조될 때부터 사람 마음속에 양심을 법을 기록해 주었으며 이 양심의 법이 율법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이 양심의 법은 사람이 창조될 때부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롬 2:15)
결국 양심의 법은 보이지 않는 율법이고 율법은 돌 판에 기록된 법으로서 눈에 보이는 법 일뿐 같은 율법이라고 말한다.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롬 2:14)
그러므로 성경은 마음속에 기록된 양심의 법이나 유대인들에 주어졌던 율법이나 동일한 목적과 효력이 있는 법으로 보고 있다. 율법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듯이 양심의 법 또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이 없었던 이방인들도 양심의 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유대인의 구원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율법이 주어졌는데 율법의 제사의식에서 드려지는 동물은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동물 제물을 드림으로 대신 속죄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 이 구원의 원리는 신약의 그리스도는 실제이고 구약의 동물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차이가 있다. 돈으로 친다면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어음을 받았고, 신약시대 그리스도인은 현금을 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아래 있던 사람들은 구속을 받지 못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우리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을 구속하기 위해서도 오신 것이다.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갈 4:5)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곧 죽음이 필요한데 구약시대 율법아래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거듭남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생명을 얻지 못하였고 단지 생명의 모형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어음으로 현금인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구약 성도들은 죽으면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땅속의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눅 16:22-26) 구속이란 의미는 현금을 주고 되찾는다는 의미인데 구약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현금을 치루지 않고 동물이라는 어음을 지불했기 때문에 현금이 지불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포로라는 저당의 개념으로 땅속의 아브라함 품으로 갔던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피로 샀다고 말한다.(행20:28)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완전한 현금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로로 저당 잡혀있던 구약성도들을 되찾아 하늘로 데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4:8-10)
구약시대 율법 밖에 있던 이방인의 구원
그러면 구약시대 율법 밖에 있던 이방인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을까? 성경에 제시된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사례 #1 시돈 땅의 과부
'주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거하라. 보라, 내가 그곳의 과부 여인에게 명령하여 너를 돌보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왕상17:8-9)
당시 상황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기도하자 이스라엘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들었고 이로 인해 많은 과부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과부들에게는 엘리야를 보내지 않고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이방인의 땅 시돈에 있는 이방인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어 그녀를 구원하였다. 이 사실에 대해 예수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두루 큰 기근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들 중 아무에게도 보내어지지 아니하고 오직 시돈의 도시 사렙다에 사는 한 과부 여인에게만 보내어졌으며'(눅4:25-26)
이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빵과 기름이 그 여인의 집에서 없어지지 않게 하여 가뭄에서 살아남게 하였고. 그 여인의 아들이 죽자 엘리야를 통해 다시 살리는 기적을 행하였다. 이로 보건데 분명히 이 여인은 구원받은 이방인임에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 여인이 한 말 중에서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주고 맹세하옵나니....’(왕상17:12) 라는 말이 있고,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왕상17:18) 라는 말이 있다. 이로 보건데 이 여인은 비록 우상숭배의 땅인 시돈의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당시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오직 시돈의 과부인 한 여인만이 선택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례 #2 시리아 군대 대장 나아만
'이제 시리아 왕의 군대 대장 나아만은 자기 주인에게 크고 존귀한 자였으니 이는 주께서 그를 통해 시리아에 구출을 주셨기 때문이더라. 그는 또한 강한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더라.'(왕하 5:1)
나아만은 시리아의 군대 장군이었으나 나병 환자였다. 당시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인접국가로서 이스라엘과는 적대관계에 있던 이방 국가였다. 나아만은 당시 자신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왔던 이스라엘 소녀의 말들 듣고 이스라엘로 들어가서 대언자 엘리사가 요르단 강 물속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에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자 나병을 치유 받았다. 이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다.
'또 대언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으되 그들 중 아무도 정결하게 되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정결하게 되었느니라, 하시니라.'(눅4:27)
나아만 장군이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소녀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은 나아만의 입장에서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당시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적대관계 있었고 시리아에서 나아만의 위치는 시리아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리아 왕은 나아만이 이스라엘로 들어가기 전에 편지를 써서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자 이스라엘 왕은 전쟁을 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였으나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어찌 보면 나아만은 목숨을 걸고 적국 이스라엘로 들어간 것이다.
나아만이 어떤 사람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그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열왕기하 5장 1절에 보면 ‘주께서 그를 통해 시리아를 구출해 주셨기 때문이라.’ 말이 있고 나아만이 요르단 물속에서 나병을 치유 받은 후에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땅에 하나님이 없는 줄 아나이다.’(왕하 5:15) 라는 고백을 하였고 ‘이제부터 당신의 종이 번제 헌물이든지 희생물이든지 다른 신들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오직 주께만 드리려 하나이다.’(왕하5:17) 라고 하면서 희생물과 번제헌물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나아만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희생물과 번제헌물을 알고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나병은 죄를 상징한다. 따라서 당시 포로로 잡혀 온 소녀의 말은 복음이라 할 수 있고, 이 복음에 순종하여 이스라엘로 가서 요르단 물속에서 나병을 치유 받은 것은 죽음을 통과하여 죄 용서를 받고 구원받은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사례 #3 페르시아 고레스 왕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귀환시킨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대해 하나님은 ‘그는 내 목자라’(사44:28), ‘주가 자신의 기름부음 받은 자 고레스’(사45:1)라고 하면서 구원받은 자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고레스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왕국을 내게 주시고 또 내게 명하사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위해 집을 건축하게 하셨나니 그분의 모든 백성 중에서 너희 가운데 거하는 자가 누구냐?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니 그는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대하 36:23)
‘고레스 왕의 제일년에 바로 그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 관하여 칙령을 내려 이르기를, 그 집 곧 그들이 희생물을 드리던 곳을 건축하되 그것의 기초를 견고히 놓고 그것의 높이는 육십 큐빗으로 하며 너비도 육십 큐빗으로 하고 또 큰 돌 세 줄과 함께 새 나무 한 줄을 놓으라. 또 그 경비는 왕의 집에서 낼지니라.’(에6:3-4)
고레스 왕의 위와 같은 언행을 보면 이스라엘의 어떤 왕보다도 하나님을 두려하고 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어떤 배경 때문에 이러한 지식과 믿음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경은 고레스가 세상제국의 왕이 될 것이며,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킬 것이라는 예언이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고레스가 태어나기 약 200년 전의 일이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내 목자라. 그가 나의 기뻐하는 모든 것을 행하리라, 하고 예루살렘에게는 이르기를, 너는 세워지리라, 하며 성전에게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놓이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8)
'주가 자신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민족들을 그 앞에 항복하게 하였으며 또 왕들의 허리를 풀어 문짝이 두 개인 성문들을 그 앞에 열게 하고 그 성문들을 닫지 못하게 하리라.'(사45:1)
'내가 의 안에서 그를 일으켜 세웠고 그의 모든 길을 지도하리니 그가 나의 도시를 건축하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보상도 없이 놓아주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사 45:13)
추정하건데 고레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이는 그가 바벨론 제국을 정복한 후에 이사야서의 기록과 같이 그 공을 자신의 업적으로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땅의 왕국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대하 36:23) 따라서 그는 상당히 오래전에 성경을 알았고 그 예언의 성취에 놀랐을 것이다. 또한 그는 바벨론 제국을 정복한 후에 바로 그 제국의 왕이 되지 않고 자신의 장인인 다리오를 메데 페르시아 제국의 왕으로 옹립하고 2년 후에 다리오 왕이 죽자 제국의 왕으로 등극하였는데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바벨론 제국을 정복한 후에도 바벨론의 재상(宰相)이었던 다니엘을 그대로 중용하여 고레스가 왕으로 등극한 후에 이스라엘의 본토 귀환을 명령하는 칙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최소 2년 동안은 다니엘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레스는 이 기간에 성경에 예언에 되어 있는 자신은 물론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다니엘로부터 상세히 전수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일설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 또한 페르시아 제국이후 그리스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알았다고 한다.(단8:20-21) 그래서 그 예언을 믿고 페르시아 제국을 담대히 공격하였으며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후에도 유대인들을 다른 민족에 비해 특별히 대우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자신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겠는가? 바벨론 제국 이후에 등장할 세상왕국인 메데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 제국이라는 나라 명칭이 정확히 다니엘서에 예언되어 있었고(단 8:20-21), 이 예언의 성취로 이로 인해 당시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정한 기본적인 구원의 원리는 시대와 장소, 민족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먼저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주어졌던 구약시대 당시에 이방인이 구원받으려면 첫 번째 방법은 자신들이 유대인으로 귀화하여 율법의 제사 의식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으면 된다. 두 번째로 당시 이방인들에게 율법 대신 양심의 법이 계속 유효하였다. 이에 따라 양심의 법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아담, 셋, 노아, 야곱, 아브라함 등)과 위 사례와 같이 자신이 죄인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시대와 장소, 인종을 구별하지 않고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신약시대 이방인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 온 이후는 당연히 복음을 들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성경에 나와 있는 복음을 들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이방인이 구원받은 사례를 살펴보자. 사도행정 8장에 보면 이디오피아 내시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자기들 안에 있던 양심의 법에 따라 간절히 하나님을 찾자 하나님은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사도 빌립을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여 구원을 하셨고(행8:26-38),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를 비롯한 그의 가족은 사도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셨다(행 10:1-48).
성경은 만물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격과 권능이 창세로부터 분명히 계시되어 있어 누구든지 이를 통해 깨달아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기에 그 누구도 변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롬 1:20) 따라서 인류에게 글자로 된 성경 말씀과 같은 분명한 계시가 없더라도 시대와 장소, 민족 구분 없이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응답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나리라.’(렘 29:13)